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 클로즈 [영화]

때묻은 세상 앞에 무너진 두 소년의 순수한 마음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4.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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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한 트랜스젠더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던 루카스 돈트 감독이 두 번째 장편영화인 <클로즈>로 돌아왔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깊은 우정을 나누는 두 소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영화 <클로즈>는 제7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시작으로 유수의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관계의 균열


 

형제만큼 가까운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던 레오와 레미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친구들에게 사귀는 사이로 오해를 받게 된다. 친구들의 놀림에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레미와 달리, 레오는 친구들의 말을 반박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레미와의 관계를 우정이 아닌 사랑이라고 의심하는 친구들의 시선이 불편했던 레오는 은근히 레미를 피하기 시작한다. 레미가 평소처럼 레오의 몸을 베고 눕자 덥다며 몸을 피하는가 하면 레미의 집에도 놀러 가지 않고, 심지어 레미와 항상 만나던 약속 장소에도 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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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레미와 전례 없는 관계의 균열을 겪던 레오는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다녀와서 레미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레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생활을 지속하지만, 레미의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여러 가지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높은 파도와 같은 감정적 변화를 경험한다.

 

하지만 레오에게 레미의 죽음은 점차 선명해지고,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방학을 맞이한 레오는 레미의 엄마를 찾아가 자신이 레미의 마음을 밀어냈음을 고백한다. 레미의 죽음이 자기 탓인 것만 같은 레오는 외딴 숲속에서 레미의 엄마를 피해 도망치지만, 레미의 엄마는 겁에 질린 레오를 찾아 꼭 안아준다.

 

 

 

영리한 연출


 

영화는 레미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명확히 나누어지는 단순한 구조를 보여준다.

 

전반부가 레오와 레미가 우정과 사랑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감정으로 인해 서로 갈등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후반부는 레미의 사망 이후 레오가 레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클로즈>는 상당히 소박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것을 100여 분 동안 지루함 없이 끌고 나가는 힘이 탁월하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뛰고 달리는 이미지는 레오와 레미가 마주한 청소년 시기의 정열과 혼란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영화는 죽음이라는 강렬한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이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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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가 친구를 따라 배우게 되는 아이스하키는 영화 전반에서 레오가 말로 표현하지 않는 감정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로 사용된다.

 

레오가 일부러 벽에 자신의 몸을 세게 부딪힌다거나,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넘어지다가 팔을 다치는 등의 모습은 그의 복잡한 마음을 가늠하게 한다.

 

영화는 특히 레오의 부상을 아주 영리하게 활용한다. 다친 팔에 붕대를 감는 상황은 레미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레오에게 마음껏 눈물 흘릴 동기를 제공하고, 시간이 흘러 팔의 깁스를 푸는 것은 레오의 고백과 맞물리면서 레미의 죽음을 극복해나갈 레오의 미래를 암시한다.

 

 

 

우정일까, 사랑일까


 

레오와 레미가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은 과연 우정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의외로 영화는 이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리지 않고, 오히려 우정과 사랑 둘 중 하나로 두 소년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보게 한다.

 

레미를 죽게 한 것은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레미와의 관계를 회피했던 레오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벼랑으로 몰아간 주범은 어쩌면 정말 가족 같은 사이였을지도 모르는 두 소년을 가만두지 않고 멋대로 규정하려 했던 사람들의 혐오를 품은 시선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항상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재단한다. 우정인가, 사랑인가. 친구인가, 연인인가. 이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만들어둔 이름표를 어딘가에 갖다 붙이느라 급급하다. 하지만 이것들을 가르는 기준은 한없이 모호하기만 할 뿐이다.

 

우정이면 어떻고, 사랑이면 또 어떤가. 그걸 부르는 이름은 달라져도, 서로를 향한 두 소년의 마음은 변함이 없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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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의 죽음 한가운데에 자신이 서 있었음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레미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레오가 그에 대한 죄책감을 완전히 지워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꽃밭을 걸어가면서 한참 뒤를 돌아보다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영화는 레오가 이제는 과거에 묶여 있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잃었지만, 이 커다란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틀림없이 성장했을 레오. 앞으로는 의미 없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소중한 관계를 지켜낼 수 있기를. 그리고 레오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더라도 이 세상이 더는 그들을 괴롭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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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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