[에세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글 입력 2023.11.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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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시간 앞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그 자체뿐이다.


청소년 시절 내 인생의 화두는 친구 관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의 절반 이상을 3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강제적인 환경에서 친구 관계에 목을 매지 않는 게 이상하다. 미숙한 연애와 다를 바 없이 싸우고 사랑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시기를 보냈다.

 

악의를 가진 사람은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아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군중 속에 물든 개인은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괴로워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좋아했고 또 직접 만들고 싶었다. 그 당시 내가 썼던 글에는 언제나 사람과 관계, 그리고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대학에 가니 모든 문제가 사회 문제로 귀결되었다. 개인의 문제인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사회 문제라는 것을 배웠다. 그땐 세계의 불의와 부조리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여전히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제 그냥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 속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회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끓던 시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니 뾰족한 시선으로 사회를 비판하며 마음을 부글대던 나는 온데간데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와 개인에 대한 복합성과 다면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좋게 말하면 포용심이 생겼고, 나쁘게 말하면 타협적인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땐 그렇게나 되고 싶지 않았던 ‘타협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게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계속 변했다.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들도 변했다.

 

어렸을 때 손도 대지 않았던 토마토를 어른이 되어서는 잘도 찾아 먹는다.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부들부들해서 친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만지작거렸던 포동포동한 두 손은 이제 핸드크림 없이는 버석버석한 마른 손이 되었다. 난해한 독립영화까지 부러 영화관에 찾아가 보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도대체 누구였나 싶다. 요즘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면 영화관에 가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영원히 그럴 것만 같았던 것들이다. 나는 영원히 토마토를 먹지 않고, 핸드크림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손이 부들부들할 것이며, 인기 없는 독립 영화도 열심히 찾아보는 영화광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각각의 시간 속의 나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저 한없이 낯설 뿐이다. 과거의 나는 나이지만 내가 아니다.

 

새로운 것과 가까워질 때는 예전의 것들과 멀어지기 마련이다. 좋아하던 것에 질리고, 싫어하던 것이 좋아지기도 한다. 잘하던 것을 못하게 되고, 못하던 것도 곧잘 하게 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나는 또 어떻게 변할까. 언젠가 클래식 음악이 질려서 또 다른 문화 예술에 허우적대고 있을까?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과를 아침마다 찾아 먹게 되는 날이 오려나?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나.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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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생일에 의례적으로만 짧게 온 축하 문자가 한참 서운했다. 한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 해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새삼스러운 것도 없다. 몸이 멀어지고 각자의 인생에 바빠지면서 연락도 뜸해진 지 오래다. 어쩌다 만나도 서로 사는 세계가 너무 달라서 거리감이 있었다. 

 

평생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면 관계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관계만큼은 특별히 다르지 않을까 믿었던 마음이 더 컸었다.

 

관계란 멀어졌다가도 가까워지는 것이고, 오랜 관계가 옅어지면 새로운 관계가 진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해 보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서운하고 허무하다. 나는 오래도록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버거웠고, 지금도 그렇다.  

 

관계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변한다는 사실은 위안이 될 때도 있지만 요즘은 부쩍 그 사실에 무력하다.

 

멀어져가는 친구들, 옅어지는 관계를 생각한다. 낯선 과거의 나를 생각한다.

 

새로 사귄 친구들, 짙어지는 관계를 생각한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한없이 낯설어질 미래의 나는 아득하다.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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