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태초의 형에게 묻는 삶의 진실,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의 이대웅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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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형에게 묻는 삶의 진실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의 이대웅 연출
지난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이는 실체적 진실보다 개인의 감정이나 신념에 호소하는 게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비단 브렉시트 사태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있던 당시에만 해당되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오늘날 진실에 무슨 힘이 있나. 온갖 정보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힘들고 그럴 시간도 없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외침만 들리지 않나. 그래서 대중 가수 나훈아는 2,0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에게 이렇게 물었던 모양이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그리고 여기, 그 '테스형'을 진실 없는 이 시대에 소환해 삶의 진실을 묻는 작품이 있다. 그것도 힙합을 통해.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1관에서 성황리에 공연 중인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얘기다. 작품은 소크라테스와 힙합 그리고 뮤지컬이라는 이질적인 세 가지를 아우며 당대 아테네인들에게 귀찮은(?) 질문자였던 소크라테스를 통해 역으로 지금 우리 시대의 진실과 뮤지컬의 경계를 되묻는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내용으로, 블랙 뮤직을 음악으로 삼는 작품에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개막 전 '이게 될까?'라는 반응은 개막 후 '이게 되네?'로 자리를 옮겼다.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초연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2월의 어느 날, 이대웅 연출을 만나 이토록 도전적이고 문제적인 작품에 대해 물었다.
소크라테스와 힙합, 그리고 뮤지컬의 만남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를 두고 ‘킹받는데 계속 보게 된다.’라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이런 반응, 예상하셨을까요?
예상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킹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거든요. 전혀 다른 장르 두 가지와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하고 따분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함께 들고 왔기 때문에 의아한 반응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거기에다가 예상 밖의 캐스트까지 더해지니까 (관객분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건 정체가 뭐야?’ 한 거죠(웃음). 예상보다 반응이 더 컸는데, 저희도 색달라서 기분 좋게 시작했어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프로그램북에는 HJ컬쳐 한승원 대표님과 김종석 부대표님의 '크레이지한 기획'에서 시작됐다고 기재되어 있던데요.
기획 단계부터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도 지금까지 논란을 이어오고 있는 소크라테스와 잔 다르크의 재판을 한 무대에 두 작품으로 올리는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어요. HJ컬쳐의 화가 시리즈나 변론 시리즈처럼 재판 시리즈를 준비한 거죠. 사실 (이 시리즈가) 다른 시리즈보다 먼저 시작됐는데 방향성과 크기가 달라지면서 오히려 제일 늦어졌고 그중에서도 소크라테스를 먼저 올리게 된 거예요. 두 작품을 하나의 무대로 묶는 프로젝트가 아닌 개별 프로젝트로 변화 혹은 진화한 거죠.
철학과 랩을 묶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하면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좋은 말들을 지루하지 않고 설교적이지 않게 전할 수 있을까’를 얘기하다가 나왔어요. 문득 한승원 대표님이 “랩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툭 던지신 말에 다들 “어?” 하면서 회의를 멈추고 레퍼런스를 찾았어요. 레퍼런스를 보면서 “이렇게 되면 너무 재밌지!”라고 쾌재를 불렀던 게 생각나네요.
사실 아이디어를 낸 것만큼이나 그걸 실천하고 실행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기획력으로 좋은 공연이 나온 것 같아요.
소재가 먼저 정해진 거고 이걸 어떻게 공연할까 하다가 블랙 뮤직을 떠올리신 거네요.
원래는 (시리즈 중에) 잔 다르크를 먼저 올리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양동근 배우가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에) 합류하고 기획사에서 블랙 뮤직이라는 콘셉트를 맞물려 주시면서 음악 감독님도 함께하시게 된 거예요. 뮤지컬과 랩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접합되고 분리되는지를 고민하면서, 힙합이나 랩도 블랙 뮤직의 한 계파니까 같이 묶어보자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새로운 시도인 만큼 첫 공연 전에 엄청 떨리셨겠어요.
