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연극의 쓸모를 발굴하다 – ‘프로젝트 뉴 플래닛’ 최아련 대표

글 입력 2023.06.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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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자기 집 침대에 누워서 지구 반대편 이야기를 자막으로 감상하는 시대, 인공지능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는 2023년. 연극은 꽤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인다. 그래도 연극은 계속되고 있다. 연극을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오직 극장이라는 한정된 시공간을 사람과 사람이 공유할 때만 벌어지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본래 연극이 하던 일을 하나 둘 다른 것들이 대체해 갈 때, '그럼에도' 연극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지금 연극을 하는 젊은 창작자들이 새롭게 찾아 나가야 하는 숙제이다.


2021년 퍼포먼스 <평생을 같이하고 싶은 그대를 만났습니다>에서 연극과의 결혼을 선언한 최아련은 연극의 쓸모와 새로운 변신을 깊게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는 답을 찾기 위해 ‘프로젝트 뉴 플래닛’을 결성, ‘Let’s Go To My Star’이라는 3부작 공연을 만들고 있다. 외계인 ‘헬족’이 지구를 관찰하며 유토피아에 대해 묻는 이 작품은 포스트서사극을 표방하며 전통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대중가요, 춤, 인터넷 밈, 놀이, 영상 등을 활용한다. 다양한 실험이 눈에 띄는 작품은 이 시대에 연극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듯하다. 

 

얼마 전 ‘Let’s Go To My Star’ 시즌2 초연을 마친 최아련 대표를 만나 결혼 상대인 연극의 안부와 전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연극으로 질문하는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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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련 대표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Let’s go to my star’은 어떤 프로젝트인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토피아를 실험하는 3부작의 이야기예요. 인류가 현재 안고 있는 숙제를 들여다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지구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작품입니다. 외계인이 이방인의 시선으로 우리의 지구와 사회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싶었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외국에 유학 가 있던 시기에 대중문화를 활용한 실험적인 작업들을 재미있게 봤어요. 보통 한국에서의 연극은 잘 다듬어 세련되게 연출한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것도 좋지만, 왜 연극은 날것이 될 수 없을까, 형식적으로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하지 못할까 아쉬움이 있었고 스스로 질문을 안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여러 생각이 합쳐지며 대중문화를 활용하는 키치한 작품을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는지, 연습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작품을 만들 때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로 시작하는 편이에요. 이번 프로젝트도 제가 디바의 모습을 하고 마돈나의 ‘Open your heart’ 같은 음악에 맞춰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에서 시작되었어요. 그 이미지가 떠오르자마자 박두환 배우와 변준섭 배우에게 전화를 걸었죠. (웃음) 둘 다 춤추는 걸 좋아해니까 같이 춤추는 공연을 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셋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미지에서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고요. 우리가 외계인이 되어 인간을 위한 새 행성을 만드는 내용이었어요. 그 행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죠. 표현 방식은 키치하지만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그렇지 않기에 함께 공부하며 공부한 것들을 우리의 언어로 정제하는 작업을 길게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은 다 쓰되, 퍼포먼스의 세세한 부분은 함께 연습하며 추가하고 바꾸는 과정을 거쳤어요.

 

 

이정현 '와' 같은 음악을 비롯해 한국에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요. 이런 표현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자라면서 경험한 문화적 코드를 넣는 것이 이 작품의 고유한 특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로 제가 자라며 보고 듣고 좋아했던 다양한 대중문화 코드를 작품에 많이 녹여냈어요. 제 정체성 자체가 이 작품에 반영이 되는 거죠. 말씀하신 가수 이정현 씨의 경우 제가 어릴 때부터 이정현의 노래를 무척 좋아해서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웃음) 

 

 

전통적인 서사에서 벗어난 극이기에 관객 반응을 예상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받아들이기에 따라 난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지난 4월 신촌극장에서 시즌1 삼연을 했는데 관객 분위기가 진지한 회차는 저희가 좀 힘들더라고요. 관객 반응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공연이라는 걸 그때 새삼스레 느꼈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합의를 했어요. 처음 무대에 나갔을 때 관객분들이 좀 진중하다 싶으면 그날은 저희도 너무 흥분하지 말고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하는 데 집중하자고요. 관객과 '텐션'을 맞춰야 최대한 관객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반응이 좋은 날이면 당연히 저희도 더 신나서 재미있게 했습니다.

 

 

이번에 시즌2를 하며 관객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준비한 장치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사전 작업에 신경을 썼어요. 좀 더 재미있게 공연을 보실 수 있도록 극장 로비에서부터 저희가 춤추는 영상을 틀어놓고, ‘롸두섭 응원법’ 같은 걸 공지하기도 했어요. 공연 시작 전 안내 멘트도 극의 분위기에 맞췄고요. 저희는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드리려 한 거죠. 그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이번 시즌2 공연은 반응이 대체로 다 좋았습니다.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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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는 세 외계인이 나와 지구를 관찰하는데요, 실제로 외계인이 지구를 지켜본다면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연극에서 ‘인간이 만든 시스템을 왜 인간이 바꾸지 못하는가’라는 대사가 나와요. 이 대사와 연결해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듯해요. 우리 손으로 만든 것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우리 손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요. 지금의 상태에 의문을 품지 못해서 그냥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고 세뇌되어 사는 것 같기도 해요. 얘기를 하다 보니 지금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외계인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중 하나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에요.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이 시스템 자체가 힘 있는 자가 다른 사람을 계속 착취함으로써 유지되는 측면이 있죠. 환경도 그 착취의 대상 중 하나이고요. 그렇다면 현재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새로운 시스템은 뭘까. 또는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시즌2에서 하고 싶었어요. 

