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끔 드러누워도 될까요

진짜 휴식의 의미를 찾아서
글 입력 2023.11.06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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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지내면서 어딜 나가든 빼놓지 않고 챙겨 다니던 것은 다름 아닌 돗자리다.

 

이곳에서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디자인의 돗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말에 한국에서부터 고이 챙겨 온 노란 체크무늬 패턴의 돗자리는 유럽에서 보내는 여름 내내 나와 빠지지 않고 함께했다.


유럽의 길거리는 아무렇게나 걸어도 아름답다. 지금이야 이곳에서 지낸 지 두 달이 된 만큼 처음 느꼈던 감동은 조금 덜 하지만, 처음 짐을 풀고 기숙사 근처를 산책했던 때를 잊지 못한다. 관광 도시가 아닌데도 발걸음을 내딛는 곳이 모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한국에서 질리도록 보던 아파트와 고층 빌딩은 없고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벽돌집이 나란히 줄 서 있었다. 게다가 똑같이 생긴 집이라고는 없었고, 집 앞에는 귀여운 요정 조각상이나 사슴 모양의 장난감 또는 작은 사과나무 등으로 장식되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뜰이 귀여웠다.

 

빈티지 느낌을 잔뜩 풍기는 온갖 카페와 가게들은 또 어떠한가, 마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풍경을 자아내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풍경 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딜 가나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늘 불평하던 점은 여유를 즐길 공원 또는 하다못해 벤치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날씨 좋은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공원에서 피크닉을 한다. 이 사람들은 진짜 할 일이 없는 걸까, 싶을 정도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여유로운 모습이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었고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나 역시 그런 삶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고, 하루에 한 번씩은 밖에 나가자는 원칙하에 매일 공원에 가서 돗자리를 펼치고 누워 책을 읽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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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는 사람에 대한 인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게으른 사람, 할 일이 없는 사람. 하지만 이토록 여유로운 일상에서 내가 느낀 점은, 의외로 누워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독서인데, 신기하게도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는 책에 한 글자도 집중할 수가 없다. 책상이 주는 강박감 때문일까, 자꾸만 핸드폰으로 노트북으로 뻗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읽는 책은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한다. 비라도 쏟아져서 중간에 멈추고 일어나기가 더 어려울 정도니까.


굳이 따지자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생산성’보다는 ‘창조성’이 발휘되는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유도 없이 긴장하곤 한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말려 있는 어깨와 꽉 쥐고 있는 주먹을 발견하듯이. 잔뜩 경직되어 웅크린 몸은 방어적이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단단한 호두 껍데기처럼. 하지만 한껏 여유로워진 채 누워 쭉 뻗은 몸은 모든 자극을 기꺼이 영감으로 받아들이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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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휴식이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지냈을 때 나에게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되곤 했다. 그런데 자연에서 누워 있는 나날들이라는 값진 휴식의 경험 이후, 휴식은 사회가 내게 부과하는 의무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다듬어 가는 지극히 창조적인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게으름이 아닌 창조성의 차원에서, 가끔은 드러누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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