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지털 세계를 한땀한땀 그려내다 - 드림 파일 [미술/전시]

파운드리 서울 마틴 그로스 개인전 《드림 파일》 리뷰
글 입력 2023.08.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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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정보통신기술은 인류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형태의 무수한 정보를 저장하고 이용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 글자와 이미지, 소리 등은 서로 공존하며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이퍼텍스트는 그 개념이 발표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철학자이자 인터넷 선구자인 테드 넬슨(Ted Nelson)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월드 와이드 웹 컨소시엄(W3C)에 따르면 하이퍼텍스트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하이퍼텍스트는 선형적으로 이뤄지는 제약이 없는 텍스트다. 하이퍼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로 연결되는 링크가 포함된 텍스트다. 하이퍼미디어는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는 하이퍼텍스트에 사용되는 용어로, 그래픽, 비디오 및 사운드 등을 포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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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부터 9월 16일까지 파운드리 서울에서 진행되는 독일 작가 마틴 그로스의 전시 《Dream File》은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차용한다.

 

그로스는 16세기의 책 『Augsburg Book of Miracles』의 삽화부터 오늘날 인터넷의 스크린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참조하여 작업한다. 그 때문에 전시된 그의 작품 속엔 다양하고 수많은 요소가 여기저기 혼재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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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ppenlift Top Kredit Urlaub In Tirol〉, 2023, Oil stick on paper, 196 x 160cm

 

 

〈Treppenlift Top Kredit Urlaub In Tirol〉(2023)과 같은 작품을 보면 화면을 가득 메운 각 대상들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납작한 평면에 앞과 뒤로 교차하며 불분명하게 존재한다. 여기에는 그림 이미지 뿐 아니라 단어도 병치되어 있지만, 단어의 의미가 다른 요소들과 일관성을 형성하며 그림의 의미를 고정시키진 않는다.

 

만화 속 캐릭터 같은 형상과 마우스를 쥐고 있는 듯한 손가락, 인터넷을 떠도는 이미지의 형태들은 한 요소에서 다른 요소들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다양한 이야기를 생산한다. 다른 텍스트로 연결되는 링크를 포함한 텍스트인 하이퍼텍스트처럼 말이다.

 

결국, 작품은 이를 바라보고 개인적인 시선과 기억, 경험에 따라 새로운 맥락은 만들어내는 관람자에게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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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ch So You Love I〉, 2023, Oil stick on paper, 196 x 160cm

 

 

앞선 작품에서처럼, 그로스는 문자와 이미지, 소리 등과 같은 정보 전달의 방식을 서로 치환, 병합시키면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Much So You Love I〉(2023)의 제목은 온라인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줄임말 ILYSM(“I Love You So Much”)을 뒤집은 것이다. 

 

식별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사각형의 공간 속에 산재해 있는 가운데, 종이의 테두리를 따라 특정 글자가 늘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ai fil laique kkkkkk’라고 쓰인 이 문장은 ‘I feel like kkkkkk’를 들리는 대로 다른 형태의 문자로 다시 쓴 것이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대형 애니메이션 작품 〈Oh Sega Sunset〉(2023)은 이러한 혼합방식을 더욱 강하게 보여준다. 거대한 텍스트는 크기와 움직이는 방향, 속도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쉽게 읽히기를 거부한다. 거기에 음향도 추가되어 텍스트, 이미지, 소리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다.

 

특히, 대다수의 한국 사람과 같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에게 이러한 텍스트는 더욱 그 형태 자체로서, 이미지로서 인식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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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로스의 드로잉 작업으로 돌아가서, 그의 작업은 단순히 화면 내에서 구성 요소들간의 얽힘만이 하이퍼텍스트적인 것이 아니다.

 

앞서 그로스의 참조가 인터넷을 포함하고 있음을 언급했듯이, 그의 드로잉 작품은 곧 온라인의 디지털 세계를 종이와 오일스틱 혹은 오일파스텔이라는 아날로그적인 매체의 세계로 재구축한 것이다.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수반되는 시간성과 오류들은 의미들의 한계를 더욱 확장하고 심지어는 무너뜨린다.

 

어떤 맥락적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마틴 그로스의 드로잉 작업은 그 표현성 자체로도 충분히 인상 깊었다. 〈Night Forest〉(2023)나 〈Pin Ball〉(2023)과 같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절대 사람의 손으로 직접 그려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하면서도 불규칙한 패턴과 밀도 있는 구성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인다.

 

이는 미디어아트의 한 형식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글리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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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Forest〉, 2023, Oil stick on paper, 196 x 160cm

 

 

하지만 그것이 디지털 세계의 무수한 정보와 복잡한 형식을 현실의 아날로그적 방식을 이용해 재구성했다는 점은 그로스 작품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며 작가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밖에도 귀여운 디지털 기호인 이모지를 중심에 둔 불길하면서도 다채로운 그림과 “Chor: UND JETZT?”(CHOR: AND NOW?)라는 텍스트를 병치한 〈Time To Go〉(2023)나, 인터넷상에서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페이지를 넘어가는 ‘웹서핑’을 주제로 한 듯한 시가 담긴 〈All In Cold〉(2023)와 같은 작품도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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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2023, Oil stick on paper, 196 x 160cm

 

 

그럼에도 본 전시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는 위 두 드로잉 사이에 위치한 〈Untitled〉(2023)이 적합해 보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상단에 각종 유니코드 문자 같은 기호들이 담긴 말풍선이 존재하고 그 아래 종이의 2/3는 비어있는데, 이는 관람자를 그 공간에 소환함으로써 디지털 세계에서 종이 매체로, 그리고 그 종이에서 관람자라는 3차원이면서 개인적인 공간으로 링크를 연결해 하이퍼텍스트를 강렬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프란츠 헴펠(Franz Hempel) "파운드리 서울에서 개최되는 마틴 그로스의 《Dream File》에 관한 단상"

파운드리 서울 《Dream File》 보도자료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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