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서 고생하는 가장 멋진 방법

글 입력 2023.04.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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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날 버스 기사님은 이상하게 화가 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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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중 가장 덥다는 8월의 첫 번째 금요일. 버스 안,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기 전부터 틀어 둔 에어컨은 쌩쌩 돌아가는데도 이상한 열기가 감돌았다. 바깥의 열기와 사람들의 숨에 붙은 흥분감이 뒤섞였다.

 

페스티벌 장소가 눈에 들어오자 버스가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 긴 대로변을 달려도 달려도 줄을 선 사람들은 줄어들질 않았다. 한 여름, 그것도 대낮에 온갖 들 것을 들고 더위에 지쳐가는 사람들을 보고 기사님은 분통을 터트렸다.

 

대체 왜 가만히 있어도 쪄 죽는 날씨에 짐을 한가득 들고, 땡볕에 뛰어다니려고 큰돈을 내고 가는 거냐며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옆 좌석의 사람들과 우리는 힘을 합쳐 그럴듯한 대답을 하고 싶었으나… 사실은 답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그러기엔 이 더위에 어떻게든 살아남아 놀고야 말겠다며 쿨 수건, 쿨 토시부터 즉시 활력을 준다는 비타민까지, 온갖 생존 템이 잔뜩 담긴 가방이 측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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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에 가면 인파 한가운데로 들어가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땅이 질기게도 발을 붙잡아오던 날, 뛰어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문득 땅을 보았다. 희고 좋은 신발들이 진흙 밭 위를 방방 뛰며 더러워지고 있는데, 그 아무도 신경 쓰고 있지를 않았다.

 

이름 모를 님들아! 신발 다 버려요, 여기서 하루 놀고 피부과 3주 다녀야 될 수도 있어요. 나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이 여름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건 12시라고 따가운 햇빛이 시간을 쏟아낼 때,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달렸다. 입장 줄을 기다리다가 공연 순서를 놓칠까 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무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님들아! 왜 이러는 거예요. 더위 먹으면 어쩔라구요!

 

밤이 깊어지고 굵은 비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쏟아지는데, 사람들은 우산을 펼치지 않고 손에 꼭 쥔 채로 노래를 불렀다. 무대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자 비를 맞아 질퍽질퍽해진 땅에 하나 둘 드러눕기에 이른다.

 

진짜 왜 이러세요 다들!

 

물론 내 신발도 누구보다 더러워졌으며, 땡볕에 신나게 무대로 달려갔고, 빗속에서 춤을 췄다. 그러니 사실 그 기사님의 질문은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왜 우리는 사서 고생을 하러 락 페스티벌에 갈까?

 

 

 

# 2. 락의 붐은 온다…


 

2022년은 놀라운 해다. 코로나로 시간이 멈춘 듯, 모두 조용히 넘어가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던 행사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공연과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단체로 가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나씩 순서대로 들려오는 공연 소식을 듣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아- 다 가고 싶었으나 정신적, 육체적 체력과 주머니 사정, 회사 일정도 생각해 선택해야 했다. 그렇다면 가장 ‘락’을 들을 수 있는 곳을 가야 했다. 팀원과 밥을 먹고 나와 길바닥에서 티켓팅을 진행하며 인천 펜타포트 페스티벌 3일권 얼리버드를 예매 못하면 못 산다며 난동을 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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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포트가 열리는 송도 달빛축제 공원은 그야말로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3일 동안 13만 명이 찾았다 한다. 펜타포트는 국내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이긴 하지만, 이례적인 숫자였다. 코로나는 원래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축제를 간절히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진 풍경이었다. 한쪽엔 멋들어진 패션으로 SNS에 사진을 공유하며 축제를 즐기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한쪽엔 무한도전 초창기 ‘무모한 도전’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하는 냉장고 바지에 팔 토시와 크록스를 신고 제대로 놀아볼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노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 3.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선우정아와 잔나비, 자우림을 보며 큰 팬덤을 지닌 사람들이 지닌 매력을 생각했다. 설상 내 취향엔 맞지 않을지라도, 부정할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와 색깔이 있었다. 선우정아가 지닌, 거대한 인파를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좋아한다.

 

그의 무대를 보면 오늘 이 공연에서 무엇을 느끼고 얼마나 집중할지를 결정하는 건 관객이 아닌 선우정아의 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공간에 들어선 순간 그의 노래를 듣는 건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어떻게 고개를 돌릴까, 더위에 지쳐 돗자리에 앉아있던 우리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무대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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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는 이전까지 노래를 많이 들어보지 않았고, 내 취향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 밴드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무대는 분명 재미있었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지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순수한 마음을 건드는 동화 같은 연출과 노랫말이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만난 자우림은? 사실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다. 날서고 불안정한 느낌, 다소 기묘하고 우울한 음악, 밝지만 속은 텅 빈 것 같은 음계와 순수한 감정에 가닿는 가사를 좋아한다. 자우림은 자우림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사랑에 대한 곡이 별로 없다 생각했으나, 사실은 꽤 많았다는 김윤아의 말로 시작된 파애, 미안해 널 미워해, 영원한 사랑 메들리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고등학교 때 파애를 참 좋아했는데 익숙한 도입부에 노랫말을 함께 조용히 따라 부르던 앞의 관객을 보았을 때, 나는 이럴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서로 본 적도, 앞으로 볼 날도 없을 사람들과 같은 멜로디와 가사에 반응할 때, 나는 그런 순간을 좋아해 공연에 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우리는 각자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 페스티벌에 나왔다는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우효가 ‘민들레’를 불렀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 위로 물을 흩뿌려졌다. “사랑해요 그대, 있는 모습 그대로. 너의 모든 눈물, 닦아주고 싶어” 가사에 맞춰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곡이 끝난 뒤 앞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간 친구가 동시에 눈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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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의 이런 면을 좋아한다. 음악 앞에서 각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 지와 상관없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더없이 친하지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사람들, 나아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고, ‘우리’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알면 삶이 조금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홀로 공연을 보았던 마지막 날에는 처음 보는 얼굴들을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 낯선 얼굴 속에서 나는 익숙한 표정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다른 무대로 뛰어가는 기대에 찬 얼굴. 내가 기쁘고 슬플 때 들었던 음악을 들려줄까 간절히 기다리던 얼굴. 수많은 얼굴들 속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음악만을 들으러 페스티벌에 오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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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들과 함께 듣는 사람들을 보러 이곳으로 자꾸 되돌아오게 되는 거였다.

 

회사와 학교에서, 사회의 어느 모서리에서 웃고 떠들고, 상처받고, 화를 내고, 다시 기뻐하는 사람들.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이 눈에 보였다. 각기 다른 우리가 사실은 무언가를 분명히 공유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나는 언제나 그 순간을 기다리며 산다.

 

올해엔 또 어떤 페스티벌에서 어떤 순간을 마주하게 될까? 어떤 노래에 목이 쉬도록 환호하고, 어떤 목소리에 눈물을 흘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감동과 위안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사실.

 

그럼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공연으로 달려나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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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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