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책이라는 지평을 넘어서 - 새고서림 최수민 대표

글 입력 2023.05.3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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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청역과 영등포역 사이, 청과시장이 있는 조용한 골목 안에 책방이 하나 있다. ‘새고서림’이라 불리는 이곳은 1인 출판사 ‘새벽고양이’에서 운영하는 독립책방이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입구와는 달리 널찍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이 반긴다. 수많은 독립출판물이 각각의 이야기를 품고 여기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새벽고양이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출판물도 있다. 

 

새벽고양이의 출판물은 ‘출판물’이라고는 하지만 전통적인 단행본과는 거리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 단편문학을 번역해 소책자 형태로 출판한 ‘프로젝트 메이지’, 활자를 읽는 대신 손으로 만지고 영상을 보고 소리도 들으며 감상하는 ‘프로젝트 종이비행기’가 대표작이다. 새벽고양이와 새고서림 최수민 대표의 관심사와 취향이 보이는 부분이다. 독립출판계에서 책방과 출판사 대표이자 작가로 종횡무진 활동하며 '책을 넘어선 책'을 상상하는 그를 만나 보았다.  

 

 

 

새벽고양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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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고양이와 새고서림의 시작은 회사원이던 최수민 대표가 우연히 독립책방에 방문하던 2017년 어느 주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형태와 내용의 독립출판물에 푹 빠져든 그는 자신만의 독립출판물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 무렵 책 한 권만 내고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덜컥 만들어버린 출판사가 새벽고양이였다. 이름에는 새벽의 감성을 고양이처럼 자유롭게 책에 담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프로젝트 메이지’와 ‘프로젝트 종이비행기’는 새벽고양이를 대표하는 프로젝트로, 책이라는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까지 14종이 출간된 프로젝트 메이지는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팬데믹 때 만들어진 프로젝트 종이비행기 시리즈 역시 강릉, 히로시마, 공주, 고쿠라 편이 출간되며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중이다. 

 

 

출판사를 만들고 독립출판물을 낸 게 아니라 독립출판물을 내기 위해 출판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그때만 해도 독립출판이 지금만큼 활발하지는 않았던 시기라 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었어요. 혼자서 무작정 책방과 인쇄소를 찾아다니다가 책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ISBN을 발급받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출판사 등록을 하면 쉽게 ISBN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새벽고양이는 그렇게 시작됐어요.


그때부터 1년에 한 번씩은 책을 냈어요. 나이는 어른이지만 사랑하는 방식은 어린아이 같아서 전하지 못했던 혼잣말들을 담은 『어른의 혼잣말』부터,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을 위한 시집 『아침은 오지 않아』, 오래 함께한 반려견의 눈으로 본 세상을 담은 『내 이름은 눈탱이』까지요.

 

 

새벽고양이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프로젝트 메이지’도 그 무렵 기획하신 걸까요? 이 시리즈는 어떻게 만드신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본문학을 전공했어요. 어렵게 간 대학이고 가서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졸업 후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나름대로 제 전공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억울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죠. 

 

독립출판을 시작하며 나만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전공을 써먹어야겠다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세상이 나를 써먹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를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웃음) 정말 잘 쓰고 재미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근대 일본 작가의 작품을 찾아 번역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프로젝트 메이지가 시작되었어요. 

 

 

프로젝트 메이지는 분량이 짧은 것도 특징이에요. 대부분 12페이지 정도고, ‘엽서 아니고 책입니다’라고 소개되어 있죠.


단편이 주는 매력을 좋아해요. 짧은 분량 안에서도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책 읽을 시간이 없는 분들, 두꺼운 책이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고 싶기도 했어요. 프로젝트 메이지 시리즈는 집중하면 읽는 데 5분도 안 걸리거든요. 작품과 관련된 사진을 한 장씩 넣은 것도 이미지를 통해 작품의 세계로 좀 더 쉽고 빠르게 빠져들 수 있는 장치입니다. 물론 추후에는 장편도 번역해볼 생각이 있어요.

 

 

‘프로젝트 종이비행기’도 독특한 시도였어요. 낯선 장소를 영상으로 보며 그 장소에 대해 쓴 에세이를 오디오로 듣는다는 게 신선했습니다.


