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눈과 머릿속이 즐거운 전시 -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 시즌2

함께할수록 더욱 재미있는 인터랙티브 전시
글 입력 2023.08.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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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발을 들였을 때, 삼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스크린 속 한 무더기 선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간은 사람이 많지 않고 쾌적했다. 신경처럼 연결된 선들이 어두운 공간에서 번쩍였고, 나는 저게 대체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고민했다.

 

친구와 가만히 서서 천천히 바뀌는 화면을 보는데 몇몇 사람들이 움직였다. 조금 지나 화면이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때 깨달았다. 구경한 후 이래서 현대미술이란, 하고 머리 붙잡아야 하는 전시가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미구엘 슈발리에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미디어 혹은 디지털 아트가 비교적 최신의 갈래이다 보니 크게 각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SNS에 인증용으로 올리기에나 적합한 그저 그런 전시는 아닐까 막연히 예상했던 것 같다.

 

물론 갈래 특성상 사진을 찍었을 때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의 자태를 간직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관람 순서의 가장 첫 작품의 압도적인 화면과 예상치 못한 '인터랙티브'한 구성을 보자니 그 생각들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슈발리에는 자연과 기술, 네트워크, 우주까지 우리를 둘러싼 세상 속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관계에 주목해 그것을 디지털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큰 흥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특히 관객의 반응이 그 복잡한 관계를 변화시키는 주체임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인터랙티브 작품들은 우리가 그의 세계를 훨씬 더 깊이 있고,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끔 해준다.

 

내게는 작품과 관객이 이토록 많이 상호작용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면 앞을 마구 뛰어보기도 하고, 춤을 추거나 손과 발을 마구 휘두르며 작품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전자였는데, 작품과 직접 소통하는 기분이 들어 더욱 전시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설치된 작품 옆으로 벽면 거울이 설치된 곳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거울 속에 비친 나와 작품, 그리고 그것이 변화하는 과정이 끝없이 반사되며 프랙탈화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공포영화 같기도 하고, 미로에 갇혀있는 듯한 기분도 드는데, 그것까지도 작품의 한 부분인 것 같아 겨우 스크린 하나가 아니라, 온 세상이 슈발리에의 작품인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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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선과 해파리, 선과 도형, 숫자와 수풀 등. 온갖 것을 닮은 기묘한 작품들이 튀어나오고 또 연상되는 화면은 마치 신경과학의 결과물을 보는 것 같다가도 불교의 가르침을 시각화한 것 같기도 했다. 인연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바로 그 기본 전제 말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침범하고, 사라지고, 생성되는 이것은 또는 우주의 진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같다. 과학과 생명, 디지털과 우주가 같은 뜻이 될 수 있다면 슈발리에의 작품이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다채롭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작품이 단순히 스크린과 감시카메라를 통해서만 완성되지는 않는다.  다섯 개의 로봇 팔에 다섯 개의 펜을 쥐고 아주 천천히 또 시끄럽게 반복적으로 선을 그어대는 퍼포먼스의 '어트랙터 댄스'라는 작품이나 UV 라이트로 덧칠된 드로잉 작품, 허공에 큰 규모로 매달려 있는 설치작품도 눈에 띈다.

 

개중 스크린만큼이나 인상적인 작품은 로봇이었다. 어트랙터 댄스뿐 아니라 카메라가 로봇의 눈이 되어 사물의 여러 부분을 그리는 마지막 순서의 작품은 마치 학교처럼 공간이 꾸며져 있어 로봇이 미술 수업을 받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평균적인 사람보다 훨씬 잘 그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림 한 장이 완성되는 데엔 상당한 시간이 흐를 것으로 예상돼 오히려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로봇이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와 그것이 완성한 여러 가지 그림을 보고 있으니 과연 작품의 주인은 누구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는 로봇을 만들었고, 로봇은 그림을 그린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작가의 것일까? 로봇을 제작하는 기술자가 따로 있다면, 그 그림은 오히려 기술자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져 나중에 가선 설치작품이야말로 논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예술의 소유와 주체와 객체의 전도에 대한 생각도 슈발리에의 '네트워크' 예술의 한 부분일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단순히 눈이 즐거운 SNS용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즐겁게 만드는 전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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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직한 작품들 위주로 구성된 전시였기에 아주 짧게 관람하고 마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진득이 구경하며 꽤 긴 시간을 만족스럽게 보냈다. 과천에 있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나 조금 알고 말았던 나로서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견해가 좀 더 확장되는 경험임과 동시에 친구와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활보하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어떤 전시는 글과 사진만으로도 그 세계를 느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지만, 슈발리에의 전시는 내가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특히 어린 아이에게 시각적인 경험과 신선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어린이 관객들이 조금 부러웠다. 어릴 적 경험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니까 말이다! 혹여나 내가 꼬마애였을 적에 이런 전시를 많이 보고 다녔다면, 이렇게 감상문을 쓰는 게 아니라 감상문을 받는 사람이 되진 않을까 하는 실 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만큼 적잖이 충격적이고 즐거운 전시였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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