다 떨렸죠(웃음). 양동근 배우 같은 베테랑도 2박 3일 잠을 못 잤어요. 연기를 보고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런 시간들이 있었는데, 앙상블들이 너무 잘해 준 덕분에 다른 배우들이 용기를 내고 왔던 것 같아요.
태초의 형에게 인간다움을 묻다
개인적으로는 소크라테스가 전쟁 후에 돌아오는 장면, 아테네 지식인들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 등이 시간 순서대로 나오다가 마지막에 재판으로 갈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변론에만 포커싱을 맞춰서 보여 주시더라고요.
재판 시리즈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연장선에 있는데요. 소크라테스의 연대기가 아니라 그의 죽음 직전, 인생을 살면서 정제했던 모든 말을 쏟아내는 시간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변론만 가지고도 만들 수 있었죠. 내용을 충실히 따라가되, 스타일링을 다르게 하는 게 훨씬 퀄리티 있는 선택일 것 같았어요.
다른 뮤지컬보다 더 많은 요소가 들어있는 만큼 만드는 입장에서 뭘 넣고 뺄지도 고민되셨을 것 같아요.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신 건 무엇인지, 또 소크라테스와 멜레토스 캐릭터라이징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켜야 하는 건 일단 메시지였죠. 그리고 인물을 동시대로 치환하더라도 기본적인 캐릭터성을 지켜야 했어요. 예를 들어 당시 소크라테스가 젊은 청년들을 찾아다니며 얘기할 때 맨발로 다녔거든요. 허례허식이 하나도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죠. 길바닥에 눕고 싶으면 눕고,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너는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조금 더 인간다울 수 있는 지점을 찾아다녔어요. 그래서 방랑자 같은 느낌도 있고요. 이런 것들을 실어서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으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외모 같은 걸로 선입관을 주는 게 아니라 경계가 없는 모습으로.
멜레토스는 역으로 세련된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젊은 시인인데도 70살 할아버지보다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고 보수적으로 잡혀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착안해서 따라갔어요.
책으로 읽을 때와는 다르게 멜레토스의 논리에도 일견 공감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진짜 소크라테스가 우리 시대 사람이었으면 일단 경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학이 밥 먹여 주냐’는 말도 있잖아요. 사실 멜레토스는 굉장히 현실 감각적인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현실을 이겨내고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그러다 보면 등잔 밑이 어두울 때도 있잖아요. 모든 것엔 음과 양이 있는 법이니까. 현실적으로 우리 시대를 생각해 보면 멜레토스의 말이 맞게 느껴지기도 해요. ‘철학이 밥 먹여 줘? 그래서 세금이 안 올랐어, 건보료랑 가스비가 안 올랐어?’(웃음) 예를 들면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는 거죠. 결국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철학적 가치를 탐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런 지점에서 형이상을 하등 쓸모 없어 하는 멜레토스의 말에 일면 공감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신이 소크라테스와 멜레토스를 지금 이 시대에 소환해서 시대에 맞게 보여 주는 것’(SBS 팟캐스트 '이럴거면 뮤지컬'에서 양동근 배우가 언급)이 연출 설정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죠?
2,000년 전의 얘기를 지금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맥락인 것 같아요. 재판을 동시대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건 신이고, 코러스들이 바로 그 신이라는 게 극적 설정이에요. 그리스 시대의 신들은 믿음이 있는 만큼 강했지만, 지금은 믿음의 시대가 아니잖아요. 신들의 시대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미약한 힘의 신들이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불러내서 지금 우리들에게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믿어 볼래?’라고 내미는 거예요. 그래서 오프닝도 그렇게 연출한 거고요.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를 지금 이 시대에 소환하신 이유는 뭘까요?
