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반려동물은 도대체 어떤 생명체이길래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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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과 함께 생활한 지 벌써 4년째다.
그동안 여러 번의 계절이 흘러가고, 환경과 사람 등 내 주위엔 변한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항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변함없었다. 같은 지하철 노선과 마을버스에서 내리면 항상 지나쳐 오던 건물, 기억하던 그 자리 그대로 펴있는 꽃들, 같은 구조의 아파트 산책길.
그래서 집으로 향하는 길은 늘 편안하다. 나와 그 기억, 그리고 그 기억 속 산책길에서 함께 산책에 나서던 친구가 있다. 이름은 봉수, 미니어처 푸들. 박씨 집안의 막내 개아들이다. 박 씨지만 어쩐지 봉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귀여워 봉 선생으로 불린다.
그 친구는 분명 나와 참 멀리 떨어진 생명체 같다가도, 애틋한 감정을 공유할 때면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가 된다. 사람을 향해 아낌없이 부어주는 사랑을 봉수의 눈동자, 꼬리, 감촉으로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계절이 태어난다.
그 계절 한가운데서 봉수를 떠올린 일
어느 날, 함께 산책을 나섰던 적이 있었다. 분명 뜨거운 햇빛이 내리비치는 여름이었는데 그보다 더 강렬하게 와닿은 게 있었다. 활짝 웃는 봉수의 미소였다. 그것 하나로 나는 더운 줄도 모르고 똑같이 미소가 번졌다. 등으로 온통 반사되는 여름날의 햇빛, 어쩌면 강아지가 뿜을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
그것을 찬란함이라는 단어로 부르면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보는 시야에 담긴 세상이 그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봉수의 감정이 내게도 똑같이 스며들었던 게 아닐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은, 내가 반려견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지만 왜인지 언젠가 다 사라지고 만다는 상실감은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반려견이 가족을 사랑해 주는 무한함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봉수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 같아서, 잠시 머나먼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난 것만 같이 느껴진다.
봉수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길고양이들이 빽빽하게 구역을 지키고 있어 쉽게 오르지 못했던 동네 뒷산부터 차를 타고 오래 이동해야 하는 여행지까지. 서슴없이 두둥실 떠올라 날아 함께 발이 닿는 허공일지라도, 함께라면 가장 특별한 여행지가 된다.
그런 순간순간이 모여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오래 저장된다. 가끔 집이 아닌 어딘가에서 문득문득 햇빛에 내려오던 봉수의 미소가 생각난다. 그러면 망설이지 않고 핸드폰 안에 담긴 사진첩을 연다. 그럼, 어디에나 봉수가 내 옆에서, 함께라는 듯, 날 향해 환히 웃고 있다.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나와의 비밀스러운 여행을 함께한 이 친구에게 가진 특별한 감정과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짧은 메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와는 다른 봉수의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해 어쩌면 이기적일 수 있지만, 순간순간 떠오르는 잔상은 기록하지 않을 수 없게 했고, 그것은 사랑이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처럼, 그것을 토대로 글을 쓴다.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그 순간을 더 오래, 그리고 구체적으로 간직하고 싶어서다. 비록 내 언어지만 봉수에게 주고 싶은 온갖 아름다운 단어와 비유를 가져와 순간을 묘사할 때면 나는 비로소 사랑하고 있음을, 또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나는 시인이, 예술가가 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반려동물은, 나를 문화 예술 그 자체로 만들어 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다.
[박정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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