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작품의 사소한 부분까지 -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도서]

글 입력 2023.07.0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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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했다. 가족 중에 미술과 관련된 전공이나 직업을 가진 분이 없어서 음악에 비해 나에게 접근성이 높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전시'에 대한 개념과 '화가'와 '화풍'에 관심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본 것도 그런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화폭에 옮겨놓은 호퍼의 그림이 좋았다. 


작품 제목도 모른 채 작가와 그림만 안 상태로 그의 작품 13점을 영상으로 재현한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고, 2023년 서울 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 작가의 전시를 감상하면 기획 방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 작가의 생애와 주요한 사건들을 알게 된다. 글처럼 그림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투영되어 당시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했을지를 짐짓 찾아보게 된다. 


지난 5월 그의 전시를 긴 시간을 드려 충실히 감상하며 그의 삶의 일부분을 알게 되었지만, 호퍼의 그림에 대한 해석을 더 듣고 싶다는 목마름이 있었다.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자료 270점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 오디오 도슨트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그림에 대한 해석보다는 그림을 그릴 당시 호퍼의 상황에 더 집중된 내용들이 많았다.  


한 달이 지난 후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을 만났다. 미술과 예술에 관해 지식도 많고 일가견이 있는 이연식 미술사가의 호퍼 작품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 시점에서 책에 대한 짧은 감상을 전하면 '나의 필요를 충족했다'라는 것이다. 이연식 미술사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중 대표작 55점을 그만의 방식으로 에드워드 호퍼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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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굉장히 주관적인 해석까지 숨김없이 작성되어 있다. 책을 읽다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통해 이연식 예술사가의 생각을 작성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하기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잘 맞았던 건지 구분이 안될 만큼 재밌고 일상적인 형식의 비평이 많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호퍼의 그림과 이미 친밀한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그의 책을 통해 호퍼의 그림을 처음 접한다면, 작가의 권위로 인해 다른 작품 해석이 개인 안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소와 사람들을 화폭에 담은 호퍼의 그림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데, 이연식 미술사가의 말이 너무 설득적이라면 추가적인 해석을 멈추게 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이 정리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평소에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어?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데?"라며 주체적인 해석을 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연식 미술사가의 책 작업 과정이 즐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지나갈 정도로, 그의 글은 작품들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전시를 본 후 친구와 감상을 나누는 것처럼 살아있는 재미가 담겨있다. 

 

이연식 미술사가는 에드워드 호퍼가 자신의 그림 속에 창작하여 넣은 작은 세계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호퍼가 작품을 완성하는 데 영향을 준 미술사적 환경이 무엇인지 지식이 부족해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연식 미술사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 들을 미술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많을 것이라고 '들어가며'를 읽으며 생각했다. 


 

‘호퍼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그 기술적인 미흡함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저렇게 붓질이 투박한 화가의 그림이 유명한 거지? 아니 어떻게 보면 못 그린 그림인데 마음을 사로잡는 거지?’

 

‘호퍼의 그림은 이야기를 암시하고 감정을 환기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그의 붓질에 대해, 기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한 번도 호퍼의 그림에서 기술적인 미흡함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 이연식 미술사가는 과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알고 싶었다.  그가 첫 장에 남긴 짧은 문장들은 앞으로 그의 인도에 따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15가지의 어휘로 나눠서 펼쳐보는 것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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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미술사가가 책을 이끌어 나가는 15가지의 어휘는 그가 생각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15가지 주제이다. 세상에 존재하는/존재했던 위대한 화가들은 두세 단어로 정의되고는 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일반적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이며 '도시'와 '고독'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책은 그보다 많은 단어로 호퍼를 설명한다. 그중에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도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을 읽을 당시에 가장 반갑고 의미를 담아 읽었던 부분은 '여행'이었다. 

 

책을 읽을 당시 비행기를 타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고, '여행' 섹션 초반에 소개되는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에 나를 대입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1931년작 <호텔 방 Hotel Room>과 1938년작 <제193호 차량, C 칸 Compartment C, Car 193>은 제작에 있어서 7년의 시간 차가 존재하지만 이연식 미술사가의 작품 해석을 통해 연결된다. 


두 인물 모두 어딘가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다. 호퍼는 그들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명확히 그려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개를 숙여 무릎 가까이에 위치한 종이를 읽고 있는 얼굴에는 천장 빛의 방향으로 인해, 챙이 큰 모자로 인해 그림자가 생겼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는 호텔과 차량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변화한 상황 속에서 여행의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이 처한 상황이 녹아 있는 그림을 분석하며 나의 여행은 어떠한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Great art is the outward __EXPRESSION__ of an inner life in the artist, and this inner life will result in his personal vision of the world.     - Edward Hopper -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의 내면적인 삶을 드러내 표현한 것이며, 예술가의 내면적인 삶이란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관점이다. 

 

 

그가 호퍼의 그림을 펼쳐보기 위해 사용한 어휘 중 '시선'이 마음에 남았다. 

 

책 전체에서 꾸준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연식 미술사가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그림 속 정보까지 잡아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시선'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호퍼의 1928년작 <밤의 창문 Night Windows>를 해석하는 내용이다. '몸에 타월을 둘렀기에 막 씻고 나왔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을 바라보는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건너편 건물에 살고 있을까?'


책을 훑어보며 ?(물음표)를 발견한다면 그건 이연식 미술사가가 어떤 작품의 드러나있지 않은 부분까지 파악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각을 이어나가는 과정이다. 그가 미술 자체에 관해 말할 때는 물음표를 던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밤의 창문>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는 그림 속 불이 켜진 세 개의 창문을 중세 말 유럽 화가들이 그렸던 '삼면화'로 연결시켜 내용을 전개한다. 물음표를 던지는 상상력과 명확하게 전달하는 미술 지식이 하나의 책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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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새로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으며, 원래 좋아하던 그림은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그림을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호퍼가 수직선을 좋아하지 않고, 교통수단 자체를 그리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고, 결혼한 뒤로 호퍼의 그림 속 여성은 모두 아내 조지핀이 모델이었다는 정보들을 통해 '에드워드 호퍼'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작가의 그림들을 15가지의 주제로 이야기한다는 것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연식 미술사가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에 기분이 좋았는데 그 이유는 호퍼의 그림을 해석하는 그의 글에 애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함께 했던 친한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듯 문장들에서 온기를 느꼈다. 


15가지의 어휘들이 어떤 순서로 정렬되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마지막 어휘가 왜 '극장'인지 알 것 같다. 마지막 장에는 호퍼가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 담겨있다. 무대에서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두 희극배우의 그림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호퍼 자신과 아내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아내와 함께 자신의 그림을 볼 관객들을 향해 인사했다. 


처음 보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책이 아닌 미술관 한곳에서 먼저 발견했다면, 그림 뒤편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면 그저 호퍼가 그린 많은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이연식 미술사가는 너무 깔끔한 마침표라 오히려 이상하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모든 작품의 끝이 이미 계획되어 있던 것처럼 그림도 화려하기보다는 깔끔하고 정돈되어 보인다. 호퍼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던 것일까?


1965년작 <두 희극배우 Two Comedians>는 책에서 소개한 마지막 호퍼의 작품이지만 이것을 통해 나는 더 그의 작품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그의 그림을 긴 글을 통해 우리에게 친근하게 전달한 이연식 미술사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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