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봅시다." - 음악극 '푸른 늑대의 파수꾼' 지민영 작/연출

글 입력 2023.09.0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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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푸른늑대의파수꾼_2023시온.jpg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인간 한 명은 무력하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도 없고, 혼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살아만 있다면 누구에게든 할 수 있는 일이 최소한 한 가지는 있다. 가위에 눌려 옴싹달싹 할 수 없을 때는 새끼손가락부터 움직여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작은 움직임에는 어떻게 피어날지 모르는 가능성이 숨어 있다.



아트컴퍼니 행복자의 청소년극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 <푸른 늑대의 파수꾼>도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는 역사와 오늘날의 학교폭력 문제처럼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폭력을 다룬다. 하지만 절망에 그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보자고 말을 건넨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청소년극 시리즈 역시 그때는 작/연출이 아니라 배우이자 예술강사였던 지민영 씨의 '작은 실천' 덕분에 시작되었다. 청소년극을 만들겠다며 무작정 내딛은 한 걸음이 지금 이 순간을 만든 것이다.


공연을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1일, 지민영 작/연출을 만나 <푸른 늑대의 파수꾼>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직은 스스로를 배우나 예술강사로 소개하는 게 더 익숙하다면서도 연출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에서는 연출가의 진지한 면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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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청소년이 자신을 괴롭게 하는 '늑대 같은' 사람 또는 상황을 이겨내고

조그마한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연출님 안녕하세요! 공연을 일주일 정도 앞둔 지금, 어떤 마음인가요?


사실 일주일이 남았으면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기거든요. 지금 상태를 최선으로 보고 연습을 반복하며 모두가 공연에 익숙해져야죠. 저는 배우들의 성향에 맞게 각자에게 필요하다 생각되는 이야기를 해드리는 중이에요.


그때그때 변화에 잘 적응하는 분이라면 공연 직전까지도 피드백을 드리고, 반대로 새로운 걸 체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분이라면 피드백보다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걸 지켜봅니다. 본격적으로 연출을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연출이라는 게 무엇보다 사람 관찰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느껴요.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어떤 극인지도 소개해주세요.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김은진 작가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음악극이에요. '햇귀'라는 친구가 타임슬립으로 현재와 일제강점기를 오가며 내적 성장을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는 역사를 많은 사람이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오늘날의 청소년이 자신을 괴롭게 하는 '늑대 같은' 사람 또는 상황을 이겨내고 조그마한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원작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청소년극을 만들겠다고 처음 마음먹고 청소년 필독서를 여러 권 읽던 시기에 눈에 띄었던 작품이에요. 제가 워낙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타임슬립이라는 소재에 혹하는 사람이거든요. 보자마자 극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좀 더 내공을 쌓아야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몇 년 기다렸다가 이렇게 세 번째 작품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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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를 기억하고,

거기서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어느 부분에 특히 초점을 맞춘 작품인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현재를 사는 중학생 ‘햇귀’이기에 햇귀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죠. 햇귀를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무섭고 두렵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 딱 한 가지를 해보자고 말해주고 싶어요.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상담채널로 카톡 하나 보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요.


또 작품에서 ‘일본군 강제 위안부’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관객이 그 일을 옛날 일로만 치부하고 끝나지 않기를 바랐어요.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로서 기억하고, 거기서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배우님이 힘들 때 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청소요. 집 상태를 보면 저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어요. 마음이 어렵고 복잡할 때면 집도 그렇게 되곤 하는데, 일단 청소부터 하자고 생각해요. 귀찮아도 청소하고 나면 개운해져서 다시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시공간이 여러 차례 바뀌는 이야기를 극으로 각색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 각색을 맡았던 작품은 나오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저는 어떤 사건을 다루고 어떤 인물을 내세울지 정도만 선택하면 됐어요. 반면 이번 작품은 시공간이 계속 바뀌는 와중에 여러 명의 이야기를 다뤄야 해서 꽤 어려웠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너무 교훈적이거나 지루한 느낌 없이 전달하면서도 과도하게 가벼워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어요.


고민 끝에 여러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최대한 집 안으로 가져오려 노력했고, 여러 번 반복되는 사건은 하나로 압축시켜야 했어요. 수십 명의 등장인물 중 누구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할지도 고민이 컸습니다. 결국 각색은 사건과 인물을 선택하고 장소를 한정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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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도 이 이야기를 정말 오랫동안 준비해서 조심스럽게 내놓았기에 

저도 그런 점을 늘 염두에 두고 극작을 하려 했습니다."

 

 

첫 연출 경험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포스터에 제 이름만 연출로 나와 있는 게 민망할 만큼 주변 분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제가 부족하니까 조명감독님과 무대디자이너님, 그리고 배우분들에게 고민을 말씀드리고 여러 가지를 함께 의논하는 일이 많았죠. 모두의 도움을 받은 덕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연출이란 마지막에 관객분들까지 도와주셔야 하는 일 같아요. (웃음)

 


공연을 만들며 마지막까지 연출님을 괴롭혔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초연이라서 여기저기 나 있는 구멍을 메꾸는 게 어려웠어요. 처음 나온 대본에 하도 수정과 메모를 많이 했더니 도저히 나중에는 읽을 수가 없어서 제본을 새로 했습니다. (웃음) 또 아무래도 공연이란 창작의 영역이다 보니 모든 요소가 계획한 일정에 딱 맞춰지기가 어렵거든요. 거기서 자꾸 조바심이 생기곤 했어요.

 



공연을 만들며 원작자인 김은진 작가님과도 소통을 하셨나요?


직접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상의를 많이 했어요. 혹시 오해를 살 수 있는 단어나 표현을 두고 대화할 때가 많았어요. 2016년도 작품이다 보니 2023년의 중학생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수정이 필요할 것 같은 부분도 있어 관련 이야기도 나누었고요. 작가님도 이 이야기를 정말 오랫동안 준비해서 조심스럽게 내놓았기에 저도 그런 점을 늘 염두에 두고 극작을 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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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에서 터닝포인트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이 문제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처음 자기소개를 하며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강하다고 하셨는데요, 청소년극에 관심을 갖고 극작과 연출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예술교육을 하며 청소년들을 오래 봐왔어요. 2019년에 수능을 마친 아이들이 연극을 보러 다닌다길래 뭘 보나 봤더니 생각보다 이 친구들이 볼 만한 괜찮은 작품이 잘 없더라고요. 그래서 청소년극을 만들어보고 싶어졌죠. 행복자에서 제안했더니 제안한 사람이 작품을 쓰라는 얘기가 나왔어요. (웃음)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제가 처음부터 완전히 창작을 할 능력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미 작품성을 한번 인정받은 청소년 소설을 각색하는 쪽으로 작업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연출 일을 할 때 배우나 예술강사로 일해본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나요? 


연출만 공부하신 분들은 연기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반면 저는 배우 출신이라 이번에도 자꾸 배우들 연기에 말을 얹어서... 배우분들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웃음) 예술강사로 일하면서는 실제로 매달 청소년들과 함께하다 보니까 의견을 물어보기가 쉬워요.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학교가 배경인 공연을 만들며 헷갈릴 때는 너네 진짜 이런 말 쓰냐고 물어보는 거죠.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면 여기서 해주세요.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는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이 누군가의 삶에서 터닝포인트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이 문제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요. 그리고 뮤지컬이 끝나고 극장을 나가면서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너무 잔인하거나 찜찜한 결말을 좋아하지 않기에 제 공연을 보는 분들은 기분 좋게 나가시기를 바랍니요.

 

 

*리허설 사진 제공: 아트컴퍼니 행복자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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