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잔뜩 물을 먹고 나면 언젠가 [운동/건강]

10년만에 다시 시작한 수영
글 입력 2023.10.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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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수업 4일 차.

 

나는 무려 초보반에서 두 번째로 발차기를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

 

 

 

다시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적, 아마 초등학교 삼 학년에서 사 학년쯤 되었을 시기의 나는 수영을 배우러 다녔었다. 우리 동네에는 기피 시설인 소각장을 설치하는 대신 시에서 만들어 준 스포츠센터가 소각장의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내가 다닌 곳도 그곳이었다. 동산 뒷길을 걸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그걸 알면서도 다리가 아프다고 부득불 차를 탔던 기억이 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새로 다니기 시작한 스포츠센터도 꾸역꾸역 셔틀버스를 탄다.

 

나는 물을 정말 좋아한다. 물이 주는 포근한 압박을, 물살을 가르고 나아갈 때 느껴지는 그 기묘한 감각을 좋아한다. 물에 가만히 잠겨있으면 정말로 편안하다. 분명 평소보다 가슴이 답답할 텐데도 그렇다.

 

좋아한다고 말한 직후에 털어놓긴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수영이 무섭다. 수영장 물을 먹는 것을 엄청나게 겁낸다. 어릴 적 수영장 유아 풀에서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 것이 틀림없다. 헤엄치며 고개를 넣었다 빼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자꾸 물을 먹는데 왜 그래야 하지?’라는 불만만 생겼다. 반항기 가득했던 내가 택한 건 헤엄치는 내내 물에 머리를 처박고 꿈틀대는 거였고, 그렇게 물을 한 오십 번쯤 먹었을 때 강습을 그만뒀다.

 

그 이후로 어느덧 10년,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이래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없었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은근히 수영을 배우고 싶어 했다. 풀빌라를 가면 물에 수달처럼 동동 떠 있고 싶었고, 바다 여행을 가면 저 푸른 바다에 뛰어들어 첨벙거리고 싶었다. 물놀이장에 갈 때면 꼭 코를 부여잡고 잠수해 돌아다녔다. 비록 손에서 코를 놓거나 진짜로 물 위에 누워 떠다닐 용기는 내지 못했지만, 수영도 못 하는 주제에 나는 물을 참 좋아했다.

 

마침 또 수영이 은근한 유행이 되었으니, 유행하는 건 한 번쯤은 찔러보는 내 성격이 딱 맞게 작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개강 전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8시, 나는 얼렁뚱땅 오전 10시 수영을 신청했다.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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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수영장을 가면 꼭 이렇게 발버둥쳤었다.

 

 

 

얼렁뚱땅 준비했습니다.


 

무작정 강습을 신청하고 보니 준비할 게 태산이었다. 10년 전에 입었던 수영복, 썼던 수경, 수모가 내 몸에 맞을 리는 당연히 없었다(그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수영용품이 정말 비쌌다). 하필 신청일과 강습 시작일이 가까웠던 탓에, 당근과 수영용품점을 전전하며 필요한 것들을 겨우 장만했다. 어쩌다 보니 수영복과 수모 모두를 당근에서 구했다. 판매자님들이 모두 친절하셔서 다행이었고, 감동까지 받았다.

   

 

‘접영할 때는 3부 수영복을 입는 게 안 아프다. 수영하다가 막히는 게 있다면 수모 거래자님께 여쭤보기!’

 

 

그날 메모장에 내가 적은 것들이다. 수영인(人)들이 초보자에게 상냥하고 관대하다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어푸어푸 시작합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강습 전날, 온갖 유튜브 영상을 섭렵했다. 음파 호흡법(이해 못 함), 발차기 잘하는 법(실천 못 함), 샤워장 매너(눈치껏 쓱 들어가기) 까지. 10개가 넘는 영상을 보고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 셔틀버스 시간을 세 번 더 확인하고 잠에 들었다.