코로나19가 심각했을 때 여행을 못 가는 상황에 아쉬워하다가 만들게 되었어요. 프로젝트 종이비행기 팀이 항공사인 콘셉트로 독자가 자기 방에 가만히 앉아서도 낯선 공간을 여행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죠. 비행기 티켓 디자인의 봉투를 열면 열두 장의 카드가 들어 있어요. 거기에 있는 QR코드를 인식하면 카드 속 장소가 영상으로 재생되며 에세이 낭독이 시작됩니다. 

 

이런 형태의 책을 뭐라고 부를까 고민하다가 ‘오디오영상북’이라는 단어를 제가 그냥 만들었어요. (웃음)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고쿠라, 히로시마, 공주 편만 살 수 있었고 강릉 편은 일본에서만 판매했는데요,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특별히 강릉 편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책과 사람, 이야기가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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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등록할 때 마음이 그러했듯이, 책방도 거창한 결심에서 비롯된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재택근무로 집에서만 일하는 데 지쳐가던 중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작업실이 있다면 낮에는 회사 일을, 저녁에는 출판사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출판사 일과 회사 일을 병행하다 보니 자꾸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져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책방을 ‘저질러’ 버리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새고서림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소모임과 행사는 참가자들이 독자와 작가가 서로를 만나는 통로가 되어준다. 독립출판이 처음인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계기이기도 하다. 일반 서점에서는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여기서 누군가와 운명적으로 마주친다.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아도 순간순간 뿌듯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려 책방을 여셨다니, 보통은 반대 아닌가요? (웃음) 회사를 그만두려고 책방을 내잖아요.


저는 오히려 책방 월세를 내려면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역으로 회사를 그만둬버리고 책방만 하면 책방도 금방 그만둘 것 같은 거예요. 그렇게 적절한 장소를 찾다가 오래된 건물에 월세가 저렴한 5평짜리 공간을 찾았죠. 지금은 거기서 한 차례 이사를 한 거예요. 책방에서 낮에는 재택근무, 저녁과 주말에는 모임을 했어요. 1년간 회사 일, 책방 일, 출판사 일까지 쓰리잡을 한 셈이에요. 결국 나중에 회사는 그만뒀죠.

 

 

책방을 열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단골손님이 생기는 게 참 좋아요. 책방을 알리기 위해 소모임을 열고 있는데, 최근 들어 그렇게 이곳을 알게 된 분 중에 독립출판에 매력을 느끼고 단골이 되시는 분이 늘어나고 있어서 뿌듯해요. 책방 역할을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또, 제 책을 냈을 때 다른 책방 사장님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저도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해 작가님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실제로 제가 만든 행사에서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걸 보면 기뻐요.

 

 

새고서림에서는 독립출판물만 취급하고 있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제 취향이에요. 독립출판의 매력을 느껴 이 일을 시작해서인지 이미 너무 잘 만들어진 일반 도서에는 손이 안 가요. 오히려 미완성의 매력이 있는 책에 손이 갑니다. 제가 오랫동안 독립출판을 하며 알게 된 작가님이 많아서이기도 해요. 새고서림의 책 입고 기준을 많이 물어보시는데 저와 인연이 있는 작가님의 작품이나 제가 읽고 싶은 독립출판물 위주로 꾸려나가고 있어요.

 

 

책방과 출판사를 통해 만난 사람 중 기억에 남는 인연이 있을까요?


지금 기르는 고양이를 예전에 있던 책방 건물에서 만났어요. 출판사 이름이 새벽고양이인데 정말로 고양이를 만나다니 운명적인 느낌이 들어서 같이 살기 시작했어요. 한 번은 책방으로 전화가 와서 고등학생과 인터뷰를 한 적도 있어요. 나중에 그분이 독립출판을 하며 제게 멘토가 되어 달라고 하셔서 6개월 동안 함께하며 실제로 책을 내고 다른 서점에 입고시키는 것까지 봤죠. 


