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각자의 궤도 [사람]

취향이 취향일 수 있는,
글 입력 2023.06.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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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면 사람들 모두 갖고 있는 얼굴이 다르다. 얼굴뿐이랴, 목소리도 키도 몸무게도 전체적인 분위기까지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같은 걸 보고 산다. 획일화되었다고나 할까. 천편일률적으로 공급되는 이미지를 수용하고, 때로는 사회 속 담론이나 화제에 대한 본인의 해석까지도 매체를 통해 접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냐, 요즘 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아서이다.

 

한 분야를 깊이 파기 전에 짧고 얕게 그 분야의 학문을 엿보다 보면-흔히들 '찍먹'이라고도 한다- 의도치 않게 지식의 출처가 섞여버릴 때가 많다. 일례로, 어떤 한 학자의 학문을 접할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학자의 이력과 연구 실적을 바탕으로 확실히 그의 성격을 알고 난 후 그의 학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바닷속에서 그의 의견을 건져내듯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얻게 된 지식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언젠가 들었던 그 개념이 누구 입에서 나온 거였더라, 하고 고민하게 된다. 고민하다가 또 까먹고, 한참 있다가 또 갑자기 생각나서 궁금해지고.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그 분야가 나와 안 맞는 거구나, 하고 공부를 포기하게 될 때도 많은 것 같다.

 

흘러 없어질 것들 사이에서 건져 낸 누군가의 의견, 그리고 그 의견들을 쌓고 쌓아 만들어 낸 나의 시야. 때로는 이런 식의 종잇장과도 같은 관점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기도 한다. 그저 세상사를 '찍먹'했을 뿐인 문외한이 되는 느낌이랄까. 가끔 나의 얕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취향과 기호가 들통났을 때 느껴지는 창피함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다.

 

근데, 이게 나만 느끼는 수치심일까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문외한'이 된 듯한 느낌은 살다 보면 무수히 겪는 류의 감각이지 않나. 하다못해 당장 편의점에만 들어가도 아르바이트생과 그가 서 있는 편의점이라는 장소 속에서 문외한인 '손님'의 입장이 된다. 하물며 배울 게 한가득인 사회 속의 구성원이라면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로부터의 '완벽한 타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크게 보다 보면,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만날 때 부담을 느끼는 원인이 이 '타자'가 된 듯한 감각(이하 '타자감')에 있지 않을까 싶다. 공급되는 이미지를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고, 나의 해석과 타인의 해석 간의 간극을 줄이려고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의 기저에도 '타자감'으로부터 비롯되는 압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취향과 선호, 애호의 기준에도 '타자감'에 의한 압박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머릿속을 스치고 나니 다시 혼란스럽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어떠한 긍정적임에도 타인의 시선이 반영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 보면,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당연한 흐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속 한편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나만의 애호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즐겁기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과 허무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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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취향이 그저 취향으로 남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엔 타인을 타인으로 여기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 나와 타자의 '관계'를 설정하고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의 선택과 의견, 기호와 취향이 그와 어울리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그냥, 자아와 자아가 공존한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 어떨까.

 

내가 가진 관점과 지식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굳이 공유할 필요가 없으며, 공유하게 되더라도 그저 관조만 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교류만 하는 거리가 적당하지 않을까. 그들과 나의 궤도는 엄연히 다르지만, 가는 방향은 비슷하니.

 

멀리서 보면 같은 세상 속에서 같은 방향을 걸어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jpg

 

 

[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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