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청춘의 발자취를 따라 - 디자인아트페어 2023 청춘별곡 展 [전시]

저마다의 청춘을 엿보다
글 입력 2023.06.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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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내리던 아침. 갈수록 조금씩 굵어지는 빗줄기를 뚫고 예술의전당에 도착했다.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 진행되었던 디자인아트페어 2023 청춘별곡 展을 보러 간 나의 목적지는 안쪽에 위치한 '한가람미술관 전관'이었다.


나는 관심도에 비해 직접 페어나 전시를 보러 온 경험이 많지는 않은지라 예술의 전당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장소가 주는 이미지대로 엄숙한 분위기의 관람용 전시를 상상하고 갔던 것 같다. 행사의 제목을 읽고 조금만 생각을 하고 갔더라면, '페어'라는 단어에서 전시와 마켓이 결합된 형태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뜻밖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쉬웠다는 건 아니다. 조용히 작품을 둘러보는 내게 조심스레 다가와 직접 설명을 해주는 작가분들도 여럿 만나, 오히려 더욱 즐겁게 각양각색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리뷰는 그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던 작가와 작품 몇 가지를 떠올리며 적어보려고 한다.

 

 

 

더 풀 : 거대한 캔버스 위 나선은 곧 수행이며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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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내가 앞선 문화초대로 <뒤피 : 행복의 멜로디> 展에 다녀오고 고작 나흘이 지난 뒤였다. 그곳에서 물감이 만드는 입체감이 아주 흥미롭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마침 <디자인아트페어 2023 : 청춘별곡> 展에서 또 다른 방법으로 물감을 활용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바로 더 풀(The Fool)의 작품이다.

 

캔버스를 빼곡하게 채우는 크고 작은 나선들은 작가가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대신, 용기에 물감을 담아 짜는 방식으로 그려낸 것이다. 실제로 작품 앞에 서서 바라보면 물감이 만드는 올록볼록한 길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자연에서 직선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곡선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임을 의미한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나선화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커다란 작품의 크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 커다란 그림 속에는 어느 한 곳 빈 지점 없이 나선이 그려져 있다. 사진으로만 보면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은 듯한 검은 부분도 모두 검은 색상의 나선이 여백 없이 들어서 있다. 반복되는 나선은 수행이자 명상이라는 글을 참고하면, 청춘을 살아가며 거듭 고민하고 생각하고 수행하는 작가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마상열 : 나무로 만든 작고 아름다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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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행복을 꿈꾸는 일이지

차곡차곡 생각을 다듬어 집을 짓는 일이지

 

- 마상열, 나무가 만난 그늘 이야기 中

 

 

한편 아주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작품은 마상열 작가의 나무조각품이었다. 이 작품들은 앞서 언급한 더 풀의 작품과는 달리, 정말 손가락만큼 작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가느다란 꽃도, 아주 작은 가족들의 모습도 전부. 어떻게 이렇게 섬세한 조각을 했을까 감탄하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냥 내가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통 나무가 좋다고 이야기를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푸른빛이 가득한 숲이지만, 베이지와 갈색이 섞인 나무의 결은 보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편안함을 주더라.

 

골똘히 생각에 빠지게 되는 제목의 작품들 - 가령, 첨부된 사진 속 <자화상>처럼 - 사이로 군데군데 적혀있는, 작가가 직접 쓴 듯한 시 역시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재미를 더해주었다.

 

 

 

프로젝트 20 - 주가을 : 날 것의 나, 날 것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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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일상을 이곳저곳에 기록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가볍게는 순간순간 쉽게 올릴 수 있는 인스타그램부터, 내 친구들만 볼 수 있는 블로그에 아무도 묻지 않은 내 일상을 주절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하지만 어딘가에 적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는 나만의 일기장이 있다. 아무도 볼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을 마구 적어내다 보면 어딘가 후련해진다. 다만 그 내용이 어딘가 한심하고 미워서 나조차도 다시 들여다보기 망설여질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일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주가을 작가의 작품에 공감이 갔다. 손글씨가 또박또박 적힌 일기장들을 보면, 어떤 책들은 자랑스럽게 펼쳐져 있고 어떤 책들은 아주 끈끈한 무언가가 붙어있다. 작가가 어떤 형상을 의도하고 만들었는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는 그것이 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 밖으로 뱉어내야만 했던 것이지만 남에게 보여주기는 민망스러운 그런 것. 말 그대로 아주 날 것의 무언가.

 

드러내고 싶은 것과 드러내지 말아야 될 것의 경계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것이 요즘 청춘의 삶이라면, 나도 작가의 삶과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무리하며



글에는 언급하지 못했지만 회화부터 조각, 도자기, 패브릭, 심지어 NFT 형태의 예술 작품까지 정말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실 정말 많은 작가들이 참여한 페어라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 주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작가 모두가 청춘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는 사람일 테니 그들이 무엇을 말하든 그것이 청춘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장난 같을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마다의 청춘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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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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