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셀프 금융치료

말라가는 식빵에 잼을 발랐습니다
글 입력 2023.07.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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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받았다.

 

5월초부터 6월초까지 공휴일이 있어서 회사 다니는 게 힘들지 않았는데 8월 중순까지 공휴일이 없다는 걸 깨닫자 일주일이 길어지고 급격히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컨디션은 분명 금요일 오후인데 아직 목요일도 끝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몰려오는 지루함. 그나마 이번 주는 월급이 있어서 버틸만 했다.


요즘 부쩍 주변 사람들과 금융치료를 이야기한다. 금융치료라고 하면 사람마다 떠오르는 게 다를 수 있는데 최근 지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금융 치료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달래주는 소비였다. 일상이 힘들어서 보상을 받고 싶은데 누가 주는 게 아니라서 내가 나에게. 셀프 금융치료.


여행 다녀온 지 한 달 차, 슬슬 약발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 이때 나를 끌어올려주는 건 또 다른 여행 계획. 친구의 여행 계획을 듣고 무작정 합류를 외쳤는데 항공권만큼의 여유자금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성사된 7박 9일 이탈리아 여행까지 3달 가량 남았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스트레스가 치고 올라올 때마다 항공사 어플에 들어가 디데이를 확인한다. 일상의 때를 씻겨줄 설렘이 필요할 순간에 숙소를 예약했다. 성당이 보이는 바티칸 근처의 에어비앤비를 생각하면 마음이 풍족해진다.


물론 이런 빅 이벤트는 일 년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에 예고 없이 지치는 순간을 버틸 수 있는 치료도 사이사이 넣어줘야 한다.

 

나는 늘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돈을 쓰고자 하면 밑도 끝도 없을 수 있는데 그러기엔 겁이 많아서 작은 금융치료로 순간을 버틴다. 티끌 모아 태산을 카드값으로 실천하기. 태산만큼의 행복감이 없다는 데서 금융치료의 한계가 드러나는데 그걸 따지고 들기엔 이미 내 일상이 합리적이지 못하다. 사고자하는 게 그 물건이 아니라 순간의 행복이나 즐거움이란 걸 알면서도 굳이 따지고 들지 않는 것은 내가 그리 고차원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게 되면 애초에 이렇게 힘들지 않았겠지요.


건강한 마인드를 가지고 사는 일은 일상이라기 보다 목표에 가깝다. 그게 된다면 셀프 금융치료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안 되니까 돈으로 무언가를 사서 보상받으려고 한다. 내가 이만큼이나 힘들었으니까 이 정도는 누리고 싶어서.

 

이것조차 안 된다고 하면 일상이 너무 퍽퍽해진다. 말라 비틀어진 식빵 같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쉽게 넘어가지 않으니까 아이템을 산다. 말라가는 빵에 잼 살짝 발라서 삼켜 넘긴다. 순간 달콤하다.


이렇게 쓰면 굉장히 소비지향적인 사람 같은데 들어온 월급의 절반 가까이가 적금과 적금과 적금과 청약으로 빠져나갔다. 욜로나 과소비 그거 아무나 못한다. 과감해야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카드를 긁거나 잔고를 소진하지 겁쟁이들은 미리 셀프 차압을 시행하고 남은 금액 안에서 합리적 소비와 비합리적 소비를 병행한다.

 

그렇게 이번 주와 이번 달을 잘 버텨낸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것으로 노고를 치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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