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완벽을 꿈꾸는 그대에게 [도서]

마이클 샌델, 『완벽에 대한 반론』(와이즈베리, 2016)
글 입력 2023.07.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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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칠한 외모와 지성, 그리고 재력. 누군가 ‘완벽’이란 단어를 말한다면 우리의 상상은 흔히 이런 그림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존재 방식에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처럼 규정하고, 그 기준들을 충족한 누군가를 선망하며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 세계의 완벽함을 규정하고 공고히 한다. 세계의 완벽함이 단단해질수록 우리는 완벽에서 점차 멀어지고, 또 갈망한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의 다른 책을 집어든 것은 제목의 ‘완벽’에 끌린 것이 아니라 ‘반론’에 감응한 이유다. SNS를 중심으로 완벽에 대한 비정상적 충동이 만연한 사회에서, 완벽을 추앙하고 불완전을 배척하는 차가운 자본의 세계에서, 언젠가 감히 정의를 고민하려고 했던 한 천재가 내는 반론의 목소리에 선뜻 공감하고 싶었을 테다. 사실은 내가 완벽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음을, 그리고 도무지 가까울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완벽의 꿈을 향해 던지는 점잖은 반박, 『완벽에 대한 반론』을 읽는다.


저자 마이클 샌델의 질문은 전장에 열린 포문처럼 강렬하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기 원해 청각장애 가족 출신 남성의 정자를 기증 받은 레즈비언 부부의 사례나, 건강한 신체에 지성까지 갖춘 여성의 난자를 제공 받기 위해 광고를 올린 불임 부부의 사례처럼, 그는 어쩐지 윤리적 불편함을 유발하는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꺼낸다.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생명을(혹은 생명체의 신체나 정신적 기능을)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일”인지 고민하자는 취지다.


완벽에 심취하여 그 기준에 맞는 생명을 창조, 혹은 강화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만약 유전학의 발전으로 “근육의 힘과 기억력과 기분을 향상시키고, 자녀의 성별과 키를 비롯한 유전적 특질을 선택하고, 신체적·인지적 능력을 개선”(20쪽)하여 그야말로 ‘완벽한’ 존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그러한 방법을 선택할까. 매력적인 외모가 완벽의 최초 조건이 되는 섹스어필의 시대이므로, 혹은 장애가 여전히 삶의 질을 무너뜨리는 장벽이 되는 시대이므로, 적어도 모자람 없는 육체적 완벽함은 어떤 방식으로 추구되어도 옳지 않을까.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기에. 통제권을 쥘 수 있게 만드는 방식들은 다분히 옳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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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란 개념은 현실을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지향해야 하는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완벽에 대한 추구가 인간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지점은 분명하다. 완벽함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대상화한다. 완벽의 만연 속에서 인간은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완벽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대상이 되고 마는 것. ‘완벽하지 못한 당신은 결정권이 없다, 그러니 당신의 존재는 묵살되어야 한다.’ 대상화는 당신에 대한 존중의 결여로 이어진다.


상대적 우월함이 부와 명예의 기준이 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완벽함을 더욱 위험한 개념으로 만든다. 언젠가 완벽의 기준이 변화되는 시기가 도래하면 상대적 불완전 존재들은 반드시 생겨난다. 불완전해진 것들은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치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 불완전―가치 없음의 존재는 빠르게 변화하는 완벽의 세상에서, 그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전에, 끝없이 버려지고 말 테다.


과거 우생학이 그랬듯 어쩌면 완벽함이란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윤리적 사유를 지우는 방식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이미 완벽에 가까운 많은 존재들―외모와 재력과 권력을 갖춘 이들―이 그렇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아도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 이들조차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생학과 유전공학의 문제점은 그것이 일방적인 승리를 대변한다는 점이다. 가령, 계획적인 의도가 선물에 대한 감사의 태도를 누르고, 지배하는 자세가 경외하는 자세를 누르고, 틀에 맞춰 만들어내는 것이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을 누르고 이기는 경우다.” p.111
 


출간된 지 벌써 몇 년이 흐른 책에 새겨진 샌델의 우려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억압적 자세가 우주를 닮은 인간 존재 자체를 경외하는 마음을 억누른다. 철저히 통제하여 승리만을 추구하는 시선이 넉넉하고 여유로운 관심의 시선을 몰아낸다.

 

그러나 샌델의 말처럼 삶은 각자에게 주어진 분명한 선물이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무궁한 가능성의 선물을 사랑하면서, 차가운 완벽보다는 따뜻한 불완전을 감사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완벽함은 완벽한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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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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