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파랑새란 걸 믿어줘 : 연극 '붉은 파랑새' [공연]

색이 바랜 행복은 행복이 아니게 될까
글 입력 2023.08.0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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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틸틸과 미틸. 추억의 나라, 밤의 공간, 숲속, 행복의 궁전, 미래의 궁전을 모두 둘러보았지만 파랑새를 데려올 수 없었던 두 남매는 집으로 돌아왔고, 뜻밖에도 집에 그들이 그토록 찾던 파랑새가 있었다. 집 안에 있던 새장 속에 말이다!


우리에게는 동화로 더욱 익숙한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에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다음은? 이내 날아가버린 파랑새가 알려준 행복을, 틸틸과 미틸은 영원토록 간직했을까?


<산울림 고전극장>은 고전문학의 이야기를 새로운 언어로 옮겨 무대를 구성하는 소극장 산울림의 프로그램이다.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원형적 스토리텔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2023년의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극단 뭉쳐'는 연극 <붉은 파랑새>를 통해 파랑새 이야기 그 뒤의 시간을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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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모험으로부터 20여 년 지난 어느 날, 틸틸과 파랑새가 재회한다. 많이 늙고 병든 파랑새와 이젠 어른이 된 틸틸. 옛 모험이 그립다면서 어린 날을 회상하는 틸틸을 바라보던 파랑새가 오래된 다이아몬드 모자를 꺼낸다. 다시 눈을 반짝이는 틸틸에게 파랑새는 어떤 조건 하나를 내건다. 성공적인 모험을 위한 단 하나의 조건.

 

"내가 파랑새란 걸 믿어줘."

 

틸틸과 파랑새는,

과연 무사히 모험을 마칠 수 있을까?

 

 

20여 년이 지난 뒤의 틸틸은 나이는 들었지만 조금도 어른이 되지 못한 청년이다. 삶에 대한 흥미도, 행복도 잃어버린 채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언제나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던, 당차게 도시로 떠난 동생 미틸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그때 파랑새가 나타난다. 깃털이 다 빠져 붉은 피부를 다 드러낸 모습의 볼품없는 파랑새가. 파랑새는 대뜸 틸틸에게 행복하냐 묻더니,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틸틸에게 다시 모험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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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기 위한 여정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번에도 그 답은 처음부터 틸틸에게 주어져 있었다. 붉은 파랑새가 던진 유일한 조건, "내가 파랑새라는 걸 믿어줘."라는 말속에 말이다.


사람의 '믿음'이 가지는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과 가족의 사랑이 모여 행복이 된다는 걸 깨닫기 전의 어린 틸틸과 미틸의 눈에는 파랑새가 비둘기로 보였던 것처럼, 올바른 믿음이 없다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말로만 붉은 파랑새가 파랑새라는 걸 믿는다던 틸틸은 결국 두 번째 모험에서 빈 새장의 환상을 마주했을 때, 오직 완전한 파랑새의 모습을 갖춘 새만이 파랑새라며 허상에 홀려버린다. 붉은 파랑새가 가짜라고 생각해온 틸틸의 속마음이 드러난 셈이다.


가난과 늙음을 두려워하고, 붉은 파랑새는 가짜라며 인정하지 않는 틸틸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모두가 인정하는 완벽한 행복만이 행복이고, 그 표준에서 벗어난 것들은 가짜라고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색이 바랜 행복은 행복이 아니게 되는 걸까? 낡은 추억, 늙은 파랑새는 더 이상 추억도 파랑새도 될 수 없는 걸까?


우리는 반드시 시간의 흐름을 겪게 된다. 늙어버린, 청춘의 푸름을 잃은 순간을 누구나 마주하게 된다. 더 이상 빛나지 않는 순간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반짝이는 것만을 좇고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색이 바래버린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법은 연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나간 날의 아름다움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그 행복에도 끝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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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가진 다양한 상상과 감각들을 하나의 큰 힘으로 모아 연극을 만들기 위해 뭉쳤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뭉쳐'만의 창의력으로 새로운 연극 양식들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 극단 뭉쳐 소개글

 

 

끝나버린 과거를 추억으로 간직하되, 얽매이지 않도록 주체적으로 마침표를 찍는 법. 어른이 되어가며 꼭 배워야 하는 삶의 지혜를 극단 '뭉쳐'는 익살스러운 연기를 통해 재치 있게 전달한다.


동화 같은 효과음과 귀여운 분장 덕분에, 마치 어릴 때 좋아했던 어린이 연극을 보는 것만 같았다. 좁은 무대지만 일부러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건넴으로써 사람들을 몰입시키며 소극장의 매력을 120% 활용했다. 무엇보다 무대에 오른 모든 배우가 온 힘을 다해 연기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보는 내내 즐거웠다.

 

객석에서 느꼈던 열정을 기억하며, 그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틸틸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곱씹어본다.

 

 

[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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