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조선 미술관

글 입력 2023.02.2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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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고미술 최고 해설가 탁현규가 문화 절정기 조선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한 권에 담아낸 책 [조선 미술관]을 새롭게 선보인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 조선의 천재 화가 7인의 작품과 숙종과 영조대의 궁궐 행사를 그린 기록화를 함께 소개함으로써 균형감 있는 시선으로 조선사회를 바라보게 돕는 특별한 미술책이다.

 

가장 '우리다운' 모습, 진짜 조선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는 점에서 [조선 미술관]은 또 한 번 특별하다. 저자는 책에 실을 작품으로 조선 후기의 그림들을 선정했는데, 그 이유는 17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림 속에 '진짜' 조선인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그림 속 주인공이 중국인인 경우가 많았다. 17세기에 접어들며 그림 속 중국 물소가 조선의 '황소'로(정선, [사문탈사]), 중국 나무꾼이 쓰던 멜대가 조선 나무꾼 고유의 '지게'로(정선, [어초문답]) 바뀌었고, 비로소 가장 조선스러운 그림이 되었다.

 

저자가 선별한 50여 점의 작품은 문화가 꽃피던 조선 후기 사회를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이자 좋은 사료(史料)가 된다.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조선 후기 풍경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조선 미술관]에 입장해보자.


 

 

뛰어난 관찰력으로 감각적인 연출을 해온 조선시대 화가들



고미술계 스타 도슨트 탁현규. 그의 강연이 인기를 끄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뛰어난 연출력을 현대의 기준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들려주는 데 있다.

 

한 예로 그는 신윤복을 '드라마 연출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로드무비 연출의 대가'라고 소개하는데, 길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생동감 있게 포착해내는 것은 물론 인물의 눈빛과 시선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특유의 연출법 때문이다. '붉은색과 푸른색 옷의 대비, 담장 바깥 높은 곳에서 집 안 들여다보기, 열린 방 안과 마당을 이어주는 마루를 무대로 삼기, 담장을 꺾어 무대를 양쪽으로 나누기' 등 현대 영화나 드라마에 적용해도 손색없는 연출법을 발견한 것은 덤이다.


신윤복뿐만이 아니다. 정선과 김홍도 그림에서 '다 그리면 재미없다'는 진경산수화 제1법칙을 찾아내는가 하면, 김득신과 조영석이 놀이를 즐기는 선비들의 승부 싸움을 각기 다른 손짓과 표정을 통해 설득력 있게 연출한 점에도 주목한다.


'옛사람이 그린 옛 그림, 옛이야기'로만 치부되기엔 어쩐지 아까운 작품들. K-컬처, K-아트의 힘은 수백 년 전 조선에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저자는 지금껏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그림 속 연출을 하나씩 찾아내 옛 화가와 그들 작품이 지닌 가치를 새로이 드높인다.


 

 

그림 속 숨은 이야기로 읽는 조선 후기 사회상


 

숙종부터 영조, 정조를 거치는 조선 후기, 문화 절정을 맞이했던 이 시기의 특징은 그림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평민들은 노동하며 보람을 느끼고 양반들은 호사스러운 놀이 문화를 즐기는 장면이 그러한데, 주로 일하는 것은 평민이고 기생과 어울리거나 매사냥을 하거나 투전을 즐기는 건 사대부나 중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한편 비슷해 보이는 그림에서 신분의 특징을 읽어내는 것도 고미술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저자의 그림 해설에 따르면 조선 후기 사대부 남성들은 사방관, 탕건, 낙천건 등 여러 종류의 관(모자)을 썼는데, 갓과 복건을 함께 쓰는 등 모자를 이중으로 쓰는 유행을 즐기기도 했다. 평민 이하 남성이 패랭이를 쓴 모습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사대부 여성들은 외출 시 어여머리에 너울이라는 쓰개를 썼고, 과부들은 머리 위에 개두라는 머리덮개를 착용했다. 같은 성별이라고 해도 옷의 종류나 모양, 착용법이 모두 달랐으니 다채로운 의복 생활을 살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책에는 이 밖에도 조선 후기 사회상을 짐작게 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유교에 밀려 불교계 힘이 약해진 시기 길거리 탁발을 하도록 내몰린 스님들을 그린 장면이나 재가할 수 없는 사대부 여인이 봄날 마당에서 짝짓기하는 동물들을 바라보는 장면, 궁궐 안팎에서 성대하게 열렸던 경로잔치를 담은 장면 등이다. 아름다운 옛 그림을 감상하는 동시에 생생한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궁중기록화로 들여다본 성대한 잔치 풍경


 

조선사회는 임금이 주인인 군주제 국가였고 노인을 우대한 경로사회였다. 나이 70이 넘은 정2품 이상의 고위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인 '기로소耆老所'도 있었다. 왕의 경우 60세가 되면 들어갈 수 있었는데 태조 이후 19대 임금인 숙종이 두 번째로 기로소에 입소했으니 숙종의 기로소 입소 사건은 그야말로 국가 경사였다. 이를 기록한 것이  [기해기사첩]이다.

 

책에서는 숙종대에 그려진  [기해기사첩]과 영조대에 그려진  [기사경회첩], 두 화첩 속 궁중기록화를 소개한다. 둘은 각각 숙종과 영조 임금의 기로소 입소를 축하하며 열린 잔치 장면을 담았는데, 같은 성격의 기록화첩이다 보니 두 왕조의 문화 수준 차이 등 여러 가지를 비교해볼 수 있어 더욱 가치가 높다.

 

특히 화첩에는 모든 등장인물과 물건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숙종과 영조를 도와 한 시대를 이끌었던 명신들의 초상도 함께 들어가 있다. 조선이 철저한 기록사회였음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어떤 역사 자료보다 현실감 있게 그 시절을 증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미술관]에서는 풍속화를 통해 조선 사람들의 사생활을 살피고, 궁중기록화를 통해 왕실과 상류사회의 공공생활을 들여다봤다. 궁궐 안팎의 다채로운 풍경을 모두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조선사회를 생생히 전달하는 미술책이 또 있을까? 옛 그림이 품은 놀라운 이야기와 색다른 재미를 새롭게 만끽할 시간이다.

 

 

 

탁현규


 

기획하는 전시마다 대박을 터트리고 매 강연 청중의 감탄을 자아내는 고미술계 최고의 해설가. 사진기의 역할을 대신했던 옛 그림 속에서 과거의 특별한 순간들을 발견해내기를 즐긴다. 박물관 한구석 잊힌 유물이었던 옛 그림도 탁현규의 예리한 해석, 그리고 재치 있는 입담과 만나면 한 편의 역사 드라마가 된다.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다니던 시절 간송미술관을 찾았다가 한국 미술에 흠뻑 빠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동덕여대, 경인교대, 한성대 등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삶의 쉼표가 되는 옛 그림 한 수저], [아름다운 우리 절을 걷다], [그림소담], [고화정담], [사임당의 뜰] 등이 있으며 KBS에서 펴낸 [천상의 컬렉션]을 감수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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