 

 

연극에서 두 개의 유토피아가 나와요. 하나는 인간들이 만들었고 겉보기에는 윤택하지만 사실 근간이 되는 시스템은 변함이 없는 가상현실 ‘베레시트’, 다른 하나는 외계인들이 만들었고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마련된 행성 ‘제네시스’. 대표님이라면 이중 어느 곳을 선택하실 건가요?


창작자로서 제네시스를 가야 하고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희가 당장 그만큼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할 수는 없잖아요. 세상을 바꾸기에 개인은 너무 작은 존재이기에 거기서 오는 ‘현타’는 당연히 있고, 그랬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해요. 모순적인 부분도 있죠. 저희도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당장 자본이 없다면 이런 공연을 만들지 못할 테니까요. 저희가 처한 그런 모순적인 상황을 시즌2에서 드러내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부분이 연극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베레시트를 만든 주식회사 ADS의 정체가 밝혀져요. 바로 저희의 본캐이자 시즌1에서 외계인들의 친구로 나왔던 아련, 두환, 준섭이었죠. 시즌1에서 현실의 부조리함을 느끼면서도 새 행성 제네시스로 가는 걸 망설이던 인간의 입장을 대변하던 이들이에요. 그랬던 세 사람이 시즌2에서 '베레시트'를 만들며 안티히어로적인 모습을 보여줘요. 베레시트는 언뜻 보기에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한 유토피아 같지만, 파헤쳐 볼수록 본질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레시트도 제네시스도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 대표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힘들 때가 많죠. 내가 열심히 산다고 상황이 크게 좋아지지 않을 것 같으니 무력해지고, 그래서 냉소적으로 사는 젊은이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게 제 삶의 자세예요. 


제가 정책 연구가는 아니지만, 연극 만드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어요. 최소한 제 주변의 이웃이나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분들이 일상에서 작은 노력과 실천을 하게끔 돕고, 그게 확장될 수 있도록 머리를 모아 고민해요. 함께 이야기하며 현실을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삽니다.

 

 

그럼 대표님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란 어떤 곳인가요?


현재 지구 사회는 경제적 합리성과 효율성의 논리로 이루어져 있어요. 최소 시간을 들여 최대의 결과물을 내는 것, 즉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곧 성공으로 여겨지죠. 그걸 잘할수록 잘 사는 사람으로 보이고요. 그런 획일화된 가치에서 벗어나 지금껏 무시당하고 외면받던 다른 가치가 좀 더 주목받을 수 있는 세상을 바라요. 


예를 들어 지금 우리 사회가 효율성을 너무 중요시하는 탓에 자연스레 경쟁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다면, 저희가 구상한 행성 제네시스의 사회는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모습이에요. 제네시스를 구상하며 우리가 서로에게 좀 더 다정해지고 친절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 공격성을 거세해 왔다는 ‘자기 가축화’라는 가설을 가져오기도 했어요. 이런 사회라면 제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에 가까울 것 같아요.

 

 

 

연극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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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포스트서사극에 관심을 갖고 관련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회의감에서 시작되었어요. 우리가 가장 먼저 정통적인 드라마극인데,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게 재미가 없었어요. 그러다 일반적인 서사에서 벗어난 '포스트드라마'라는 형식에 관심이 생겨서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보며 포스트드라마를 공부하다 보니 또 회의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포스트드라마가 기존의 드라마에 반(反)하는 형식이라 너무 해체적이고 무엇이든 관객이 생각하는 게 그냥 답이라고 해버리는 무책임한 지점이 있었거든요.


저는 연극에 철학적이거나 윤리적인 지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지점도 있고 그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중 연극의 사회적 기능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몇몇 포스트드라마 작품은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약화하는 경향성이 있어서 아쉬웠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학자들이 기존의 드라마와 포스트드라마의 장점을 합쳐 ‘포스트 포스트드라마’를 만들었어요.


저희가 하는 포스트서사극은 이 포스트 포스트드라마의 여러 갈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20세기에 브레히트가 창안한 서사극을 21세기에 맞게 발전시킨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해요. 오래되지 않은 장르라서 정말 다양한 방식의 실험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성격의 장르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거예요. 동시대 창작자들이 해내야 하는 숙제인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그래서 더 정이 가고 계속해보고 싶어요. 도전 의식도 생깁니다.

 

 

2021년 선보인 퍼포먼스 <평생을 같이하고 싶은 그대를 만났습니다>에서는 신부가 되어 연극과 결혼을 하기도 했어요. 이번 공연 초반부에는 브레히트가 시어머니로 등장해 ‘내 아들 연극과 유일한 일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건네죠. (웃음) 그 대사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유일한 일’이란 역시 앞서 말씀하신 새 장르를 개척하는 것과 관련된 것일까요?


앞서 한 이야기를 다 종합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일단 아직 정답이 나오지 않은 포스트서사극에 대한 실험을 네가 해보라는 의미가 있어요. 한편으로는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브레히트의 정신에 따라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연극으로 실천하는 것. 그게 제가 연극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혼 없이 쭉 연극과 함께할 생각이신가요. 


네. 성혼선언문도 읽고 사람들 앞에서 100년 가약을 맺었으니 지지고 볶으며 함께 해야겠죠. (웃음)

 

 

마지막으로, ‘Let’s Go To My Star’ 3부는 언제쯤 나올까요? 예고 부탁드립니다. 


시즌3은 빠르면 내년 이맘때, 늦으면 내년 연말에 보실 수 있을 듯해요. 시즌3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네시스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또는 지금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2023년과 2024년 사이에 또 우리 사회에 대두되는 문제를 꼬집을 수 있는 방향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직 밝힐 수 없지만,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형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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