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소극장 무대 장치 연출의 끝판왕, 멸화군

글 입력 2023.07.0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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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화군(滅火軍)은 실제 우리 역사상 최초의 전문 소방관이다. 세조 때인 1467년, 50명의 군인으로 편성되어 화재 현장에 출동해서 불을 껐다고 한다. 멸화군의 전신은 ‘금화군(禁火軍)’이었는데, 화재 예방 업무를 담당하고 방화범을 잡으러 다니는 역할이었다. 세종대왕은 화재 사고를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인재(人災)’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재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도 맞닿아 있는 듯, 뮤지컬 <멸화군>의 멸화군인 중림과 천수도 불이 났을 때 불을 끄러 가는 일에만 치중하지 않고 방화범을 색출하는 노력도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데도 불구하고, 작중에서 멸화군은 백성에게 ‘불이 나면 왜 미리 못 막았느냐고 욕먹고, 불이 안 날 때는 뭐 하러 존재하냐고 욕먹는’ 존재이다. 실제로도 멸화군의 활동으로 화재가 일어나지 않자 규모의 축소와 폐지가 반복되며 인조 때인 1637년에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러나 목숨 바쳐 불로부터 백성의 삶을 구했던 ‘멸화군’을 소재로 드라마틱한 서사와 훌륭한 무대 장치를 보여준 뮤지컬 <멸화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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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조명, 영상의 화려한 연출, 소극장 끝판왕!


 

<멸화군>은 가히 이때까지 본 모든 소극장 뮤지컬 중 무대가 가장 화려했다고 말할 수 있다. 대극장에서 볼 수 있는 무대 사용 방식의 80%를 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무대 앞쪽과 안쪽에서 사용되는 스크린은 적재적소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투명해지는 연출을 자유자재로 해서 연출의 생생함을 극대화한다. 불이 난 후 타버린 흔적을 통해 불이 났을 때의 상황을 겹쳐 보는 연출, 옥중과 바깥이라는 다른 장소에 있는 중림과 천수가 같은 마음을 노래하는 연출 등이 인상적이다.


또한, 이러한 무대 장치와 영상?조명이 한데 어우러졌다. 첫 넘버인 ‘화마(火魔)’는 과거 불이 났던 상황을 보여준다. 활활 타오르는 조명과 영상이 어색함 없이 어울리고, 무대 연기 등 특수효과 등을 통해 불이 나는 상황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시각적인 화려함과 배우의 연기가 실감 나게 맞물리며 비통하고 극적인 상황의 생생함을 전한다. 첫 넘버에서부터 이를 함께 보고 느낀 관객은 이후의 이야기에도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불을 나타내는 조명, 영상뿐만 아니라 무너지는 집 세트, 화살, 물, 종루 등 무대 내의 소품과 세트도 알차게 구성한 것이 느껴진다. 소극장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무대 연출을 보게 될 줄 몰랐다. 특히 스케일 큰 무대 세트는 극장을 꽉 채우며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불이라는 재난과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무게감 있는 소재에 기술과 융합된 연출이 중심을 잡으며 뮤지컬 전체의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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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의 서사


 

각 캐릭터의 서사도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중반으로 치달을수록, 중림은 딜레마에 빠진다. 멸화군 조직의 존폐 위기 상황. 불이 나야 멸화군의 존재가 증명되지만, 누구보다 불을 예방하고자 하고 근절하고자 하는 것이 조직의 목적이다. 설상가상으로 방화범의 덫에 걸려 천수까지 위험한 상황. 천수의 형 만수를 대화재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는 멸화군 대장 중림이 천수를 잃지 않으면서도 신념을 지키는 선택이 무엇이 있을지. 내적 갈등을 넘버를 통해 애절하게 풀어낸다.


연화의 서사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연화는 극 중에서 드러나지 않은 50명의 군인으로 훨씬 많을 것으로 느껴지는, 입체적이고 사연 있는 인물이다. 양반이었던 연화는 대화재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어 지금은 빈민촌에서 살고 있다. 만수를 잃은 슬픔이 있기에 동생 천수의 50명의 군인으로 활동도 매우 걱정스러워하지만, 불을 통해 아픔을 느꼈고 불의 무서움을 알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연화는 변변치 않은 살림에 멸화군의 후원까지 한다. 그리고 대화재를 통해 각자의 결심을 한 중림과 천수처럼, 연화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결심을 한다.


극 중 스토리 전개는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약간의 반전이 있지만 예상할 수 있게 떡밥을 많이 던져준다. 중심 캐릭터의 중림, 천수, 연화를 각각 조명함과 동시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연쇄방화에 대한 실마리를 함께 따라가며 트루기의 정점으로 각 캐릭터 감정의 극점과 이야기의 절정이 한데 모인다. 스토리 전개, 과거 서사, 독특한 소재를 두고 봤을 때 전개 방식은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의 진행은 드라마 투르기의 공식을 따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캐릭터 간 서사의 불균형이다. 극 중 전개 시점은 중림과 천수, 그중에서도 주로 천수를 따라간다. 천수는 대화재 사고에서 멸화군이었던 형을 잃었다. 그럼에도 형처럼 멸화군이 되어 백성을 살리고 싶어 하는 투지 강한 인물인데, 천수는 서사에 비해 과거 흔적이 없다. 과거의 그늘이 캐릭터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을 잃은 상처는 멸화군이 되고 싶다는 명분과, 중림과 친해지는 허울로만 쓰일 뿐, 형의 죽음으로 발화된 깨달음이나 진심이 부재해 보인다. 천수는 현재와 미래에만 충실한 캐릭터이다.


그러나 중림과 연화는 그 반대이다. 과거 대화재 사고가 지금 이들의 현재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결국엔 미래가 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중림은 만수를 잃은 상처가 있어 동생인 천수도 유달리 과보호하고 각별하게 아낀다. 연화는 가족, 집안, 만수를 모두 잃었기에 아예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특히 연화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미래도 포기하는 선택을 단행하는 캐릭터이다.


주연 캐릭터 간 서사가 불균형하게 느껴진다. 현재 연쇄방화사건에서 가장 활발히 실마리를 푸는 건 천수인데, 천수는 같은 과거를 공유함에도 과거에 대한 흔적이 없다. 특히 연화의 현재 행동을 보면 연화와 만수 사이에도 얕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전혀 알 수 없고, 그러니 현재 연화와 천수 사이도 그저 어림짐작할 뿐이고, 연화와 중림의 사이도 대충 가늠하며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이 캐릭터 간 관계성에서 약간의 허술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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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 번은 꼭 봐야 해


 

인터미션 있는 소극장 공연을 처음 봤다. 솔직히 멸화군 조직의 몸집을 더 키우고, 캐릭터 간 서사를 조금 더 다듬으면 중극장 공연도 가능할 것 같다. 이미 무대 장치 수준은 소극장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초연에 비교해 일부 캐릭터들의 서사와 설정도 조금 수정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이 극에 대한 제작사의 열의와 애정이 전반적으로 느껴진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 가능할 수 있는 극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극을 볼 때 스토리를 더 중요시하는 편이기에, 대극장 공연보다 소극장 공연을 더 자주 보곤 했다. 그런데 소극장에서도 이 정도 무대의 공연을 볼 수 있다니. 무대가 알차고 볼거리 있다고 느낀 뮤지컬을 오랜만에 보아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착한 기획과 창의적인 소재이니, 삼연이 또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한 번쯤 꼭 보길 추천하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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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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