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온몸으로 작품과 마주하기 [미술/전시]

미디어아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 전시
글 입력 2023.05.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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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목받는 미술관이나 전시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SNS를 살펴보는 것이다. SNS에 얼마나 많은 사진이 업로드돼 태그되는지가 해당 전시의 성공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다.

 

이러한 SNS를 통한 전시 정보의 확산은 더욱 많은 사람이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전시 경험 자체가 평면적인 인증 사진으로 전락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지만, 요즘 전시회는 작가와 관객을 연결해주는 장소가 아닌, SNS 피드를 위한 사진을 구하는 장소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특히 직관적이고 누가 보기에도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화면을 내보이는 미디어아트를 다룬 전시에서 그러한 경향이 종종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미디어아트 전시를 그리 선호하진 않는다. 과연 전시를 통해, 작품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느낄 여지가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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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방문한 아라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미구엘 슈발리에(Miguel Chevalier)의 개인전 《디지털 뷰티》는 미디어아트에 대한 나의 심리적 장벽을 흔드는 데 충분했다.

 

《디지털 뷰티》는 디지털 예술의 1세대 작가로 여겨지는 미구엘 슈발리에의 서울 첫 개인전이다. 젊은 시기부터 컴퓨터와 디지털 예술에 관심을 보이며 탐구를 지속해 온 그의 작품세계가 아라아트센터 5층 건물에 걸쳐 펼쳐졌다.

 

특히 단순한 관람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으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컴퓨터 과학자 클로드 미켈리(Claude Micheli)가 담당한 사운드는 관람객이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미디어 작품들은 대체로 원과 직선, 기하학적 형태나 흩뿌려놓은 물감과 같은 색면의 형태로서 존재하며, 스스로 혹은 관객에 의해 끊임없이 유동한다.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 추상화된 작품을 보고 우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그저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화면을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구엘 슈발리에는 단순히 컴퓨터로 디자인적인 패턴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우리 주변의 자연,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 자체를 디지털 세계 속으로 옮겨 재구축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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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프랙탈 줄기〉(2023)나 와 같은 작품 제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프랙탈 줄기〉는 번개와 같이 전류의 흐름에서 나뭇가지 모양을 보이는 리히텐 베르크의 도형에서, 〈세상의 기원〉(2023)은 생물학과 미생물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본질적인 요소들을 디지털 세계에서 구현한 작품들을 마주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감각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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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망 드로잉〉(2023) 및 〈어트랙터 댄스〉(2023)는 로봇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작품의 구성은 지속적으로 재조합되는 데이터 뱅크에서 추출되므로 무한한 변형이 가능하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어트랙터 댄스〉에서 로봇 팔이 볼펜이나 잉크 튜브 등이 아닌 깃펜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깃펜은 인류의 문자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며 그것으로부터 역사와 법이 기록되고 수많은 문학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인류의 문명을 나타내는 그러한 깃펜을 로봇이 쥔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오롯이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영역인 예술에서, 기계가 수단으로써 사용되거나 생산 주체로서 활동하는 현시대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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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디지털 예술에 바쳐 온 만큼 미구엘 슈발리에의 깊은 철학이 작품들을 통해 드러나면서도, 한편으로 작품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관람객 각자의 체험이 주된 요소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전시였다.

 

예를 들어 〈스트레인지 어트랙터〉(2023)를 마주하였을 때, 다른 작품에 비해 나의 형체가 뚜렷하게 표상되면서도 그것이 3차원적인 그물망의 선으로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두려움과 무서움이 들기도 하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거울을 통해 마주하였던 나라는 형태가 사라지고 본질적인 요소로 환원되어 구축된 것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다른 예술 매체에서는 느낄 수 없던 새로운 경험은 내가 갖고 있던 미디어아트에 대한 편견을 흔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번 전시를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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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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