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두운 계단을 오르고 있을 당신에게 – 뮤지컬 ‘실비아, 살다’

삶이란 아홉 번째 왕국으로 떠나는 기차 여행
글 입력 2023.03.21 10: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3실비아살다_보도자료_1차_(첨부2)캐스팅공개 사진_수정.jpg

 

 

‘실비아, 살다’, 제목 뒤에 왜 굳이 ‘살다’가 붙었을까? 공연을 보기 전 내내 머리 속을 맴돌던 의문에 대한 답은 실비아의 인생을 눈앞에서 목도하며 찾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삶’이란 그다지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관통하고 있는 ‘삶’이란 것이 그녀에게 어떤 것이었기에 실비아라는 이름 뒤에 힘겹게 붙은 ‘살다’가 이리도 사무치게 다가오는지.


실비아 플라스, 그리고 빅토리아 루카스, 또 다른 기차 여행을 떠난 어린 소녀까지 어쩌면 우리는 평행 우주 속 또다른 나처럼 비슷한 삶을 살고,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도전하고, 버텨내고, 의미를 찾아내고 있는 듯 하다. 그렇기에 실비아의 삶을 그저 한 인물의 일대기를 관람하듯 남일처럼 관전할 수 없었고, 공연을 보는 동안 참 많은 감정을 느끼고 나의 삶또한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삶이란 기차 여행, 3번의 비상 정차


 

johannes-hofmann-isKo2tLJHfA-unsplash.jpg

 

 

공연은 실비아라는 이름의 한 어린 소녀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낯선 기차에 몸을 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너무나 생소한 것 투성이에 어딘지 불편한 이 기차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그녀에게 이건 누구나 다 하는 아무것도 아닌 여행일 뿐이라며 아홉 번째 왕국으로 떠나는 기차 표 한 장만을 쥐어주고 그녀를 의자에 앉힌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실비아와 달리 어떤 일에도 감흥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는 눈이 먼 이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오직 스카프를 둘러쓴 낯선 여인만이 그녀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초콜릿을 건네며 실비아의 잘못은 없지만 이 기차 여행을끝내는 방법은 없으니 종착역까지 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비아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기차 여행을 멈추었는데, 이것을 ‘비상정차’라고 불렀다. 이 기차의 이름은 ‘인생’, 비상정차는 그러니까 자신의 인생 밖으로 나서는 것이 되는 셈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삶이라는 기차에서 3번의 비상 정차를 감행한다. 두번째 시도까지는 다시 기차 안에서 눈을 뜰 수 있었고,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법을 통해 자신을 증명 받았다. 즉,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실비아는 장래가 촉망한, 아니 촉망해야 했던 천재 시인이었다. 그녀는 자신 안에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과 담대한 시어들이 있기에 늘 자신감에 차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마치 이 곳이 아름다운 바깥 풍경과 단절된 기차 안이라고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그녀의 능력, 노력과 달리 매번 실비아를 좌절 시켰다. 


실비아는 파티에서 한 비평가가 자신을 아버지의 그림자에 갇힌 미성숙한 여류 시인으로 폄하 하였을 때도, 자신 속에서 답답하게 맴돌기만 하는 시어들을 꺼내 놓지 못해 울분이 터질 때도, 테드 휴즈와의 결혼 후 행복하리라고 믿었던 결혼생활이 녹록치 않았을 때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려 했지만, 그녀가 집필하던 소설 속 ‘벨 자’처럼 세상은 그녀를 투명한 유리종 안에 끊임 없이 가두려 했다. 


비상정차는 벨 자를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한 번 비상정차를 하고 나면 벨 자는 다시 실비아의 머리위로 올라갔고, 또 다시 천천히 내려오며 그녀를 압박했다. 실비아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신을 부정하고 원하지 않는 프레임 안에 가둔 채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남들과 다른 별종 취급을 피하지 못했다.


너무나 지친 그녀는 아이들을 위한 빵과 우유를 준비한 그날, 결국 세 번째 비상 정차를 감행한다. 오븐을 타월로 꼼꼼히막고 의사를 불러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가정부를 불렀다. 철저한 준비를 마친 그녀의 앞에 그녀에게 조언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빅토리아가 등장한다. 

