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파편화되어 흩어지지 않는, 확장 -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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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과거에 비해 확장된 인식 범위는 우리에게 끊이지 않는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 인간의 신체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서울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은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2023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안영화제이자, 영화와 전시를 함께 볼 수 있는 대안영상예술축제로, 올해 40여 개국 82편이 상영 및 전시된다. 올해의 주제는 ‘안전한 신체의 확장(Expansion of Entangled Bodies)’이다.
이는 기술 발달로 인해 신체의 확장에 대한 기대에 부푼 전망을 내놓지만, 이와 반대되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 등 디지털 기술이 주는 풍요와 편안함의 간극에 주목하면서, 2023 네마프는 ‘안전함’에 주목하여 이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스 비디오폼 특별전에서는 프랑스 단편작들을 상영하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달 아래의 세계 Le monde sublunaire (The sublunar world)>와 <채우다, 살아가다(Filling in Physical Reality, Living in Digital Reality)>, <향수병(HOMESICK)>이다.
알베르 메리노(Albert MERINO)
<달 아래의 세계 Le monde sublunaire (The sublunar world)>, 2022.
<달 아래의 세계 Le monde sublunaire (The sublunar world)>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러닝타임은 약 10분 정도이다.
작가 알베르 메리노(Albert MERINO)는 시뮬레이션의 한계와 이미지의 진실성을 탐구하며 세계에 대한 해석을 보여준다. 작가는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방식은 주관적 감정에 의해 호소될 수 있음을 말한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고래, 사슴, 물결, 물고기들, 행성과 조그마한 집.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무 맥락적으로 우리에게 그저 감각적 이미지로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서사를 없애려 해도 서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각자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또한, 현실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무 맥락적이며 그 와중에도 다 모든 인과를 지니고 있다.
윤교녕, <채우다, 살아가다(Filling in Physical Reality, Living in Digital Reality)>, 2020.
윤교녕 작가의, <채우다, 살아가다(Filling in Physical Reality, Living in Digital Reality)>는 러닝타임 3분 20초의 비디오아트 작품이다.
윤교녕 작가는 유학생으로, 자신이 속할 곳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작가는 물리적 현실에서 집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는 대신에, 삶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물리적 현실 위에 디지털로 재창조된 레이어를 적용하여 디지털 현실에서 집을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 가상 세계, 메타버스는 특히 계속 대두되는 이슈이다. 우리는 언제나 현실을 잠시 떠남과 동시에 여전히 현실인 공간에 머물 수 있다. 윤교녕 작가의 <채우다, 살아가다>를 보면 공허한 현실 속에서도, 화면을 보면 내가 그 세계 속에 있다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상상력과 이미지들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물리적인 세계보다 가상의 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익숙하기도 하다. 정보만 하더라도, 우리는 가상의 공간에서 정보를 찾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어딘가를 가도, 사진을 기록으로 남긴다. 경험은 사진의 형태로 또 가상의 공간에 남겨진다. 인화되지 않는 사진은 터치 한 번이면 지울 수 있지만,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채 켜켜이 쌓여 있다가, 메모리가 과부하 되면 그제야 정리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런 가상의 것들이 담겨있는 물체는 물리적인 폭력에 무력화된다. 핸드폰을 던지고 노트북을 망치로 때리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들은 사라진다. 그러나 또 다른 컴퓨터에서 다시 백업된 파일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이러한 가상의 공간을 일종의 세계로 인정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다.
비욘 멜후스(Bjørn MELHUS), <향수병(HOMESICK)>, 2022.
비욘 멜후스(Bjørn MELHUS)의 <향수병(HOMESICK)>은 러닝타임 14분의 비디오아트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는 인간으로 추정되는 생명체들, 또는 인간이 각자 대사를 내뱉는다. 이 대사들은 최후의 날을 다룬 영화들에서 선택된 인용구이다. 이들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이는데, 점점 악화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상태를 알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중첩되거나 흩어진 메시지들은, 서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메시지를 해석하려는 관객은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
2023 네마프는 영화라는 한정된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영상 매체가 가지는 다양한 시도를 전달받을 수 있었던 영화제였다. 우리는 얼마나 영화라는 것에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가? 그동안 나는 영화 매체를 감상할 때 서사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서사가 흩어지고 파열되고 중첩되는 이미지들은 새로운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서사를 가진 영화라기보다는 우리가 물리적인 경험을 할 때 느낄 수 있는 감각, 고요함을 가지고 있는 영상들이 상영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전한’ 신체의 확장. 우리는 기술들의 발전에서 안전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체의 확장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우리는 이것들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무분별한 기술의 발달로 인한 확장은, 개개인의 인지 범위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개인을 파편화해서 흩어지게 할 만한 파급력을 지닌다. 활동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 오히려 개인이 인지하는 세계를 복잡하게 만들면서 머릿속에는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
비행기 등을 통한, 실제로 우리가 이동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물리적 인지 범위의 확장과 새로운 가상 공간 속 인식 범위의 확장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오긴 했지만,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미래에 끼칠 영향력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서울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 2023은 이러한 안전함에 귀를 기울이며, 이를 재고하게 해준다.
[심선용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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