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을 이끄는 그 무언가에 대하여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소통과 나아감
글 입력 2023.05.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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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뭔가가 일어났어.” 연극 ‘바냐 아저씨’의 야외 연습 날, 유나와 재니스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가후쿠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추상적이라서 어떻게 보면 연극의 연출가가 내뱉기에는 다소 무책임한 표현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뭔가가 일어났다’는 가후쿠의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고 말하고 싶다. 살다 보면 정말 그런 순간이 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기류가 분명히 느껴지는 순간.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순간.

 

유나와 재니스에게 오늘 보여준 것을 그대로 무대 위에서 보여달라고 말하는 가후쿠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무언가가 일어나는 순간은 배우들에게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배우들이 이 꿈과 같은 순간을 맞이하고 나면 무대에 오르게 되듯이 우리의 삶도 무언가가 일어나는 순간으로 인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게 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가후쿠가 연출가로서 배우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언가를 포착하는 동안, 우리는 그의 삶에서 결국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무언가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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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는 멈춰 있던 인물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을 영화 속에 자주 그려낸다. <해피 아워>, <아사코> 그리고 <드라이브 마이 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과거에 묶여 있거나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있다. 그러나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 이들의 삶은 다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인물들에게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는다. 다만 인물이 변화되기까지 ‘길고 사소한’ 삶의 이야기가 계속될 뿐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어쩌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들의 삶을 나아가게 하는 그 무언가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거울을 지워내는 진실한 소통


 

 짐작만 했던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는 이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평소처럼 행동한다. 아내와의 만족스러운 일상생활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사실 오토와 가후쿠의 관계는 딸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후 이미 속은 텅 비고 껍데기만 남은 표면적인 관계로 전락한 상태였다. 

 

이미 곪을 대로 곪아버린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운전을 하면서 아내가 녹음해 준 카세트테이프로 희곡 대사를 연습하는 가후쿠의 독특한 습관이다. 가후쿠와 오토의 호흡은 누구 하나 서두르거나 뒤처지지도, 서로의 대사를 해치지도 않고 마치 계산한 듯 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두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육성과 테이프의 대화라는 점은 그들 사이에는 언어만 존재할 뿐, 진실한 감정이 오가는 교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려준다.

 

가후쿠가 낯선 남자와 관계를 맺는 오토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 또한 가후쿠와 오토 사이에 진실한 소통이 단절되었음을 의미한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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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히로시마예술극장의 상주 예술가 가후쿠와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 사이에서도 등장한다. 두 사람이 아직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을 때, 차의 뒷좌석에 앉은 가후쿠와 운전석에 앉은 미사키는 백미러를 통해서만 서로의 표정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미사키와 자신의 상처를 공유한 가후쿠가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들 사이에 백미러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다. 이렇듯 진실한 소통이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거울을 지워내는 과정이다. 가후쿠는 오토와의 관계에서 거울을 지워내지 못했고, 그로 인해 오토를 영영 잃어야만 했던 것이다.

 

관계 속에서 거울을 지워내는 방법에 대한 해답은 여기에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나가는 것 아닐까요? 진실로 타인이 보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다카츠키. 그는 오토의 남편인 가후쿠 앞에서 오토를 향한 자신의 관심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가후쿠에게 야마가와 여고생 이야기의 결말을 들려줌으로써 오토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고백한다.

 

선을 넘은 듯한 다카츠키의 당돌함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해 보이지만, 그는 단지 여전히 오토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에 답을 해야 했을 뿐이다. 이렇듯 소통이란 행위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통을 계속 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이것만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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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토는 끊임없이 가후쿠의 문을 두드렸다. 오토가 무의식중에 지어낸 도둑 여고생 이야기를 가후쿠에게 들려주는 것은 외도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이야기 속 여고생이 빈집엔 들어가도 되지만 자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겨 야마가가 이를 알게 되면 이 짓을 그만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처럼, 오토의 방황도 가후쿠가 알게 되는 그날로 마무리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요동치는 감정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가후쿠는 할 말이 있다는 오토의 말에 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쪽 눈이 보조 역할을 해 존재를 인지하기 어려운 녹내장처럼 그에게 자신의 마음이란 그렇게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마주해야만 했던 진실을 지나쳐 버린 가후쿠는 오토를 잃었고, 그동안 자신을 움직였던 체호프의 대사도 더는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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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연극 리허설 도중 다카츠키는 자신이 폭행한 남성이 사망했다는 형사의 말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듣기를 자청한다. 