 

강습 첫날, 셔틀버스가 늦게 온 탓에 등에서 식은땀이 주룩주룩 흐른 상태로 탈의실에 입장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10시경에는 항상 차가 밀려 셔틀버스가 조금씩 늦어지는 것 같았다. 오케이, 그 정도의 융통성은 내가 발휘해 주겠어! 다짐한 채로 후다닥 옷을 벗고 샤워장에 들어갔다. 처음 본 샤워장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대체 어떻게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찾아서 ‘샤워기 좀 써도 될까요?’를 성공했다. 수영장을 생전 처음 방문하거나 나처럼 오랜만에 방문한 사람이 있다면 꼭, 강습 시작 20분 전에는 샤워장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나는 5분 전에 간신히 입성한 탓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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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실과 샤워장은 꼭 사람 많은 횡단보도처럼 정신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강습 레인에는 다행히 나와 같이 수영을 아예 처음 배우는 초보들이 많았다. “수영 오늘 처음 배우시는 분?” 선생님의 질문에 냉큼 손을 들어 유아 풀로 향했다. 최고의 결정이었다.

 

첫날에는 팔을 돌리는 법부터 시작해 발을 차는 법, 음파 호흡법까지 배웠다. 곧바로 물에서 시작하지 않아 좋았다. 우리는 허공에서 팔을 열심히 돌리다가 레인 가장자리에 앉아서 발차기를 연습했다. 몇 세트를 반복하니 음파 호흡법을 알려주셨다. 그때부터는 물속에 반쯤 잠겨 음파 숨을 쉬며 팔을 돌리다가, 다시 올라와서 발차기하곤 했다. 지금에 이 기본기를 다시 한다면 상당히 지루해하겠지만, 막상 처음 배울 때는 벅차서 헉헉대며 풀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제자리에서 발을 차고 팔을 돌리는 것이 익숙해졌을 무렵엔 유아 풀의 레인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킥 판을 쥐고 고개를 높이 든 채 발차기만 하다가, 음파 호흡법과 함께 연습하고, 이내 팔까지 돌렸다. 분명 발차기까지는 정말 쉬웠는데, 고개를 넣고 빼고를 반복하려니 자꾸 물을 먹었다. 고개를 드는 타이밍을 모르겠다며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께 참 많이도 징징거렸는데, 아직도 징징거리고 있다. 새삼 부끄럽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아직도 물을 먹는 것이 싫다.

 

이제 레인 돌기가 조금 쉽나? 싶어지니 성인 풀로 내몰렸다. 무엇을 배우든 초보는 그 자리에서 안주하기 쉽지 않은 법이다. 키가 작아 발이 손쉽게 닿지 않는 성인 풀에 가니 숨이 훨씬 빨리 찼다. 분명 킥 판이 있는데도 겁이 훅하고 올라왔다. 당연한 수순으로, 잔뜩 물을 먹었다.

 

솔직히, 잔뜩 어푸어푸하며 물 먹은 날이면 다음 수업에 가기가 싫었다. 몸이 안 좋다며 투덜대다가 하루를 빼먹은 적도 있다. 신기한 건 내가 어쨌거나 계속해서 강습에 출석했다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투덜대고 징징거려도 나는 여전히 물이 좋고, 이제는 조금씩 수영에도 정을 붙여가는 것 같다. 어느덧 한 달을 거의 다 채운 나는 다음 달의 강습에 재등록했다.

   

메스꺼울 정도로 물을 먹어가며 버둥대니 어느덧 킥 판을 떼고 자유형을 시도하는 시기까지 왔다. 이제 우리 초보반은 유아 풀이 아닌 성인 풀의 레인을 돌고, 나는 운 좋게 우리 중에서 두 번째로 레인을 돈다. 아직은 킥 판 없이 하는 자유형이 어렵고 또 무섭지만, 분명 내가 ‘자유형 마스터’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잔뜩 물을 먹다 보면 꼭! 물개처럼 헤엄칠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열심히 헤엄쳐야겠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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