 

 

 

평행우주 속 수많은 실비아들


 

christopher-burns-I95_6sicXdo-unsplash.jpg

 

 

빅토리아 루카스는 실비아가 문학가 파티에서 자신을 평가하던 비평가를 만나던 날 처음 나타났다. 그녀는 실비아가 일명 '남류'(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평가에 맞서는데 함께 목소리를 내주었고, 무언가 통한다고 생각한 둘은 그날 친구가 되었다. 이상하리만치 실비아가 겪을 일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며 실비아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던 그녀는 실비아의 세 번째 비상정차 날 오븐으로 향하는 실비아 앞을 막아선다. 


그녀는 또 다른 실비아다. 이전에 오븐에 머리를 넣은 적이 있고, 그로 인해 인생이라는 기차 여행을 벗어나 실비아의 곁으로 오게 된 빅토리아는 실비아의 인생 만은 지켜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어쩐지 빅토리아와 실비아가 완전히 동일인물이라기 보다는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또 살고 있는 수많은 우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실비아와 비슷했다.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인생이라는 열차에 몸을 싣게 되었고, 세상이 내게 요구하고 이름짓는 것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벨 자 속에 갇힌 것처럼 분명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세상이눈 앞에 펼쳐져 있지만 그것에 절대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투명한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내게도 빅토리아 같은 친구들이 필요했다. 세상에 너 혼자 인 것 같지만 우리가 함께 있다고, 여행을 시작하게된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의 발자취가 또다른 너로 살아갈 소녀들에게 힘이 되어줄거라는 빅토리아의 위로는 내게도 와 닿아 아홉 번째 왕국으로 향하는 기차 여행을 조금쯤 이어나갈 의지를 다져주었다. 


어린 실비아에게 초콜릿을 준 묘령의 여인이 한 소녀가 춥지 않도록 건내 줄거라던 빨간 목도리를 극 중 마지막 장면에서 실비아가 넘겨 받은 것은 그녀 또한 누구가의 빅토리아가 되어 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수많은 실비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합쳐주는 빅토리아들이 있기에 우리는 한 발짝 씩 더 어두운 층계 위로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빛나는 세상을 향해서.

 

 

 

실비아, 살다가 그려낸 실비아들의 이야기


 

leohoho-M_np5KRHSoA-unsplash.jpg

 

 

세상이 만든 프레임 속에 갇혀 살다 오븐 속에 머리를 집어 넣은 채 가스를 틀고 죽은 천재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를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이토록 몰입하고, 공감하며 위로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공연의 구성과 연출의 역할이 컸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것은 삶을 기차 여행에 비유한 장면을 극의 처음과 끝에 배치 했다는점이었다. 


빅토리아 역의 배우가 연기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스카프를 둘러싼 묘령의 여인과 어린 실비아가 대화하는 장면은 에필로그에서 이번에는 기차여행을 끝까지 해보기로 결심한 실비아와 또 다른 어린 소녀의 대화 위로 오버랩 된다. 묘령의 여인이 뜨고 있던 빨간색 목도리는 실비아가 넘겨 받았는데, 어쩌면 이는 수많은 소녀 실비아들에게 건내는 그녀의 위로, 즉 그녀의 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그저 '비운의 천재 시인' 실비아의 단면적인 모습만을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극 중 실비아는 자신을 끊임없이 가둬두려는 세상 속에서도 스스로를 증명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극단적으로 보이는 비상정차 시도 또한 그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실존 인물 실비아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세번째 비상 정차에서 빅토리아를 개입시킴으로써 실비아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확장 시켰다는 점 또한 인상 깊었다. 


공연 후반부, 벨 자를 완성한 실비아는 '실비아 플라스'라고 썼던 저자명에 줄을 긋고 '빅토리아 루카스'를 써넣는다. 그것은 어쩌면 어두운 계단일지라도 천천히 계속해서 발을 떼며 나아갈 용기를 준 자신의 친구에게, 또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또 다른 어린 소녀들에게 자신의 글을 헌정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그렇기에 나 또한 실비아가 벨 자를 비로소 완성 하였을 때 적잖은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멀티 배우의 활용이 굉장히 독특했는데, 그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관람 에티켓을 직접 알리며 무대와 관객 사이의경계를 허무는가하면, 극 중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장면의 기준점이 되는 시계 바늘을 돌리기도 하고, 소품을 몸으로직접 대체하며 감초 역할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조금은 좁은 무대 컨디션과 풍부하지 않은 소품의 한계가 잘 커버 되었던 것 같다. 어떤 공연에서도 이토록 멀티 배우가 다양한 요소에서 활용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굉장히 신기했던 것 같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