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발레를 통해 한국의 전통 스토리 심청을 표현하다 - 공연 '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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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여태까지 발레라는 장르의 인상은 다가가고 싶지만 늘 어려운 대상이었다. 발레에 대한 일종의 동경심 혹은 경외심은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들만의 세상'이고 나는 그 장르에 발을 담가보기에 너무나도 문외한이라는 생각에 선뜻 발레 공연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의 시작은 아주 어린 시절 다녔던 발레 학원에서부터였는데 그 시절의 나는 오른쪽과 왼쪽 방향 구분을 또래에 비해 잘 못했었다. 항상 선생님이 “오른 쪽으로 턴~”하면 나만 혼자 이리저리 헤매다 반대로 돌기 일쑤였고, 그걸로 많이 혼도 났었던 기억이 있다. 한동안은 그래서 나에게 발레는 두렵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발레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도 많이 옅어져 갔고, 무엇보다 나에게 발레에 대한 인식을 180도 바꾸어준 작품 <호두깎이 인형>과 만나게 되었다.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화려한 배경 구현과 의상을 갖춘 무용수들이 음악에 동화되어 몸짓만으로 표현하는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고, 집에 돌아가서는 그 동화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나에게 조금은 애증처럼, 그러나 아직은 먼 존재로 남아있는 발레 공연이었는데, 최근 들어 의도치 않게 나에게 ‘발레’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일 들이 많았다. 지인들이 취미 겸 운동으로 발레를 시작하며 추천을 해주기도 했고, 무용 공연에서 근무하는 일이 생기기도, 최근 유행하는 발레 의상에 캐주얼을 더한 발레 코어 스타일의 패션에 관심이 가기도 했다.
서론이 참 길었다. 여기까지가 나를 이번 공연 <심청>으로 인도한 이러저러한 경위들이었다. 이러한 다소 뜬금 없고 복합적인 원인들로 최근 막연히 발레 공연을 한 번쯤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이번 공연을 만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너무나 만족하며 관람 하였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심청>의 매력 포인트를 몇 가지로 나누어 나의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매력 포인트 1. 오케스트라
이번 <심청> 공연의 공백을 채우고 더욱 풍성한 무대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한 일등공신은 단연 오케스트라의 존재였다.
사실 당연한 것이지만서도 이번 공연에서 새삼 경이롭게 다가왔던 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무대를 등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무용수들의 몸짓과 오케스트라 연주는 너무나도 합이 잘 맞았고, 타이밍이 틀리는 법도 없었다.
특히나 이를 통해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무용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 지휘자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수많은 단원들의 연주를 조율하는 것 뿐 아니라 OP석에서 무대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만큼 그의 빠른 판단력과 리더십이 있었기에 관객에게 이만큼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은 오프닝과 클로징, 장면 전환을 위한 암전 시간, 현실적으로 무대 위 구현되기 힘든 장면에서 영상으로 대체되었을 때 빛을 발했는데, 그들의 존재가 없었다면 다소 지루하고 늘어지는 구간이 될 수 있었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끊기지 않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공연의 텐션과 관객의 몰입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이번 공연에서는 공연 특성상 서구와 전통 악기가 모두 사용되었다고 느꼈는데, 처음에는 퓨전 음악이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들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발레를 선보이던 구간과 한국적으로 각색된 장면들 사이의 흐름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자연스럽게 변화하였기 때문에 이 간극이 뜬금 없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매력 포인트 2. 전통발레와 한국적 미의 조화
앞서 이야기했듯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전통적 서구 발레에 <심청>이라는 매우 한국적인 스토리를 가미하였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의 여러 요소에서 한국적 미와 전통 발레의 조화가 돋보였고, 어쩌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두 요소가 어떻게 극 안에서 녹아 드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의상이었다. 각 장면마다 서구적 요소와 한국적 요소가 의상에서 차지 하는 비중이 달랐는데, 심청이의 어린 시절 장면과 그녀가 용궁에서 다시 뭍으로 돌아와 왕비가 되어 아버지를 찾기 위한 잔치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한국의 전통 의복이 사용되었고, 그에 맞춰 무용 동작들도 정식 발레 동작 보다는 펄럭이는 옷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조금 더 부드러운 창작 안무를 선보였다.
반면에 용궁 장면에서는 익히 알려져 있는 화려한 정식 발레 안무를 선보였는데 자라 용왕,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 등 용궁 속 다양한 캐릭터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색체를 지니면서도 몸의 곡선을 잘 드러내는 의상을 접할 수 있었다. 용궁 속 등장인물 들이 마치 경연을 펼치듯 심청과 용왕 앞에서 다양한 안무를 선보이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매력 포인트 3. 오로지 몸짓으로 표현되는 감정과 스토리
사실 이번 공연을 보기 전 가장 걱정했던 것은 <심청>의 스토리를 너무 어렸을 적 접했던지라 생생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기존에 내가 주로 접하던 연극, 뮤지컬과 달리 무용 공연은 대사 없이 무언(無言)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과연 내가 극의 스토리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기우에 무색하게도 이번 공연에서 오로지 몸짓 만으로 표현되는 심청의 스토리는 굉장히 직관적이고도 집중도 있게 다가왔다. 거기에는 무용수들의 세밀한 표현력이 큰 몫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례로 눈이 보이지 않는 심봉사는 심청의 효로 눈을 뜨기 전까지 굉장히 조심스러운 몸짓이었지만 그럼에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 홀로 심청을 키우는 강인한 양면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심청 역의 무용수가 보여준 연기와 몸짓도 눈을 사로잡으면서도 쉽게 와닿았는데, 아버지의 사정을 용왕과 왕에서 설명하는 장면, 인당수에 바쳐질 재물이 되기를 결정하는 장면들에서 특히 심청이의 절절한 심정이 마음에 바로 와닿을 만큼 그녀의 몸짓은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관객의 심금을 울렸던 것 같다.
[박다온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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