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세상에 남겨진 K의 X에게, 연극 '모든 것은 그 자리에'의 유지수 연출

심리부검: 남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되어보는 과정
글 입력 2023.08.1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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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이유로 자살한 K. 그의 곁에 있던 동생, 연인, 친구, 심지어는 조사관까지 그의 심리부검에 참여하며 실제로 K가 되어본다. 그리고 이해한다. 그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읽고, 자신에게 느껴진 감정을 체화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이유는 여전히 흐릿하다. 당연하다. 이 연극은 단순히 누군가 죽은 이유를 찾아가는 프로파일링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현재와 그들이 만들어 갈 미래에 주목하는, 심리부검 면담이다.


엄숙한 분위기와 함께 시작된 심리부검 면담은, 알 수 없는 먹먹함을 넘기며 종료된다. 하나의 극을 관람했다기보다는 함께 K의 심리부검에 참여하고 왔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남긴 <모든 것은 그 자리에>. 과연 그들의 의자는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아니면 조금씩 비뚤어져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영원히 미제로 남을지 몰라도 의자 자체는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이를 다시 일으켜 줄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지난 8월 5일, 유지수 연출님의 첫 인터뷰를 진행했다. 경험이 없어 긴장했다는 말씀과는 달리 물 흐르듯 답변을 이어 나가는 모습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전작 <생일파티>에 이어 <모든 것은 그 자리에>까지 존재의 불안을 담담한 방식으로 전하는 ‘지상두시간’의 창립자. 이와 동시에 연출, 작가, 배우를 겸하며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불안한 존재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이야기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유지수라고 하고요. 현재 배우로 활동하면서 연출도 하고 가끔 글도 쓰고 있습니다. 

 

 

‘지상두시간’에서 만드는 작품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상두시간은 저를 포함한 배우 3명이 모여서 만든 단체로, 한 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주로 불안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한 것들을 토대로 창작하는 것 같아요. 실제 삶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불안들이 있잖아요. 그게 되게 부정적인 것들로 인식이 되지만, 그걸 가지고 있는 게 인간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불안한 존재, 그러니까 존재의 불안을 가진 인물들과 사연들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저희의 자전적인 불안에서 시작했어요. 연극에는 다양한 작품이 있는 만큼 다양한 배우가 있다 보니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뭔가 사회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 그렇다면 불안에 대한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네. 불안은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생기는 것 같아요. 이렇게 모호한 감정에 가까운 불안을 구체화하고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에 따라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삼일로 창고극장을 대관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기존에 객석과 무대가 분리된 프로시니엄과는 다른 형태를 시도하고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가변형 무대를 가지고 있고,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선배님들의 역사가 남은 삼일로 창고극장은 <모든 것은 그 자리에>의 의미와도 잘 맞았기에 이곳으로 대관했던 것 같아요.


- 양측에 배치된 관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게 하는 구조를 사용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우선 어렵고 무거운 소재에 대해 관객들이 어떻게 느낄지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가나 연출의 이야기를 전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일반적인 극 형태에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이처럼 관객과 작품과의 물리적인 거리를 통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 같아요. 


눈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전달하면 너무 버거울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멀리 있으면 남 이야기 같을 것 같아서 이러한 거리감을 결정하는 게 정말 어려웠죠. 그래서 결국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관객들이 배우를 바라보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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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을 통해 죽은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다


 

자살한 사람의 심리부검을 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게 되셨나요?

 

이번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한 기사를 접했는데요. 대학생 아들이 자살한 사건이었는데, 어머니가 아들이 죽은 후에 혀에 통증이 있었던 거죠. 아무리 검사를 해도 의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다 심리부검을 하면서 알게 되었죠. 어머니께서 아들이 집에서 게임만 한다고 계속 잔소리를 하셨는데, 이게 심리적으로 죄책감이 들었기에 혀에 통증이 생겼던 거예요. 


