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왜 항상 여자들은 미쳐 있을까? - 여전히 미쳐 있는 [도서]

글 입력 2023.08.0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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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가 돌아왔다. 페미니즘 비평의 중심에 있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후 40년 만이다. 문학 비평에 관한 여러 자료에서 이제는 하나의 관용구처럼 등장하는 ‘길버트와 구바’는 이제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문학을 다루다 1950년대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글 쓰게 된 배경에는 2016년 제45대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대부분에게) 충격적인 결과가 있다. 

 

리베카 솔닛도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2018, 창비)에서 45대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날의 기억으로 글을 시작한다. 무능한 백인 남성과 유능한 백인 여성의 대결에서, 백인 남성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미국 지식인에게 큰 충격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길버트와 구바는 (물론 리베카 솔닛도) 결과에 잠겨 좌절하지 않는다. 2017년 1월 21일 당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 일어났던 당일 시위 중 최대 규모였던 여성 행진이 1970년대 유토피아로 향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가득 차 있던 페미니즘 시위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길버트와 구바는 “과연 그동안 얼마나 많은 페미니즘의 ‘물결들이 있었나 하는 문제”(13쪽)를 맴돈다고 하였다. 어쩌면 2017년, 다시 새로운 물결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운동 이전에 태어난다는 것


 

 
“여성운동 이전에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수수께끼는 심리치료사가 앨리슨에게 그녀의 어머니에게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서 주로 뭘 배웠어요?’라고 물어보라고 설득한 뒤에 풀렸다.” (437쪽)
 


벡델 테스트의 창시자 앨리스 백델은 어머니 헬렌 백델에게 질문을 한다. 헬렌은 답했다. “아들이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지.”(437쪽) 

 

2023년에 ‘여성운동 이전에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상상하자면 까마득한 과거로 돌아가야 할 수도, 혹은 그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부모나 주변의 어른을 바라보기만 해도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시기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처럼 여성은 자궁과 등치시키는 사회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사회가 길리어드보다 낫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막 근대 소설 형식이 정립되던 시기인 1600년대 후반, 글쓰기는 “펜은 페니스의 은유”(15쪽)였다. 그러므로 여성이 글 쓰는 일은 자기 몸을 드러내는 일이었으며, 이는 몸을 파는 일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여성에게 글쓰기가 금지되는 시대에도 글 쓰는 여자들(마거릿 캐번디시, 애프라 벤)이 있었다. 이후 여성 작가라면 가정 내의 이야기나 하찮게 여겨지는 로맨스 소설만이 허용되던 시절에도 가부장적 제도가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과 부조리를 여성에게 허용되는 로맨스 장르 안에서 꼬집어 다루던 작가들이 있었다. 여성운동 이전에도, 여자들은 계속 글을 썼다. 

 

1660년대에 소설을 쓴 마거릿 캐번디시는 ‘미친 마거릿’이었고, 1792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것이 진리였던 시기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최초의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페티코트를 입은 하이에나’였으며, 파괴적인 사랑을 다룬 《폭풍의 언덕》을 쓴 가상의 남성은 굵은 필체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작가였지만, 실제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는 ‘미친 여자’였고, 하원 최초의 여성 대변인 낸시 펠로시는 트럼프의 “거짓 텍스트, 자아도취의 텍스트, 나라를 분열시키고 나라의 안전망들을 와해시키려는 불한당의 텍스트”(488쪽) 속 ‘미친 낸시’였다.


도대체 이전부터 여성들 앞에 붙는 이 수식어 ‘미친Mad’는 무엇을 뜻하는가? 왜 길버트와 구바의 전작의 제목도 다락방의 여자가 아니라,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이며, 왜 2021년에도 여전히 ‘미쳐 있는’가? 《여전히 미쳐 있는》을 다 읽고 나면 위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뀐다. 왜 2021년에도 여성은 여전히 미칠 수밖에 없는가?


미쳤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여성들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실비아 플라스가 테드가 남자이며 가장이라는 이유로 테드에게 지원금을 주어야겠다는 편지 답장을 받았을 때, 에이드리언 리치가 세 아들을 키우면서 자아의 종말을 겪어가고 있었을 때, 오드리 도르가 참석한 파티에서 “접시의 고기 조각들은 ‘여성의 성기 모양처럼 겹겹이 쌓여 절정에 이른 쾌감을 표현하듯 마요네즈가 살짝 뿌려진 모습으로 멋지게 놓여 있’”(94쪽)던 것을 보았을 때, 프리단의 “교육이 분명 우리를 더 나은 아내와 어머니로 만들었다”(103쪽)는 믿음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때, 그리고 여러 잡지에서 프리단의 글을 싣기를 거절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는가?