 

2년 전, 얘기를 좀 하자던 오토의 말에 도로 위를 배회하며 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던 가후쿠와 달리, 다카츠키는 자신이 들어야만 하는 말을 회피하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에 상처를 묻어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가후쿠와 달리 마주하기 두려운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다카츠키는 ‘바냐’라는 자리에서 내려오며 가후쿠에게 묻는다. 이번에도 진실을 외면할 거냐고.

 

그와 동시에 말 대신 수어로 세상과 대화하는 유나는 가후쿠의 마음속에서 온몸으로 체호프를 느끼며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고, 5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집을 바라보는 미사키는 긴 방황의 시간을 통해 발견한 죽은 엄마에 대한 진실을 나직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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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눈물과 감정들은 가후쿠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의 내면에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일으킨 결과다. 카메라는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향한 거울을 완전히 지워낸 가후쿠와 미사키가 서로를 안고 위로하는 모습 다음으로 빨간색 사브를 비춘다.

 

영화 내내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빨간색 사브는 이 장면에서만큼은 제자리에 멈춰 있는데, 그때 이들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흘러가는 시간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동안 우리 모두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하마구치 류스케는 멈춰 있는 두 사람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앞으로 나아갈 이들의 미래를 암시한다.

 

 

 

삶과 교감하는 영화의 힘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세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평온을 얻게 되겠지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열렬히 가슴 뜨겁게 믿어요. 그때가 오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가후쿠가 연출을 맡은 희곡 ‘바냐 아저씨’가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장면은 “희망의 가능성”을 들려주고자 하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다다른 도착점인 동시에 영화의 존재 이유다.

 

히로시마에 머물기 시작하며 자신의 삶에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그 무언가를 체험하게 된 가후쿠는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2년 전에 포기했던 바냐 연기를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연극을 끝맺는 소냐의 대사는 오토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려 했던 그날 밤, 가후쿠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들었던 테이프의 대사다. 제대로 상처받지 못해 위로받을 수 없었던 2년 전의 가후쿠는 대사를 그냥 흘려보냈지만, 대사는 위로받을 준비가 된 2년 후의 가후쿠를 잊지 않고 찾아와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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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선 가후쿠와 유나 사이에는 또다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난다. 유나는 자신의 수어를 통해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던 죽은 말을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감정으로 변화시키고, 가후쿠는 무대 위에서 온전히 바냐가 되어 마침내 소냐의 마지막 대사를 진실로 이해한다.

 

유나의 수어가 가후쿠의 삶에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게 되는 것은, 진정한 소통은 언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닌 그 속에 담긴 감정을 나누며 교감하는 거라는 유나의 개인적인 깨달음이 무대 위에서 수많은 관객 앞에서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변화를 일으키는 그 무언가’는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진실한 교감’이었음이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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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극에 대한 반응으로 마지막 장면에 ‘바냐 아저씨’의 관객이었던 미사키를 등장시킨다. 그는 일본의 히로시마가 아닌 한국의 부산에서 빨간색 사브를 운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극이 건네는 삶의 위로는 이로써 무대 위에 선 가후쿠뿐만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미사키에게도 전달되어 엄마의 죽음 이후 히로시마에 멈춰 있던 그를 앞으로 이끈다.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냐와 소냐가 함께 다짐했던 것은 이제 가후쿠와 미사키의 다짐이 된 것이다.

 

삶의 위로는 분명 미사키의 주변에 있던 다른 관객들에게도, 휴게실에 걸려 있는 TV 화면으로 연극을 지켜보던 재니스에게도 무언가를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멈추지 않고 영화를 관람하는 우리에게도 어떠한 형태로든 전달되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삶에 크고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 등장하는 연극무대를 통해 하마구치 류스케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영화가 가진 힘에 대한 그의 믿음일 것이다. 연극무대가 그러하듯이, 영화라는 무대 또한 그것을 체험하는 누군가와 진실하게 교감하며 그의 삶을 어떻게든 움직일 거라는 견고한 믿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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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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