(소크라테스가) 본인을 ‘등에’라고 표현했잖아요. ‘나는 잠에 빠져 있는 너희들을 흡혈 파리처럼 쏠 거다. 등에가 있기 때문에 너희는 계속 인간으로서 자각할 거고 내가 죽더라도 나의 샘플들이 인간은 인간답다는 걸 보여 줄 것이다.’ 그렇게 예언했죠.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샘플들이 있어요. 진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대중에게 나의 가치관을 얘기한 사람들, 공교롭게도 그게 잔 다르크까지 이어지는 거고요.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샘플들이 살아 숨 쉬는 한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인문학의 표본, 철학의 양지이기도 해요. 사실 철학이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이유를 계속 찾는 거잖아요. 2023년도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계속 질문하고, 누군가에게 등에가 되고 등에에게 쏘이는 존재가 되면서 살아갈 때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시대에도, 우리 시대에도 전쟁이 있는 걸 보면요.
극중 전쟁이 언급되니까 작품이 더 묘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신나면서도 시의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왜 이렇게 인간사 회전율이 똑같지?’라는 생각을 해 봤어요. 과거의 흥망성쇠를 교훈 삼아서 안 그래야 하는데, 또 그러잖아요. 이유는 인간 수명이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정된 수명 안에서 사니까 욕망의 불씨가 안 꺼지는 거예요. ‘한 번 사는 인생, 지금이랑은 다르게 이뤄 보겠어!’라는 욕망 때문에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은 더 자유로운 시대여서 힘들다고 생각해요. 종족 번식이 의무도 아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좌표를 못 잡는 시대죠. 그러니까 2,000년 전 태초의 형한테 다시 질문하는 것 같아요. ‘테스형’이라고도 하잖아요. 지금은 시대의 형들이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정치인이나 시대의 아이콘에게 의식적으로 의탁했는데, 이제는 아이콘의 시대가 아니거든요. 아까 말씀드렸던 신이 소멸되는 맥락과도 맞아떨어지는데,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가 지금 시대상과 묘하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테스형을 찾나 봐요.
왜냐하면 예언이 너무 빨라졌거든요. 20세기는 빅 브라더가 개인을 통제해서 바보로 만들 거라던 조지 오웰의 시대였잖아요. 반면에 헉슬리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서 개인이 고를 줄 모르는 바보가 될 거라고 했는데 21세기가 되자마자 헉슬리의 시대가 왔어요. 헉슬리가 내다본 미래는 27세기였는데,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몇백 년이 당겨진 거죠. 헉슬리의 시대에서 우리가 뭘 골라야 할지 모를 때, 태초의 오리지널로 찾아가 보자는 의미에서 테스형을 찾는 것 같아요.
딱딱한 원 텍스트로도 이렇게 놀 수 있어
배우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뮤지컬 무대에서는 다소 생소한 얼굴인 양동근, 치타, 아넌딜라이트와 대학로의 든든한 배우인 유성재, 정민, 황민수의 조합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배우들의 호흡은 어땠나요?
서로 신선했어요. 일단 양동근 배우가 많이 리드했어요. 연습 때 선뜻 먼저 나서서 스케치해 보고 말해 보고 연기해 봤죠. 뮤지컬 배우들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높았는데, 수많은 독백을 하다가 갑자기 랩을 해야 하니까 차포 다 떼고 움직이는 느낌이었을 거예요. 래핑을 소화하기 위한 연습의 시간도 필요했는데, 그러면서도 (뮤지컬 무대가 생소한 배우들에게) 연기적인 자극을 많이 줬어요. 앙상블을 비롯해서 배우들 다 같이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시도해 보면서 천천히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넘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인 더 하이츠> <해밀턴> 등 힙합을 다룬 뮤지컬은 있었지만, 한국 힙합을 전면에서 다룬 건 <소크라테스 패러독스>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첫 힙합 작품이라고 해서 특별히 신경 쓴 것보다는 ‘이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오히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워낙 뛰어나니까 '이것만 제대로 소화해도 우리는 간다!'는 믿음이 있었고요.
믿을 만한 지원군들이 나타난 덕분이기도 해요. 만약 저희끼리 했으면 엄청난 의심이 들었을 텐데(웃음). 치타가 합류하자마자 멜레토스 랩을 쫙쫙 써내는데 경이로웠어요. 그리고 콜링콰이어 팀의 블랙 뮤직 코러스, 음악 감독님의 정석적인 뮤지컬 음악, 래핑을 위한 DJ 렉스의 비트 등이 다채롭게 섞이니까 콘서트로 가도 되겠다고 할 정도였죠. 하기 전에는 ‘이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컸고 하면서는 너무 즐거웠어요.
