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알못이 클래식 공연을 보며 그린 그림 - 고잉홈프로젝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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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음악인들이 한국을 매개로 ‘홈’에 모이는 <고잉홈프로젝트>는 8월 1일부터 3일간 각기 다른 테마로 진행됐다.
그 중, 2일 차 ‘볼레로:더 갈라’ 공연에 다녀왔다. 첼리스트 김두민, 호르니스트 김홍박, 플루티스트 조성현, 클라리네스트 조인혁 등 세계적으로 굵직한 음악가들이 한국에서 모였다. 음악을 통해 하나 되는 것이 공연의 의의이자 매력이었다.
클래식이라고는 학교 음악시간에 들었던 게 다인 음알못이지만 피아니스트 ‘손열음’이라는 이름만 보고 덜컥 다녀왔다. 악기 이름들만 겨우겨우 아는 상태에서 할 수 있었던 건 눈과 귀를 바삐 움직이기. 여러 악기 레이어가 겹치며 추가될 때마다 연주자들의 몸짓과 악기 모양을 보며 ‘저 악기다’하며 색출해 냈다.
그리고 각 악기 소리의 선들이 익숙해진 뒤에는 시야를 뿌옇게 흐려버린 채 머릿속에 대지를 펼쳤다. 영상을 만지고 공연을 즐겨봐서 그런가. 소리의 선들이 스케치하는 장면이 재생됐고, 투명한 애니메이션을 그리며 공연을 감상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하나의 사회였다. 연주된 협주곡에서 독주 악기의 특색이 선명하게 느껴져서 각 악기가 뿜어내는 선의 굵기, 모양들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악기들은 배경으로 펼쳐진다. 협주곡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악기를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각 악기들이 들어오거나 빠질 때 채워지고 비워지는 게 느껴진다.
특히 묵묵한 인상이 강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존재감이 가장 컸다.
바수니스트 유성권 이끈 ‘바순 협주곡 중 2악장’은 낙엽 같았다. 쓸쓸하고 무겁게 가라앉는 듯하지만 가볍게 날아다니는 장면이 그려졌다. 플루티스트 조성현이 이끈 ‘플루트 협주곡 중 3악장’은 새가 지저귀는 듯한 플루트의 음색이 맑게 표현된 곡이었다.
이어 클라리네스트 조인혁이 이끈 ‘첫 번째 랩소디’는 흐르는 냇물을 길어내는 이미지가 그려졌으며 첼리스트 김두민이 이끈 ‘첼로 협주곡 1번 중 3, 4악장’은 낮은음만 연주할 거라 여겨지던 첼로의 다양한 음을 전해줬다.
2부는 더욱 웅장했다. 심포닉 댄스 2번으로 2부의 막이 열렸고,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린 일리에스쿠가 이끄는 ‘생상스의 왈츠 형식 에튀드-카프리스’, 첼리스트 문응휘가 이끄는 ‘타란텔라’, 트럼펫터 알렉상드르 바티가 이끄는 ‘베니스의 카니발’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면서 어떤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이미지가 재생됐다. 악기와 한 몸이 된다는 표현이 비유가 아니라 묘사임을 깨달자 그들이 몰입한 세계가 온전히 전해지는 듯했다.
이어서 친숙한 ‘호두까기 인형 中 사탕 요정의 춤’이 연주됐다. 흰 설탕 가루가 조각조각 묻은 알록달록한 사탕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었다. 이어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가 이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中 여름’, ‘차르다시’가 연주됐고, 모든 악기가 한데 모여 음악을 쌓아 올리는 ‘볼레로’로 공연의 막이 내렸다.
재잘거리던 대화 소리가 퍼져나가 하나의 웅성거림이 되는 모습이었다.
한 겹씩 다른 악기가 쌓여 음악이 되는 감각은 선이 모여 그림이 되는 상상과 적절히 어우러졌다. 오케스트라는 음악에서 불필요하거나 덜 중요한 악기가 없고, 음악으로 완성해 나가는 그림에서 쓸모없는 선이 없다는 걸 깨닫게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쓸모’에 대해 질문을 남겼다.
[정은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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