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캔버스 이면에는 무엇이 [도서/문학]

나카노 교코 <무서운 그림 2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
글 입력 2023.10.1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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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카미에 부인 초상.jpg

프랑수아 제라르, <레카미에부인의 초상>, 1805

 

 

한 여인이 새하얀 잠옷 차림을 한 채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우리를 유혹하듯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신분은 어때 보이는가? 어깨를 다 드러내고 비스듬한 각도로 쳐다보고 있지만, 아치형의 건축물 안에 고풍스럽고 푹신해 보이는 의자와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단들이 그녀를 비단 창녀일 것이라 단정 지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그림 속 여인은 사교계의 꽃이자, 대부호 자크 레카미에의 정실부인 쥘리에트 레카미에(1777~1849)이다. 놀라운 반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잠옷이 아니라 어엿한 정장이었다는 것. 당시 프랑스에서는 흘러내리는 천으로 피부와 몸매를 극대화하고 장신구를 걸치지 않는 단순미의 패션이 유행했다고 한다. 일명 슈미즈 드레스로, 한겨울에도 여인들은 레카미에 부인의 패션을 고집하느라 폐렴에 걸려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이렇게 계절 상관없이 무언가에 고집하는 인간의 본성은 과거나 현재나 별반 다를 게 없나 보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준말)나 패션이라며 한겨울 코트나 치마를 입는 현대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니 말이다.

 

 

다비드.jpg

자크 루이 다비드,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1800

 

 

또 다른 반전은 그녀가 당대 최고의 명성을 지닌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초상화보다 프랑수아 제라르(다비드의 수제자)의 초상화를 더욱 좋아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애인에게 보낼 그림이었으니 냉철한 얼굴을 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다비드의 그림보다 요염한 자세와 얼굴로 누군가를 유혹하듯 하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무서운 그림 표지.jpg

 

 

이처럼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 시리즈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꽤 흥미로운 명화의 이면이 펼쳐진다. 그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와도 같아서 마치 미술작품 이외의 또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혹은 읽는(명화‘ 읽기’이므로) 느낌까지 든다.

 

<무서운 그림> 시리즈는 잘 쓰인 책으로, 그 흡입력이 굉장하다. 앉은 자리에서 책 절반을 읽어내릴 정도인데 한 챕터를 끝냈다 싶으면 다음 챕터의 그림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그 궁금함에 자꾸만 책장을 넘기기 때문이다.


나카노 교코는 명화에 감출 수 없이 드러나는 섹슈얼리티와 공포, 감추었음에도 결국 드러나는 이면과 잔혹한 시대상을 파헤쳐간다. 그럼 우리는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과 진실을 덜컥 마주하게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가감 없이 인간의 욕망을 해석하고 그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덧붙여가기도 한다.

 

 

상대성.jpg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스헤르, <상대성>, 1952 

 

 

위 그림은 M.C.에스헤르의 <상대성>이다. 이 그림에는 세 개의 섹션, 그러니까 세 개의 세상이 있다.

 


무서운 그림

나카노 교코, <무서운 그림 2> 중

 

 

이를 보고 그녀는 ‘만약 눈치채지 못한 채로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세상의 존재에 대해 느끼게 된다면?’과 같은 무서운 상상력을 전달한다. 만약 우리가 걷는 계단에서 90도 틀어진 곳에 또 다른 세상의 존재가 태연하게 책을 읽고 있다면? 소름이 오소소 돋는 상상이다. 이러한 설명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섬뜩한 세계로 초대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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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2021)

 

 

이렇게 그림을 읽다 보면 활용할 수도 있게 된다. 에스헤르의 그림을 읽었으니 우리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오징어 게임> 세트장이 왜 복잡한 무한의 계단 형식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마치 에스헤르의 <상대성>이 떠오르는 구조. 모두가 한길로 가는 듯하지만 이어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한길로 무한하게 올라가고 있다는 착각을 줌과 동시에 모두가 각기 다른 문을 향하고 있어 각기 다른 도착지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참가자들은 어디로 향하는지, 걷는 이 길이 저기 보이는 자와 같은 곳으로 향하는 것은 맞는지 두려울 것이다. 이러한 미스터리의 방향성은 우리에게 다양한 무서움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숨겨진 이야기에 관심 있다면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 1>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펼치는 순간 필자처럼 그녀의 스토리텔링에 흠뻑 빠져 그림을 섬뜩하게 읽는 법에 매혹될 것이다. 그리곤 재빨리 두 번째 무서운 그림을 집어 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주 작은 주문을 외우고 읽기 시작하자. ‘홀딱 빠져버리지 않게 주의하기.’ 참으로 무서운 책이다.

 

 

[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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