 


즐겁고 유연하게 맞이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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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종이비행기' 중 하나인 '낯선 도시의 온도'(왼쪽)와 

'프로젝트 메이지' 중 다섯 편을 오디오북으로 만든 '시간을 꺼내 듣는 책'(오른쪽)

 

 

최수민 대표가 독립출판계에 발을 들인 지도 어느덧 7년 차가 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상상이 새벽고양이를 거치며 현실이 되었다. 영상과 음성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오디오영상북을 만들고, 책에 동봉한 코스터에 책을 읽으며 듣기 좋은 ASMR 영상을 QR코드로 넣는 등 새벽고양이의 책은 더 넓은 범위의 책과 여러 가지 방식의 독서를 제안한다.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는 최수민 대표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책방 운영자로서도, 작가로서도, 기획자로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 모습은 출판사와 책방의 이름에 들어가는 고양이와 닮았다. 유연하게 몸을 늘이며 하나의 형태에 머물지 않는 고양이처럼, 책방과 출판사는 또 새로운 미래를 그린다. 

 

 

2017년이면 독립출판 초창기에 이 세계에 뛰어든 셈이네요. 그때부터 독립출판을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요즘 독립출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맞아요. 거의 화석이죠. (웃음) 독립출판에도 트렌드가 있어서 우울증 관련 책이 한창 나올 때도 있었고, 여행 책이 나올 때도 있었어요. 요즘은 전반적으로 책이 정말 잘 만들어지는 느낌이에요. 물론 이게 좋은 것일 수도 있는데, 저는 너무 완성도가 높아서 오히려 좀 아쉬울 때가 있어요. (웃음) 저는 초창기에 좀 부족하고 B급 감성이면서도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책에서 매력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요즘에 그런 독립출판물을 만나면 되게 반가워요.

 

 

늘 새로운 책을 찾는 책방지기다운 답변이에요. (웃음)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건데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제가 INFP 열정적인 중재자 타입이라서 그런가. (웃음) 여러 사람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듣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일을 좋아해요. '프로젝트 종이비행기'가 대표적이에요. 당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해서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줌(Zoom)으로 회의를 했는데, 그때 나온 여러 아이디어를 모아 정리한 결과물이 프로젝트 종이비행기예요. 


책방을 하다 보니 무언가를 볼 때 저게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일본에 타카마츠라는 소도시를 여행하던 중 박물관에 갔다가 두루마리 형태의 옛 편지글을 발견했어요. 저런 식으로 책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아이디어를 문서화 해두는 편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다가 '이거다' 하는 순간이 되면 또 새로운 걸 만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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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메이지' 시리즈 중 하나인 '쓸쓸한 물고기'

 

 

새롭게 만드실 출판물도 기대가 됩니다. 한편으로 대표님은 작가로도 활동하시는데요, 예전에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록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신 적이 있어요. 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책을 써본 작가라고 하면 당연히 말을 잘할 거라는 편견을 가진 분이 많아요. 저도 그런 얘기를 종종 듣는데, 사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제 의견을 입 밖으로 말하는 걸 잘하지 못해서거든요. 첫 책 역시 상대방에게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을 담은 것이고요. 그래서 기록을 좋아해요. 기록이 책이 되면 사람들이 그걸 읽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제 삶도 그냥 흘러가버리는 게 아니라 좀 더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그리는 새벽고양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사실은 3월까지 슬럼프였어요. 매번 열정을 100퍼센트 쏟아부을 수는 없더라고요. 고민이 많던 중 오카야마 문학페스티벌에 초대가 되어서 다녀왔어요. 일본 출판사들 사이에서 한국어로 되어 있는 책을 늘어놓으며 별 기대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프로젝트 메이지’와 ‘프로젝트 종이비행기’ 시리즈를 보며 새로운 형태의 책에 관심을 가져주셨죠. 덕분에 뿌듯하고 자극이 되었습니다. 또 일본의 출판 관계자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한국과 일본의 출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출판을 연결한다는 게 꼭 책을 출간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에요. 일본에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의 책방 투어를 하고 싶은 일본 분들이 계시대요.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책방 투어를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하반기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게 새롭게 주어지는 숙제이면서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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