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려한 고향으로의 귀향 - 고잉홈프로젝트, 볼레로: 더 갈라

글 입력 2023.08.1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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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고잉홈프로젝트_포스터.jpg

 

 

"더이상 음원으로 볼레로를 듣기 힘들 것 같다"


같이 공연을 갔던 친구에게 들은 감상평이다. 어떤 음악가라도 이런 찬사를 듣는다면 기뻐할 것이 틀림없다.

 

고잉홈프로젝트는 해외에서 활동하던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한 곳으로 모여 오케스트라를 결성하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역량을 갖춘 연주자는 주로 해외의 유명 오케스트라에 몸담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곳에서 활동하는 게 본인에 맞기 때문이다. 실력에 맞는 자리에서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실력 있는 연주자의 연주를 국내에서 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클래식 강국이라 하지만 해외 관현악단의 전통과 수준이 있기에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런 배경에서 해외의 음악가가 국내로 돌아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


 

<프로그램>

 

1부. "Symphonic"

 

에드바르드 그리그 - 심포닉 댄스 중

E. Grieg - Symphonic Dances op. 64 no. 1 in G major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중

J. S. Bach - from "Brandenburg Concertos"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호른 협주곡 중 3번 중 1악장

W. A. Mozart - Horn Concerto no. 3 in E flat major. K. 447 - I. Allegro

 

조아키노 로시니 - 바순 협주곡 중 2악장

G. Rossini - Bassoon Concerto in B flat major - II. Largo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 플루트 협주곡 중 3악장

S. Mercadante - Flute Concerto in E minor

- III. Rondo Russo: Allegro vivace scherzando

 

클로드 드뷔시 - 첫 번째 랩소디

C. Debussy - Première rhapsodie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1번 중 3.4악장

D. Shostakovich - Cello Concerto no. 1 in E flat major, op. 107

- III. Cadenza - IV. Allegro con moto

 

- 휴식 Intermission -

 

2부. "Dances"

 

에드바르드 그리그 - 심포닉 댄스 중

E. Grieg - Symphonic Dances op. 64 no. 2 in A major

 

외젠 이자이 생상의 왈츠 형식 에튀드-카프리스

E. Ysaÿe - Caprice d'après I'Etude en forme de valse de Saint-Saens

 

다비드 포퍼 - 타란텔라

D. Popper - Tarantella op. 33

 

장 밥티스트 아르방 - "베니스의 카니발"

J. B. Arban - "Le Carnaval de Venise"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 "호두까기 인형" 중 "사탕 요정의 춤"

P. I. Tchaikovsky - "Dance of the Sugar Plum Fairy" from the "Nutcracker"

 

아스트로 피아졸라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중 "여름"

A Piazzolla - “Cuatro Estaciones Porteñas" - I. Verano Porteno

 

비토리오 몬티 - "차르다슈"

V. Monti - "Czardas"

 

모리스 라벨 - “볼레로"

M. Ravel - "Boléro"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공연 3일 중 둘째 날의 곡 목록에 눈이 갔다. 연주하는 곡의 수가 이렇게 많은 적은 처음이다. 보통 하나의 곡을 모두 연주하는데 바쁜 반면, 다양한 곡의 한 악장씩 채워 넣었다. 마치 보여줄 모습이 너무 많아 아낌없이 눌러 담았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점에서 자신감이 드러났다.


필자가 감상한 공연은 둘째 날의 <볼레로: 더 갈라>이다. 수많은 곡 목록 마지막에 위치한 ‘볼레로’는 서서히 증가하는 음악적 구성이 매력적인 곡이다. 그런 곡이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다니 곡 선정과 배치에 큰 신경을 쓴 티가 나는 부분이었다.

 


(c)SihoonKim-GoingHome-181.jpg

 

 

공연을 관람해 보니 위 예상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1부와 2부의 시작을 여는 그리그의 심포닉 댄스 1, 2번은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의 역량을 잽싸게 보여주었다. 이후 이어지는 협주곡들은 재밌는 구성이다. J.S.바흐의 브렌덴부르크 협주곡을 서로 다른 곡의 1, 2, 3악장을 연주했다.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단원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앉기도 하며 변화를 주었다. 각 곡에 참여하는 연주자를 다르게 하면서 연주하는 모습은 다른 공연에서 보기 힘든 차별 요소였다.


