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콕여행기, 조금의 조미료를 곁들인... [여행]

글 입력 2023.02.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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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여행기, 조금의 조미료를 곁들인...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태국에 간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왜 가고 있다고? (대학원 연수로 갔다) 좁은 비행기를 탔다. 4시간 반인줄 알았던 비행이 6시간임을 알고 나머지 한시간 반은 지루의 극치를 달렸다. 시간을 헷갈린건 날짜 변경선 때문에. 시간을 계산할 때 공간을 감안해야 하는걸 깜빡했다. 그 옆에 비행시간을 무시했음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동일한 시간대로 묶이는 하나의 공간에 머물러왔다는 사실을 순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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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도착한다는 기장의 목소리가 들리고 옆으로 눈을 흘겨 창문 밖을 보니, 깜깜한 밤, 우글거리는 거미줄 같은 주황빛들이 보였다. 문득 6시간만에 다른 문명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렇게 같은 시간에 다른 문명, 다른 인종, 낯선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었지, 살짝 설렜다.

 

대항해시대 모험가들만큼은 아니였겠지만. 탐험의 시대에 아즈텍 문명의 원주민들과 스페인 탐험가들의 첫 만남을 떠올려본다. 서로 얼빠진 모습,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긴장과 그 완전한 미지에 대한 공포, ‘저렇게 생겨먹은 것들은 처음 보는데.’, 탐험가들의 입장에서는 ‘드디어 찾았다.’ 내지는 ‘얘네들은 얼마나 강할까?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되나?’ 정도 아니였을까. 아니면 도착하기 전에 그 탐험하는 배에서 두런두런 전략을 짰겠지? 그들은 서로를 어떤 이름으로 불렀을까? 탐험가들이 정복자가된 것은 상대방을 먼저 “열등한 주체”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잠깐 생각하다가 “호텔 oo ooo, with the name of yeogshin nam?” 밝은 공항에서 서로 아는 언어로 내뱉은 첫인사.

 

 

 

카오산로드와 발마사지


 

잡은 숙소가 알고보니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카오산로드에서 걸어서 10분밖에 안되는 거리였다. 그래서 태국에서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카오산로드를 왔다갔다했다. 그래봤자 3박 5일의 여정이였지만. 카오산로드라는 유명한 길이 있고 주변에도 비슷한 느낌의 거리들이 있다. 어느 거리든 대마초 표시가 있는 샵이 하나씩은 있다. 자욱한 대마초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낮에는 지친 여행객들이 길에서 늘어져 다닥다닥 태국식 발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보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하얗고 몸집좋은,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과 그 앞에 발을 주물거리는 마른 몸집의 까무잡잡한 사람들. 정확히 무엇이 이 광경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어떤 관광지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지인들과 그 서비스를 돈 주고 사는 관광객들이 있기 마련인데. 희미한 횡단보도를 다섯개쯤 건너며 이 불쾌함의 근원을 곰곰이 생각했다. 

 

발마사지라는 그 일차적인 서비스가 보여주는 이미지, 우산이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의 선베드에 누워 반쯤 잠긴 눈으로 마사지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낯선이의 발-손보다 사적이고, 불경한-을 주물거리는 사람들의 대비. 그리고 무엇보다 이 행위가 전문적인 샵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배회하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 거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이 몸들이 전시된 것을 보는 듯한 이질감까지. 그날 느꼈던 불쾌함의 근원을 설득력있게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횡단보도 다섯개쯤을 더 건너봐야 하겠음...이런 생각의 끝에는 주로 괜찮은 통찰이 있거나 나의 편견이 있거나 둘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카오산로드와 저녁


 

카오산로드는 낮보다 해질녘이후가 좋았고 카오산 로드보다는 주위의 거리 중 하나인 람부뜨리 거리가 좋았다. 카오산로드는 뭐랄까 너무 본격적이다. 대마초도, 거리의 판매행위도, 악어고기도. 하여간 편의를 위해 이 주위를 모두 카오산로드라 통칭하겠다. 노을이 지면 조명이 켜지고 라이브 음악들이 시작된다. 거리 양쪽의 레스토랑과 술집들은 의자들이 서로를 바라보게 두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나 다른 자연관경도 아니고 서로를 바라보게 된 형국이 조금 웃기다.

 

카오산로드는 사람 보는 맛에 가는것이라는 거라고. 거리는 히피들과 각국 나라들의 관광객들로 가득 차있다. 나는 멕시코 남부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소소하게 배낭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카오산로드는 산크리보다 훨씬 크고 유흥이 많으며 어딘가 퇴폐적인 느낌도 났지만 그래도 여간 비슷한게 아니라서 낯설지 않았다. 아는 곳을 온 느낌. 살아온 곳에 다시 돌아온 편안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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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맛과 멋


 

방콕은 놀랍게도 어느곳이나 향기로웠다. 카오산 로드에 대마초와 섞인 향냄새들, 거리마다 다른 향을 피우나? 어디서 나는지 모를 좋은 냄새들. 심지어 택시들도 무슨 향을 쓰는건지 향기로웠다. 자꾸 멕시코랑 비교해서 미안한데, 위에서 말한 산크리스토발은 어딜가든 냄새가 조금 고약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 수도는 수도라 이건가. 향기는 타인에 대한 친절함과 연결된다. 관광의 도시에 온 느낌이 물씬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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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음식은 역시나 맛있다. 한국인들은 태국음식이 입에 맞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채소들에 상큼한 소스, 땅콩을 곁들인 솜땀은 태국음식점에가면 어디서나 먹었던 것 같고, 평소에 즐겨하지 않는 똠양쿵도 맛있다! 모닝글로리와 생선을 쌈에 싸먹으라고 준 메뉴, 이름모를 소스들과, 한국인들은 좋아할수밖에 없는 갈비국수.

 

전반적으로 태국음식은 풍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식감은 다양하고 맛도 짜거나 달거나 한것만이 아니라 시큼하기도 하고 쌉쌀하기도하고. 몇끼를 먹다보니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겨울인 한국에 돌아온 지금, 더 많이 먹고 올걸. 벌써 한 겹의 후회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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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번 태국여행은 대학원 연수로 온 것인데, 그래서 연수의 주 일정은 태국의 현지 대학교와 교류하고 세미나를 가지는 것이였다. 한국에 있을때도 줌으로 몇번 본 얼굴들이 있었는데 얼굴을 대면하고나서야 아, 이들이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였구나, 화면 너머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동시에 줌이나 전화로 타인을 아는 것에 더욱 회의적이 되었다. 언젠가 연인이 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전화통화를 하던 그 시간은 우리 연애에 반으로 쳐야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대면하지 않는 관계는 완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게 된 학생들은 미안할 정도로 친절하고 똑똑했다. 나라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말해주는데 청년들은 어느나라나 보기가 좋았다. 청년들이 너무 보수적이면 징그럽다는 아빠의 말이 생각났다. 하루는 두명의 학생들이 우리의 투어가이드가 되어주었다. 괜히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너희 친구들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지, 왕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어딘가 내 멕시코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하는 착하고 귀여운 얼굴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눠준다.

 

삶에서 얼마나 많은 얼굴들을 스치는지. 어떤 얼굴들은 쉽게 증발해버리고 어떤 얼굴들은 자국처럼 오래 남는데, 이 방콕 사람들은 어떨까. 나중의 기억만이 말해주겠지. 한국에 돌아온 지금, 일상을 조금 낯설게 살게 됐다. 아무래도 이런게 여행의 매력이려나, 집 앞의 똑같은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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