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요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나의 뿌리를 찾아서
글 입력 2023.04.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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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해외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 또래 같아 보이는 학생들이 친구들과 나를 향해 원숭이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순간 당황하여 얼어붙은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아이들을 그냥 지나 보냈다.

 

갈 곳을 잃어버린 분노는 내 안에 남아 오히려 나를 괴롭혔다. 밤늦게 숙소에 도착한 나는 새벽 두 시라 분명 자고 있을 걸 알면서도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그때 나의 머릿속은 온통 집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하루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혼자서라도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내 여행은 통째로 얼룩져 버렸다.

 

이 사건으로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다소 무력한 결론일지는 몰라도, 사람은 자기를 받아주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나라는 존재가 지극히 평범하게 여겨지는 곳,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에서 벗어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있는 곳, ‘그들(them)’이 아닌 ‘우리(us)’가 될 수 있는 곳. 모든 인간에게는 그런 곳이 필요하고, 그게 바로 진정한 ‘집’이 아닐까 싶다.

 

 

 

이방인의 불안과 방황


 

앤소니 심 감독의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이민자의 정체성과 집에 대한 영화다. 남편이 죽으면서 아들 동현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게 된 엄마 소영은 1990년에 동현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난다. 이들은 갖은 차별과 어려움에도 서로에게 기대어 이방인에게 차가운 현실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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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차별을 견뎌야 했던 동현은 친구들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입고, 똑같이 생기기를 원한다.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자, 엄마가 싸준 밥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음부터는 샌드위치를 싸달라고 하던 동현은 시간이 지나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눈에는 파란색 콘택트렌즈를 끼는 10대 청소년으로 성장한다.


그런 동현과 달리 소영은 오랫동안 이민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한국인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자부심을 유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소영은 자기 뿌리를 알고 있었다. 이민 오기 전에 한국에서 나고 자랐던 소영에게 진정한 집은 캐나다가 아닌 한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캐나다에서 살았고, 또 엄마로부터 아빠의 이야기를 좀처럼 전해 들을 수 없었던 동현은 한국인의 정체성도, 캐나다인의 정체성도 온전히 가질 수 없었을 테다. 동현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방황은 이렇게 도통 정립할 수 없는 정체성이라는 문제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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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보이'라는 정체성


 

동현은 엄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 비로소 자기 뿌리를 발견한다. 동현의 뿌리에는 ‘쌀’이 있었다. 동현의 할아버지는 이 쌀로 한 가정을 책임졌고, 그의 쌀을 먹고 자라난 아들은 동현의 아빠가 되었다. 결국 어린 동현이 쓰레기통에 버렸던 쌀이 사실 그동안 동현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직접 농사지은 쌀로 밥을 먹으면서 그동안 거부해 왔던 별명 ‘라이스보이’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광활한 금빛 논의 모습은 영화가 보여주는 그 어떤 이미지보다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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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원에 가서 노란 머리를 시원하게 밀어버린 동현은 목욕탕에 갔다가 콘택트렌즈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껍데기 같았던 동현의 가짜 정체성은 이렇게 한순간에 벗겨져 내린다. 여기에 아빠의 유품인 군복까지 걸쳐 입으면서 그는 온전한 라이스보이로 거듭난다.

 

 

 

Home Sweet Home


 

“집에 가자.”라는 소영의 마지막 대사에서 ‘집’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사실 소영과 동현이 한국에 남게 되든,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든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역사가 시작된 곳을 알게 되었으니, 동현은 다시 캐나다에 가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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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새와 같던 동현에게는 이제 돌아갈 곳이 생겼다.
 
죽음을 앞둔 소영이 때가 되자 자기가 항상 가슴속에 품고 살았던 고향을, 가족을 동현에게 물려준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반겨주고, 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진정한 의미의 ‘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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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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