그 사실을 인지한 후부터 어느 순간 통증이 사라졌다 하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아는 것도 어려운데, 이미 없어진 사람을 알아내는 과정은 얼마나 더 어려웠겠어요. 그렇다면 심리부검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팀에서 생각하던 주제와 잘 맞는다고 느껴져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직접 심리부감 조사관을 만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시중에 나온 책이나 인터넷 기사를 봤던 것 같아요. 한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에서는 매년 그분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책을 내시더라고요. 그걸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무료 발행 해두셔서 저도 읽으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 심리부검을 하며 가장 많이 변화한 K의 동생 민용은 실제로 비슷한 일을 겪은 인물을 참고하신 건지 혹은 새롭게 창작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자료조사 중에서 심리부검을 하며 태도가 변했던 인물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을 많이 봤어요. 또 심리부검을 고안한 에드윈 슈나이드먼 박사의 『심리부검 인터뷰』라는 실제로 한 인물에 대한 심리부검을 모아놓은 책에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러한 설정을 민용에게 부여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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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일단 자살이라는 소재 자체가 세고 자극적이다 보니 조심스러웠죠. 세상에 있는 많은 작품이 자살을 다루고 있지만, 제가 본 작품에서는 결국 그 사람이 자살하게 된 이유나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로 귀결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자살한 사람의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백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어요. 사실 이유나 의도를 추측하는 것이 심리부검이지만, 그런데도 죽음이란 건 명확하게 알 수 없잖아요. 그렇기에 그들이 다시 살아갈지 혹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지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 개인적으로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자살에 대해 특별한 가치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럴 수 있다’ 혹은 ‘하면 안 된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또한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K를 이해한다는 건



등장인물 모두가 1인 2역을 맡으며 K를 연기하도록 한 이유가 있나요?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이 되어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연극의 연기와도 많이 닮아있죠. 그래서 배우들이 K를 표현할 때 특별히 통일하지 않고, 각자가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하자고 이야기했어요. 모든 배우가 연기한 K가 하나처럼 보이기보다는 콜라주처럼 어설프더라도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간극에서 관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길 원했죠.

 

- K의 심리부검을 맡은 조사관 유정에게도 같은 아픔이 있다는 설정은 처음부터 기획하신 걸까요?

 

이번 재연에서 대본을 바꾸면서 조사관 역할을 만들었어요. K를 몰랐던 유정 또한 심리부검을 진행하면서 그가 되어보는거죠. 누군가를 잃은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마음을 써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것도 좋겠지만, 이 길을 함께 걷고 이겨내려는 사람의 위로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설정을 넣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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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의사 역할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처음 자살에 관해 공부하면서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의사는 사회적 지위가 높고, 소위 말하는 ‘성공했다’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 직업이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의대생 사망률이 엄청 높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의 속마음은 어떨까 하는 점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비록 우울증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다른 차원에서는 존재하는 게 불안하고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극 중 K가 바다와 고래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유를 갈망하던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연출하신 의도나 비하인드가 있을까요?

 

바다와 푸른색, 불과 붉은색의 대비로 동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모습을 표현하면 어떨까 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사실 수진(여자친구)이 듣지 못할 때 죽고 싶다고 말하는 K의 장면은 그녀가 상상한 영역이라고도 생각해요. 본인이 물속에 들어가서 아무도 못 들을 때라도 K가 아픔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거죠. 사실 이런 식으로라도 그가 말할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또 K는 자신이 죽으면 좀만 더 아파하다가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수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말과 같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녀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탓하면서 고통스러운 상황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해서요.

 

- K가 고래가 되고 싶어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K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요. 그게 바다였고, 그 안에 있는 고래를 꿈꾸면 어떨까 했어요. K라면 대화의 단절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과 다르게 먼 거리에서도 초음파를 통해 모든 걸 알 수 있는 고래처럼 살고 싶지 않을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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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유지수 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던 사람. 연극이나 예술을 한다는 게 그런 역할인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한 마디?

 

이 작품을 보면서 주변을 한 번쯤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자료조사 하면서 놀랐던 게 자살 생존자라고 하면 자살 유가족이나 지인들뿐만 아니라 자살 시도를 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 자살 생존자라고 하더라고요. 


관객분들 또한 주변을 둘러봤을 때 자살 생존자라고 해서 멀리 있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한 분들이 이에 대해 한 번쯤 더 언급하고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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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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