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글 입력 2023.07.1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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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다양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책이다. 제노사이드는 특정 문화, 민족, 인종의 구성원들에게 의도적으로 행해진 집단 학살을 뜻하는데, 나치가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한 ‘홀로코스트’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아르메니아와 아우슈비츠, 캄보디아, 보스니아, 칠레, 아르헨티나와 제주도를 여행하며 각 장소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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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제노사이드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집단 학살은 아우슈비츠와 제주 4.3 사건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노사이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장소에서 더 다양한 형태를 띠며 발생해 왔다.

 

 

 

제노사이드는 영원한 상처를 남긴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제노사이드는 국가 정권이 자국민에게 행한 대량 학살이다. 다른 학살들이 정치적인 지지를 얻는 목적이거나 종교적인 갈등에서 비롯된 것과는 다르게 정권의 이상 실현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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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팔찌들



완벽한 공산주의 국가를 꿈꿨던 크메르루주 정권은 3년 8개월 동안 캄보디아 인구의 3분의 1을 학살한다. 크메르루주는 교사와 의사를 비롯한 지식인층을 학살하며 기존의 사회 체계를 해체하려 했다. 더 나아가 외국인, 종교인, 재산이 ‘있을 것 같은’ 사람 등. 정권이 내세운 얄팍한 ‘진정한 캄보디아 인민’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즉각 처형당했다.

 

킬링필드 제노사이드는 그 자체로도 참혹하고 끔찍한 사건이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수많은 정치적, 국가적 장애를 유발했다는 문제가 있다.

   

 

캄보디아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와 관련 트라우마 질병이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나라다. 112p

 

자신도 모르는 새에 당 간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아주 작은 일조차 곧 죽음으로 이어졌던 공포의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국가 최고위 권력층에 반기를 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크메르루주의 망령은 아직도 캄보디아 전체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그 시대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118p

 

 

집단 학살로 인한 개인들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제노사이드를 명분으로 한 외국의 침략과 새 정부의 부정부패 등 수많은 연쇄적인 해악들이 나라를 병들게 했다. 이처럼 제노사이드는 개인과 사회, 집단에 치유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특수성 이전의 학살, 그 자체를 주목하자


 

예전에 인터넷을 떠돌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본 적이 있다. ‘히틀러는 왜 그렇게 유대인을 싫어했을까?’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히틀러의 꿈을 좌절시킨 인물이 유대인이었다든지, 유대인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다는 둥 근거 없는 가설들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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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비

 

 

하지만 제노사이드를 기억할 때 중요한 것은 학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 ‘아, 그래서 죽인 거구나’하고 납득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폭행 사건을 바라볼 때 피해자의 옷차림에서 원인을 찾거나, 가해자의 가정 배경을 헤아리려는 시도와 비슷하다. 물론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그 이상으로 원인과 배경에 주목하여 특수성을 부가해 버린다면, 제노사이드를 ‘특별한 상황에 일어난 특별한 일’이라고 단정 지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이러한 점을 경고한다.

   

 

(...)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공간들에, 살해당한 사람들에, 무언가 특이한 점이라고는 없었다. 그러한 일들은 어느 날 우주에서 떨어진 미치광이 몇 명이 저지른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87p

 

 

특정 집단을 말살한 무차별한 학살은 시대를 넘고 국가를 가리지 않으며, 한 국가 내부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 피해를 입었던 국가가 또 다른 국가에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반복되어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제노사이드의 역사가 우리와는 동떨어진 다른 행성의 사건이 아님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제노사이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조금 부풀려 말하자면 누구나 학살의 동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힘은 강력하다. 사회 전체에 어둠을 드리울 수 있는 집단 학살을 가장 잘 방지하는 방법은 현재의 우리가 계속해서 제노사이드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제노사이드에게 ‘제노사이드’라는 이름을 되찾아 주고 남은 자들의 상처를 올바르게 바라본다면, 누군가에게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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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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