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 마이그레이션 [도서]

끊임없이 이동하고 날아오르는 삶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6.2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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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migration). 이주 또는 이동. 제목부터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책이다. 살아있다는건 곧 끊임없이 어떤 순간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매 순간 어디론가 이동하고 또 이동하는 것은 어떤 철새 무리일 수도, 그들의 끄트머리를 쫓는 어떤 사람일 수도, 우리의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사실 읽기 전부터 꽤 기대했던 책이다. 가끔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처음 책을 받아들어 파랗고 시원한 표지를 마주하고 나선 내 기대가 어쩐지 맞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펼쳐본 책 속에는 내 뻔한 예상과는 다른, 그래서 결국엔 내 기대 이상인 아름답고 광활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


 

이 책의 주인공인 프래니 스톤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을 따라 사가니호라는 – 까마귀 배 - 이름의 배에 올라탄다. 이 책은 지금보다 조금은 먼 미래에 우리가 맞이할 수도 있는 낯설고도 낯익은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심해진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코끼리, 기린, 호랑이, 사자, 원숭이, 늑대, 북극곰과 같은 동물들 뿐만 아니라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새, 바닷속의 물고기들조차 멸종되어버린 세상. 봄이면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이 기어코 찾아온 세상이다. 

 

 

“맞아요. 북극제비갈매기는 이 세상 동물 중에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새에요. 북극에서 반대편 남극까지 갔다가 1년 안에 다시 돌아오죠. 그 작은 몸으로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니는 거예요. 30년 정도 산다고 봤을 때 평생 동안 이동하는 거리를 계산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세 번 왕복하는 거리와 같다고 볼 수 있죠.”

 

- '마이그레이션' 중

 

 

이러한 세상에서 프래니가 쫓는 북극제비갈매기들은 이 새상 동물 중에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다. 먹이인 청어를 따라 북극에서 반대편 남극까지를 거침없이 횡단하는 이 철새들에게 이동이란 곧 삶이며, 본능이며, 존재의 이유이다.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새하얀 북극제비갈매기들은 철장 속에 갇힌 채로는 감히 간직할 수 없는 경이로운 생명과 에너지를 품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래니는 그녀가 쫓는 북극제비갈매기와 같은 사람이다. 어딘가 정착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늘 쉽게 어딘가로 떠나고 흘러가는 방랑벽을 가진 사람이다. 직관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때론 바다와 하나 되어 거침없이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그녀는 때때로 ‘자연’ 그 자체로도 보인다. 마치 끊임없이 어디론가 비행하는 숙명을 타고난 북극제비갈매기처럼 그녀 안의 야생성, 어떠한 본능은 끊임없이 그녀를 어딘가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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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동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경고했던 위험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고요하고도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인간들은 그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계속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멸종되어가는 모두를 살릴 수 없기에, 인간은 생명체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보존할 개체를 ‘선택’한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더 가치 있는 존재를 감히 선택하고 선별하다니,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니. 

 

더 이상 먹이가 없는 바다에서 철새의 이동이란 무의미한 진화탈락적 행동에 불과하다. 인간들은 새장 속에 갇힌 새에게 더 이상 청어가 아닌 식물을 새로운 먹이로 삼을 것을, 쓸모없는 날개가 퇴화하는 쪽으로 새롭게 진화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인간’을 위해 그저 그렇게라도 생존하기만을 바란다. 인간은 언제부턴가 지구를 함께 공유하는 피조물이라는 본연의 본분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누군가 무엇을 해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프래니의 남편인 나일은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동물학자이자 저명한 대학 교수인 나일은 자유롭게 활강하는 새의 자유로움을 동경하고 사랑한다. 그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보존하고 지키고, 알리며 그의 방식으로 자연을 사랑한다. 프레니의 직관적인 사랑과는 결이 다른 나일의 과학적인 방식의 사랑, 그려나 결국 그들이 자연을 사랑함은 같은 곳에서 맞닿는다. 나일은 끊임없이 비행하며 날아오르는 프레니를 사랑하고 그녀가 언제든 돌아올 곳이 되어주길 약속한다. 

 


 

북극제비갈매기이자 누군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


 

읽을수록 느꼈던 건 이 책은 마지막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자, 결국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북극제비갈매기를 따라 기나긴 여정길에 오른 프래니 스톤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결국엔 다시 우리 모두의 삶이자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개될수록 점점 교차되며 드러나는 의미심장하고 미스테리하기까지 한 과거들의 끝엔 결국 프래니의 여정의 이유가 밝혀진다. 


 

엄마는 내게 단서를 찾으라고 말하곤 했다. 

“뭐에 대한 단서요?” 내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물었다.

“삶에 대한 단서. 곳곳에 숨겨져 있단다.”

 

- '마이그레이션' 중

 


날아다니는 나방, 트렁크 뒤의 운동복, 부치지 않을 편지들,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 까마귀라는 이름의 사가니호까지. 은연중에 반복되고 호명되던 그 모든 것들이 복선이자 프래니의 삶에 대한 단서가 되어 마지막에 모든 것을 꿰뚫을 때의 놀라움이 대단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처음엔 이름마저 낯설었던 사가니호의 선장과 선원들 모두가 오래 알고 지낸, 같이 거친 폭풍우와 파도를 이겨낸 친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가니호의 선장 에니스는 선조 때부터 평생 청어잡이를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의 배 한 척에는 수많은 사람의 생계와 목숨이 달려 있다.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나일은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부유하고 안락한 집에서 태어나 자란 현대인이기도 하다. 평생을 자유롭게 어디로든 떠나길 반복하며 살아온 프래니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삶들이 교차한다. 과연 어떤 삶이 옳고 옳지 않은 것일까? 책 ‘마이그레이션’은 그 답의 몫을 독자들에게 남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모두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어떤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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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얗게 펼쳐진 깨끗하고도 광활한 북극의 풍경은 알 수 없는 어떤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동시에 치열하고도 냉혹한 삶 또한 느껴진다. 집채만 한 무한한 파도가 치는 바다 위, 한 척의 배에 매달린 인간들에게 필요한건 과학이나 이성이 아닌 그것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해한 믿음이다.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삶과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한낱 피조물인 우리에게 필요한건 그저 절대적인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 그 속의 우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이동하고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삶에 대해, 그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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