커튼콜 때 관객분들도 싱어롱으로 즐기시더라고요.
한 10년 동안 랩이라는 장르가 하이 퀄리티로, 자본주의의 정점으로 섰잖아요. K-팝도 있고요. 이제는 우리 식으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딱딱한 원 텍스트를 가지고도 우린 이렇게 놀 수 있어‘를 보여 줬기 때문에 앞으로 랩으로 하는 공연이 더 보편화되고 정착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극단 여행자’, ‘프로젝트 그룹 만물상’, 프로덕션 작업 등 오랫동안 공연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오고 계시는데,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신념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다릴 앙카의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라는 시가 심장에 박히듯이 들어왔고, 그래서 이쪽 일을 해 온 거예요. 그 안에서도 챌린지가 있는 작품들을 하다 보니까 새롭게 깨닫는 점도 많아지고 보는 프리즘도 쌓였는데, 그런 점에서 공연 연출에 큰 매력을 느껴요.
그리고 결국은 실천인 거죠. 생각이나 말을 많이 할 수는 있는데, 막상 실제로는 못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공연 연출이 할 수 있는 여러 분야에 도전하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다 가 보고 싶은 게 제 욕망입니다(웃음).
또 어떤 작업을 예정하고 계시는지도 여쭤보고 싶어요.
반 틈은 극단 작업을 하고 반 틈은 프로덕션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극단에서 한참 진행 중인 작업이 ‘여성국극의 부활’이에요. 여성국극을 연극적으로 치환해서 셰익스피어와 만나게 한 <베로나의 두 신사>라는 작품이 작년에 성공적으로 올라갔고 지금은 2탄으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준비하고 있어요. 화려한 불꽃처럼 사라진 여성국극에 관해 공부하면서 시리즈를 3탄까지 만들 생각이에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연극화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재공연도 여름에 올릴 계획이고요.
그리고 HJ컬쳐와는 재판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잔 다르크>를 준비하고 있는데, 꽤 멋있을 거예요. 4월 중순에는 예술의전당 30주년 기념 공연으로 <추남, 미녀>라는 작품이 재공연으로 올라가고, 3월에는 <어린왕자>가 개막하는데 대만 팀이 특별 공연을 할 예정이라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극 중 소크라테스는 ‘모른다는 것을 안’ 와이즈 맨(Wise Man)이라고 표현되는데요. 끝으로 연출님께서 2023년에 도달하고 싶은 진리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올해 안에 도달하고 싶다기보단 저에게는 계속되는 질문 같아요. 전에는 내가 생각했던 걸 공연 문법화시키는 것에 대한 천착이 심했는데, 이제는 ‘또 다른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 HJ컬쳐와 멋진 작업도 하고 있고, 극단에서 추구하는 파인 아트에서의 연극적 태도도 있고, 또 ‘해녀의 부엌’이라는 제주도 로컬 크리에이티브 작업도 하고 있거든요. 그럴 때 '연출이라는 사람이 21세기에 어떤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요. 콘텐츠를 기획·생산하는 머리가 연출한테도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을 잘 다루는 사람들한테 먹히더라고요. 그런 기술자들 앞에서 연출이 대항마가 될 수 있는 게 뭘까, 이런 게 저한테는 화두예요. 소크라테스를 뮤지컬에 끌고 온 것처럼 콘텐츠를 계속 개발하고 생산·발굴해 내는 건 어떤 걸 예술로 위치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잖아요. 그게 평생에 걸쳐 돌아오는 고민이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전 문학을 공연화하는 데 경험이 많아요. 평생 할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환갑이 넘으면 <피노키오> 같은 것도 해 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넷플릭스 영화로도 나왔는데 기가 막히잖아요. 결국 가장 본질적인, 원형의 이야기로 흘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김나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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