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ge를 따라서] 시간을 간직한 깊은 숲 속 흙내음, 파츌리

글 입력 2023.08.01 14: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느덧 향기 칼럼 "Sillage를 따라서"를 일 년 가까이 연재 중이다. 2022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한 달 정도 지나면 딱 일 년이 된다. 사실 잊고 지나친다면 별일 아니지만(나도 문득 예전 글을 찾아보다가 깨달았고 말이다), 소소한 자축의 의미로 이번 글에서는 특별한 향기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한다.

 

패츌리, 혹은 파츌리. 영어로는 Patchouli라고 쓰며 이름의 유래는 타밀어라고 한다. 초록을 뜻하는 단어 ‘Patchai’ 그리고 잎을 뜻하는 단어 ’ellai’의 결합이라고 하는데 이름처럼 밝은 초록빛 잎사귀를 지닌 식물이다.

 

파츌리 오일은 내가 참 사랑하는 향기 중 하나다. 파츌리 오일은 잎사귀에서 추출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무 혹은 뿌리에서 나온다고 여기고는 하는데, 그런 오해가 이해될 만큼 진득한 숲의 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밝고 산뜻한 숲은 아니다. 빛이 잘 들지 않고 어둑한 음지의 숲이 떠오른다. 시더우드가 떠오르는 마른 나무 장작의 향, 습기와 축축함을 발산하는 흙 내음, 그리고 응축된 풀의 맵싸함이 뒤섞인다. 이렇게 들으면 도저히 좋은 향으로는 느껴지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흙과 대지의 기운을 지닌 파츌리의 매력에 빠지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향은 없을 것이다.

 

 

[크기변환]파츌리2.jpg

 

 

보통 1kg의 파츌리 오일을 얻기 위해서는 약 250kg의 신선한 파츌리 잎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잎을 그늘에서 며칠간 건조하는데 이때 약 50kg 정도가 되고, 마른 잎을 수증기 증류하면 약 1kg의 파츌리 에센셜 오일이 탄생한다. 무게에서도 감이 오듯 파츌리의 에센셜 오일은 정말 농축된 성분의 집약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일은 밝은 황금빛에서 진한 고동색으로 변해가고 향 또한 마치 와인이 숙성되듯 깊고 울림 있게 변한다. 생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일과 어느 정도 숙성된 오일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꽤나 확연하다. 이 지점이 내가 파츌리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트러스같이 신선함이 중요한 오일들과는 다른 결을 지녔다.

 

시간을 겪어내고 그 역사를 담은 파츌리 오일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속삭인다. 어린나무들이 가득한 숲과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조성된 깊은 숲을 상상해 보자. 잠깐 떠올리기만 해도 그 둘의 기운과 울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파츌리의 향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땅의 기운을 뽑아올려 자라나 거대한 음지를 드리우는 어두운 녹음을 연상시킨다.

 

 

[크기변환]파츌리4.jpg

 

 

파츌리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를 원산지로 한다. 매해 전 세계에서 약 1,500톤의 파츌리 오일이 생산되는데 그중 90%는 인도네시아산이다. 파츌리는 여타 허브 종류들이 그렇듯 방충 효과가 뛰어난 식물인데, 이 덕분에 유럽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과거 인도네시아에서 프랑스로 고급 천을 수출하였는데, 이 때 오랜 항해 동안 천이 벌레에 상하지 않도록 옷감 사이사이에 파츌리 잎을 넣어서 보냈다. 그렇게 유럽에 도착한 천에는 파츌리의 향기가 배어있었고 자연스럽게 유럽인들은 파츌리의 향기를 고급스러운 옷감의 향으로 기억했다.

 

시간이 흘러 1917년에 파츌리의 역사에서 기록될 만한 향이 탄생하는데, 바로 코티(Coty)의 시프레(Chypre)다. 향수의 노트 중 ‘시프레’ 노트가 있을 만큼 하나의 장르를 담당하는 조합인데, 이 조합이 바로 동명의 향수 시프레에서 따온 것이다. 주로 베르가못, 오크모스, 파츌리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향조이다.

 

이 시프레의 탄생 이후 파츌리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131.jpg


 

또 한 번의 파츌리 전성시대는 60년대에 찾아왔는데, 파츌리의 향기를 ’60년대의 향‘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당시에는 자유를 외치며 음악과 파티를 즐기는 히피 문화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 히피들이 파츌리 오일을 피부에 발랐다고 한다.

 

독특하면서도 깊고 자연스러운 파츌리의 향이 그들을 대변하기에 딱 맞았을 듯싶다. 비록 당시에는 파츌리 오일이라고 구했어도 아주 질이 낮은 오일이거나 합성향이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파츌리가 히피들에게 사랑받았던 향기임에는 변함이 없다.

 

또 하나 파츌리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는, 팝의 여왕 마돈나에 관한 것이다. 80년대를 군림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마돈나는 89년에 앨범 "Like a prayer"을 발매하며 한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이때 발매된 초판 카세트 및 LP에는 파츌리 오일이 한 방울씩 도포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앨범을 열었을 때마다 파츌리의 향이 났고, 외국의 글들을 살펴보면 보관상태에 따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미하게 향이 나는 앨범들이 있다고 한다.

 

 

[크기변환]파츌리3.jpg

 

 

글 내내 파츌리에 대한 사랑을 열렬히 표현했지만, 사실 파츌리는 호불호가 굉장히 심한 향이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향수의 향조에 파츌리가 들어있기만 해도 꺼릴 정도이니 말이다.

 

일반적인 꽃향기처럼 누가 맡아도 상대적으로 불호라고 느낄 여지가 적은 향은 아니다. 깊고 진하다고 표현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강하고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파츌리를 추천하는 이유는, 나도 한때는 파츌리가 들어간 향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 매력을 안 이후로는 파츌리가 없는 향은 싱거운 맹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 밋밋했던 향도 파츌리를 더해주면 위 아래 양옆으로 향이 확장되듯이 풍부해지고, 다른 향들의 장점을 극대화 시켜준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서 거부감이 줄어들고 좋아지는 향기들도 많으니 다양한 시도를 해보길 추천한다. 다양한 향을 즐길 줄 알면 그만큼 나의 후각의 세계는 더욱 넓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크기변환]파츌리1.jpg


 

[김유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