이후 이어지는 호른-바순-플루트 협주곡의 1, 2, 3악장 또한 기대되는 구성이었다. 그러나 공연 시작 전 갑작스레 호른 협연자의 건강 문제로 다른 곡으로 대체되기로 고지되었다. 아쉽게도 세 악장의 흐름이 전달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바순과 플루트의 협주곡을 통해 충분히 협주곡의 면모를 잘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이런 구성과 생소한 협주곡의 공연은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지루하지 않게 즐길 만했다.

 

이어지는 드뷔시의 ‘첫 번째 랩소디’는 클라리넷이 주인공으로 나섰다. 드뷔시의 음색은 앞서 나온 음악들보다 몽환적으로 물결쳤다. 앞서 연주된 곡들이 드뷔시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작곡가들이기에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점을 인지했을 때 곡의 순서가 음악사 순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음악 스타일이 급격하게 변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클라리넷 특유의 공간을 알차게 울리는 음색이 드뷔시와 어울렸다.


한바탕 분위기를 환기한 후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의 연주가 있었다. 3악장부터 시작했는데, 첼로의 독주 파트인 카덴차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처음 듣게 된다면 당혹스러울 수 있다. 기존의 안정적인 화음을 음악에서 듣기 어렵다. 그 화음을 최대한 아끼면서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이런 점이 그의 음악을 들을 때 신선하고 독창성이 드러난다 느낀다. 첼로 협주곡을 처음 듣는 입장에서도 음악에 대한 흥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갈 때 첼로의 독주를 깨고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보태는 순간 느낀 전율은 아마 음악을 처음 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전율이리라 생각된다.

 

 

(c)SihoonKim-GoingHome-223.jpg

 

 

2부 역시 그리그의 심포닉 댄스 2번으로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의 아쉬운 점이 잠깐 드러나는 부분이었는데, 관객의 부족한 참을성이 한번 여기서 드러났다. 클래식 곡은 의도적으로 침묵을 연주하기도 한다. 잠깐의 정적이 음악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하는데, 이 부분을 잘 모른다면 곡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충분히 고지가 되지 않았거나, 남들보다 박수를 먼저 치고 싶다는 심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이후로는 섣부른 박수 소리가 공연을 방해하는 일은 없었다.


이후 이어진 곡들은 1부에 비해 각각이 가진 개성이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외젠 이자이부터 비토리오 몬티까지 이어진 곡들은 협연자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으면서 공연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유기적으로 어우러졌다. 각각의 특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만큼 집중도도 길게 이어질 수 있었으며 곡마다 즐길 점을 찾는 재미도 있지 않았을까 예상된다.


앞서 1부에서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1악장이 연주되지 못한 덕분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1부에서 열심히 공연하던 클라리넷 수석과 3일 차 공연의 지휘자로 나서는 발렌틴 우류핀의 클라리넷 듀엣을 듣게 되었다. 멘델스존의 Konzertstück No.2, Op.114 중 3, 4악장을 연주했는데, 두 대의 클라리넷과 손열음의 피아노 반주로 진행되었다. 공연 직전에 급작스럽게 결정되어 성사된 연주임에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선물이었다.


공연의 마지막은 ‘볼레로’가 차지했다. 하나의 주제를 끝까지 이어가며 오케스트라 단원 하나하나를 주목하도록 하는 데에 적격이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볼레로의 실황 연주를 듣게 된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적절한 템포와 적절한 볼륨 증가 기울기, 오케스트라 전체의 균형까지, 마치 앞선 곡들에서 보여주었단 개개인의 역량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처럼 들렸다. 다소 혼잡스러운 레파토리를 ‘볼레로’에서 깔끔히 정렬했다.


공연을 마치자 앞서 진행한 1일 차의 공연과 다음 날 펼쳐질 3일 차 공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과연 다른 공연에선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를 할 만한 훌륭한 연주였다. 세 공연을 모두 관람했다면 참으로 좋았겠지만,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다음 기회까지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공연은 필자에게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아마 다른 관객들에게도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클래식을 알린다는 측면에서나, 고잉홈프로젝트를 알리는 목적에서나, 훌륭한 공연을 고향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소망에서나 말이다.

 

 

[윤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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