 

1950년대 강력한 가부장제 신화가 여성들을 조종하던, 아주 고요하며 평온하던 시절에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가 미국의 행복한 가정주부라는 이미지를 뚫고 부글부글 끓어 넘치고 있”(105쪽)던 시기에, 어떤 여자가 미치지 않고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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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 있는》은 1950년대부터 10년의 단위로 미국 페미니즘 흐름을 파악하여 문학, 정치, 사회를 잇는 전방위적 흐름을 제시한다. 그사이 굵직한 여성 예술인들의 작품을 이야기하며, 당시 시대상을 분석하고 그 작품이 여성운동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기술한다. 

 

1950년의 가부장적 가족의 실체를 파악하고 레즈비언 공동체의 등장을 알리며 실비아 플라스, 에이드리언 리치, 베티 프리단, 오드리 도르 등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설명한다. 1960년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가부장제에 반대하며, 베트남전 반전 운동을 벌이고 1968년의 여성 해방운동으로 이어진다. 당시 성 혁명으로 급진적인 주장을 하던 글로리아 스타이점과 헬린 걸리 브라운의 주장을 소개한다. 

 

이후 급진적인 각성의 1970년대에는 케이트 밀릿의 《성 정치학》부터 어슐러 르 귄, 조애나 러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1970년대 등장한 페미니즘 사변 소설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전개된 페미니즘은 그만큼 분열되기도 하였는데, 페미니즘 운동의 세력이 확장되며 유토피아적 이상은 이내 흑인/백인, 레즈비언/이성애자, 급진주의/자유주의라는 차이 아래 분열되며 세력이 약해진다. 또한 백래시 운동의 등장으로 페미니즘이 ‘죽었다’는 위협까지 받게 된다.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은 주디스 버틀러,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에 의해 정체성 정치와 철학 담론의 난해한 글쓰기 영역으로 옮겨간다.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페미니즘은 ‘퀴어’의 재정의에 힘쓴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성은 접근성이라는 지점에서 학계 내외를 분열시키기도 한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이 출간되며 계속해서 새로운 이슈와 담론이 등장한다. 정체성 성치와 철학 담론의 난해한 글쓰기 영역으로 옮겨간 동시에 백래시와 반페미니즘 세력들이 대립하며 혼선의 시대가 된다.

 

9.11 테러와 이라크 침공이라는 사회적 배경으로 코드 핑크처럼 시위에서 반전과 평화주의를 주장하던 21세기에는 여러 소수자 운동(흑인, 환경, 이민자)으로 확대된 여성운동의 배경을 설명하고 앨리슨 백델부터 N.K. 제미신까지 저작을 소개한다. 21세기는 트럼프 정부의 여성혐오적 발언과 정책들에 반대하며 들고 일어남과 동시에 미국 하원 의원 중 여성의 비율이 4분의 1을 차지하던 시기이다. 트럼프의 재임 실패 후 조 바이든이 당선되며 카멀라 해리스가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최초의 흑인 부통령이 된다. 


1보 전진과 2보 후퇴를 반복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미국의 커다란 역사의 흐름을 정리한 길버트와 구바의 《여전히 미쳐 있는》은 생각하는 여성들의 계보를 정리한 단 한 권의 책임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미친’ 정체성을 유지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바이블이 될 것이다. 

 

다락방에 갇힌 미친 여자는 음침한 남편의 저택에서 나와 하원의원이 되고, 미국 부통령의 자리까지 꿰찼다. 그렇다고 그들이 미치지 않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미쳐 있다. 그러나 남성들이 정의하는 의미대로 미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미쳐 있을 것이다.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미쳐 있는’ 여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거 미국 여성운동의 흐름에서 지금의 한국은 어디쯤 자리 잡고 있는지, 다양한 인종 담론이 배제된 담론장에서 한국의 여성운동은 어떠한 분열을 겪을 것인지, 그리고 그 담론을 주장하는 여전히 미쳐 있는 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쓸지 너무나도 궁금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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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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