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세상은 신비롭고, 불안한 우리는 소중해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히토 슈타리얼의 <이것이 미래다>
글 입력 2023.06.1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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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다짐한 후 가능하면 많은 책을 집에 두려고 하지 않는다. 책장 가득 메운 책들이 얼마나 짐이 되던지 이사 때마다 번번히 후회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책을 다 읽고나서 정말 좋은 책은 지인에게 선물하고 그냥저냥 읽은 책들은 중고서점에 팔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낸 책들 중에 문득문득 자꾸만 생각나는 책들이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그런 책이었다. 결국 몇 달 후 다시 책을 샀다.



마치 재즈 같은 책


당시 유명 책 유튜버의 추천 덕분에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책이었다. 책을 읽게된 계기는 지인의 추천도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추측되지 않은 책 제목 때문이었다. 에세이인가? 생물에 대한 책인가? 의문으로 읽기 시작해서 책의 중반에 가서도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분류학의 유명 인물의 생애를 탐구하면서 중간중간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주제와 형식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후루룩 국수처럼 읽히는 문장들이었고 끝에 가서야 아, 이거였구나. 이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거 였구나, 깨닫고 한동안 멍해졌다. 마치 재즈같은 책이었다. 형식와 주제를 넘나들며 문장의 파도에 몸을 맡기면 자연스럽게 저자가 만든 섬에 도착해있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저자가 탐구하는 인물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으로 스탠퍼드 총장을 지낸 교육자이자 저명한 어류학자이다. 그는 평생을 바쳐 모았던 어류 표본들이 지진으로 손상되었을 때 끝까지 표본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저자는 도대체 어떤 원동력이 조던을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했는지 알아내고자 그의 회고록 등 관련 문서들을 탐구한다.


저자가 알아낸 조던의 원동력은 "질서"였다. 그는 모든 생물은 분류학적으로 우생한 종과 열등한 종이 있고 그것의 질서를 부여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인간 또한 열등한 개체들은 중절수술을 합법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질서라는 단어로 포장한 우생학 이론의 추악성을 알게된다. 생명은 사다리처럼 위에서 아래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우주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또한 조던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어류"라는 종도 분류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이 밝혀졌다. 산에서 사는 인간, 호랑이, 잠자리를 "산동물"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직관적으로도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물고기도 마찬가지이다. 물에 산다고, 우리가 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겼다고, 분류학적으로 유의미한 근거없이 "어류"라는 명명 아래 싸그리 몰아 넣을 수는 없다. 그가 평생을 바친 질서와 분류는 생명에 대한 폭력적인 시각을 가진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것일 수 있다. ...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보일지도 모른다. 금새 사라질 점 위의 점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 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227p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순간, 인정 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것이다.

 

264p

 

 

 

좋은것도 혼돈의 일부이다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을 끊임없이 없애려고 노력한다.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흔히 미래가 명확히 보이는 그림이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주류의 삶을 살아야하고 그것은 흔히 유명 대학교의 졸업장, 탄탄한 커리어패스, 건강한 몸, 물질적인 풍요로움 등을 암시한다. 열등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삶에 "질서"를 만들려고 하지만 결국 "질서"를 만드려는 노력은 트랙 밖에 있는 다양한 삶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주류가 아닌 삶을 살고 있는 타인 혹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재즈 즉흥연주의 아슬아슬한 상황 속의 절묘한 화음을 사랑하는 나는 결국 이 책이 이야기하는 삶의 불확실성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조던이 평생을 굳게 믿었던 어류라는 분류는 존재할 수 없는 것 처럼,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도 서열을 매길 수도 없다. 삶은 그 자체로 혼돈이며 우리는 각자의 모양과 리듬으로 불확실한 삶을 살아간다. 삶의 불확실함은 고난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기쁨이 되기도 한다. 애초에 "질서"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삶을 통제하려는 노력 대신에 불확실함을 받아드리고 그 것이 주는 좋은 것들을 더 즐겨야하는게 아닐까.



불완전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국립현대미술관의 히토 슈타이얼의 전시를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못한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작품은 "This is the Future (이것이 미래다)"라는 비디오 작품이다. 온갖 힙하고 현란한 음악과 영상이 쏟아져나오는 와중에 철학적인 메세지가 던져진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미래를 예측하고자 온갖 애를 써왔다. 고대의 점성술, 종교의식, 주술 같은 것들로 시작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나 열망이 현대사회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연된다. 우리의 모든 과거 데이터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쓰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는 첫날에 쓰였고 시작했다는 의미심장한 문구로 이 영상은 끝난다. 결국 미래가 현재라는 것, 아무리 예측하려고 애를 써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세상의 질서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현재를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우주에 중심은 없다. 각자가 중심이며 우주는 수많은 중심이 모여 이루어져있다. 불확실성을 사랑하면, 다시 한번 불완전하지만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완벽한 나의 삶을 용기있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세상은예측불가능해" 그리고 "우리는소중해"

 

 

[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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