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음악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한지라
글 입력 2023.04.1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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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전자음악과 영화음악의 거장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이 노래는 한 번씩 들어봤을 것이다.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긴급한 상황에서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의 브금이 틀어질 때면 항상 이 노래가 나오곤 했다. 이 노래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자서전을 기반으로 일대기를 그려낸 영화 '마지막 황제(영제 'The Last Emperor')'의 OST인 'Rain'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자 '아마카스 마사히코' 역할을 맡아 연기를 펼쳤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지막 황제'가 다양한 부문에서 시상받을 때 음악상으로도 상을 받았다.

 

내가 처음으로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이름을 머리에 각인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이다. 기숙사 학교를 다녔던 나는 아침마다 기상곡이 어떤 것으로 나올지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아마도, 눈 예고가 있던 겨울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야만 그 노래가 나온 이유가 납득이 될 것 같다. 아침이다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으로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아침 기상곡은 아이돌 노래가 많았었다.

 

그러나 그 날은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 피아노 곡이 흘러나왔다. 아주 여리고도 맑은 피아노 선율이 천장으로부터 들려나왔고, 곧 나온 진중한 음표들은 곡의 전개에 따라서 서정적인 울림을 주었다. 단단하게 힘이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부드러웠던 그 곡은 천천히, 하나 둘 씩 눈송이가 나리다가 점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듯한 겨울을 닮았었다. 그 곡에 완전히 매료된 나는 곧바로 침대에 올라서서 핸드폰을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 가져다댔고 팔이 저려오기 시작하던 즈음에 음악이 검색되었다.

 

그 음악의 제목은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전장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의 OST이자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고, 대학교를 다니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겨울이면 사무라치게 이 곡이 생각나곤 했다. 그래서 항상 겨울이 되면, 눈이 오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듣곤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는 또 이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이 사람의 젊을 적 음악들이 궁금해졌다. 이름부터 난해한 'Yellow Magic Orchestra', 이하 'YMO'의 소속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어냈을지 궁금해서 YMO의 음악들을 들어봤다. 내가 가지고 있던 '피아노로 정서를 가득히 품어내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이미지가 완전히 갱신된 건 바로 그 때였다.

 

 

 

 

'동쪽 바람'이라는 뜻의 'Tong Poo'는 동양적이면서도 미래적이라서, 어딘가 신비로웠다. 신디사이저로 전자오락기에서나, 혹은 인터넷 게임, 그것도 아주 초창기의 게임에서 들릴 것 같은 리듬과 음을 이용해서 완전히 홀려버리는 음악을 만들어낸 게 신기했다. 묘하게 빠져드는 음악에 왠지 할 일에 집중이 아주 잘 되는 느낌이 들어서, YMO의 다른 음악들을 들어보았다. 'Firecracker', 'TAISO', 'Kimi Ni Mune Kyun'(이 음악은 어쩐지 '상큼한 아저씨'라는 이미지가 생겨버려 다른 의미로 놀라버렸지만), 'Rydeen' 등 사카모토 류이치와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가 만들어 낸 음악들은 금새 나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쌓여갔다.

 

그러다보니 문득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해졌다. 전자음악과 영화음악 등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해나간 사카모토 류이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는 놀랍게도 자신의 유명세를 사회적 메시지에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은둔하며 음악만 할 것 같았는데, 위안부 문제나 반핵 운동에 목소리를 냈던 그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다.

 

 

사카모토류이치.jpg

 

 

더욱 안타까웠다.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천재 음악가를 하늘은 왜 이리도 빠르게 데려간 것일까. 그런 나의 아쉬움에도 그가 자신의 음악을 끝까지 작업하다가 세상을 떴다는 점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라서, 나는 지금도 그의 음악을 계속 듣고 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면 또 하얀 눈이 내릴 것이다. 나는 그러면 또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생각날 것이다. 그를 처음 알게 해 준 음악이자 내게 위로가 되어주는 음악. 나는 그를 존경한다. 나는 그를 잊지 못하고 내 마음 속에서, 내 정신 속에서 그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생전에 좋아하던 말이라고 한다. 그의 예술은 길고 길게, 나에게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남아 살아 숨쉴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명함_컬쳐리스트.jpg

 

 

[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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