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토브리그 - 축구에서 브랜딩을 찾다 #10

글 입력 2023.02.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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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모두가 분주하다. 광고업계에서 1분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사실 이건 어느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긴 하다).한 해의 대략적인 청사진이 이때 결정되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지난해의 성과를 측정하고, 광고주들의 마케팅 플랜에 따라 올해의 목표를 세팅한다. 끊임없는 미팅을 통해 아이디어와 전략을 정리한다. 경쟁 PT에 쓸 제안서를 만든다.


사실 지난해는 아쉬운 한 해였다. 흔히 광고업계의 매출 곡선은 1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J자를 그린다고 한다. 기업들이 비용을 아끼느라 매출이 비교적 잠잠한 1-2분기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3-4분기가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는 오히려 반대였다. 1,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위드 코로나에 일상 회복을 기대하며 시장엔 많은 돈이 풀렸다. 기업들도 열심히 광고를 집행했다.


하지만 3, 4분기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고,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었다. 시장엔 돈이 말라갔다. 이에 기업들은 앞다퉈 지출을 줄였다. 마케팅 비용도 그중 하나였다. 진행 예정이던 프로젝트가 줄줄이 취소되었고, 이미 진행하고 있던 것들은 규모가 축소되었다. 그러자 회사 내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출이 줄어들면서 회사의 잔고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흉흉한 소문과 함께 대규모 조직개편이 이뤄졌다. 구성원들 사이에는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새해가 밝았지만 이 불안한 분위기는 여전히 회사와 구성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내 이어진 불황은 올해에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광고)주님들의 씀씀이도 여전히 쪼그라든 상태다. 나름대로 애는 쓰고 있지만 아마도 상반기까지는 계속 어렵지 않을까 싶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음속에서는 동기부여가 절실하다. 우리 모두가 애를 쓰는 만큼 올해는 좀 더 좋아졌으면 좋겠지만, 각종 지표를 통해 보이는 그림은 여전히 불안하다. 나 하나 애쓴다고 뭐가 바뀔 수 있을까. 올해는 잠자코 어떻게든 지나가기만을 바라야 하는 건 아닐까. 사실 광고라는 건, 마케팅이라는 건, 브랜딩이라는 건 언제든 잘라낼 수 있는 쓸데없는 일이었을까. 수많은 물음들이 떠오르는 지금, 시원한 해답이 필요하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 이번에도 그 답을 축구에서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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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도 1월은 중요한 시기다. 리그는 진작에 끝났고,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던 카타르 월드컵도 12월에 끝이 났다. K리그 내 각 구단들은 본격적인 스토브리그에 돌입했다(원래 축구에선 ‘프리시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긴 한다). 지난 시즌의 아쉬움과 환희는 뒤로하고, 다가올 시즌에서 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구단의 구성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착실히 준비한다.


스토브리그에 이르면 팬들은 난로(STOVE) 주위에 모여 다음 시즌에 대해 열띤 논쟁을 이어간다. 재미있는 건 이때의 중심이 선수단보다 프런트(혹은 보드진)라는 것이다. 사실 축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의 초점은 선수와 감독들에게 맞춰져 있다. 재무, 운영, 스카우터, 마케팅, 인사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까지 관심을 가지는 팬은 거의 없다.


허나 스토브리그에서만큼은 프런트가 주인공이다. 한 해의 예산을 설정하고, 여기에 맞춰 선수들의 영입과 방출, 연봉 협상을 처리한다. 지난 시즌 동안 지치거나 다친 선수들의 회복을 돕는다. 전지훈련과 시범 경기 일정을 조율하여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감독의 새로운 전술이 무사히 정착하도록 일조한다. 리그 경기를 비롯해 새 시즌의 전체제인 일정을 세팅하고 조율하는 것도 프런트의 몫이다.


특히 이러한 프런트의 역할은 구단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빛을 발한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난 2년이 코로나19로 신음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힘들었지만 특히 스포츠계의 고통이 심했다. 


축구 구단의 수입은 티켓 판매료, 중계권료, 스폰서의 후원, 기타 수입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리그가 중단되거나 무관중 경기가 늘어났다. 가장 중요한 중계권료와 티켓 판매료를 잃게 되면서 구단들은 재정 위기에 처했다. 스폰서에 기댈 수 있는 빅클럽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진짜 문제는 중소 규모, 하부 리그의 팀들이었다. 선수들의 주급도 감당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많은 클럽들이 파산 위기에 처했고, 심한 경우 강등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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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대표적인 사례가 ‘FC바르셀로나’다. 지난 2021년 축구계의 가장 큰 화두는 리오넬 메시의 이적이었다. 원인은 바르셀로나의 불안한 재정이었다. 구단의 프런트가 방만하게 경영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간 바르셀로나는 이적시장에서 계속 실패를 반복했다. 그리즈만, 뎀벨레, 쿠티뉴 등 비싼 돈을 들여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클럽 적응에 실패하면서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되었다. 


이로 인해 재정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스쿼드의 세대 교체까지 늦어졌다. 세계 최고 유스 시스템이라 불리던 라마시아는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많은 유스 선수들이 1군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다른 팀으로 떠났다. 조안 빌라 등 오랫동안 헌신해오던 팀의 스태프들도 하나둘씩 떠났다. 본래 바르셀로나는 탁월한 유스 시스템과 여기서부터 쌓아 올린 단단한 팀 컬러로 성장한 클럽이었다. 하지만 프런트는 본인들의 아이덴티티를 배신했다. 덕분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바르셀로나는 약해졌고, 그 결과 19/20시즌 UCL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대패를 당했다.


한편 라리가에는 샐러리캡이라는 제도가 있다. 구단 수입에 비례해 팀별로 사용 가능한 선수들의 연봉 총액의 한도를 둔 제도다. 쉽게 말해 번 만큼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각 구단의 수입이 크게 줄었다. 당연히 연봉 총액도 낮아졌다. 문제는 그동안 바르셀로나가 데려온 선수들이 비싼 몸값만큼 연봉도 높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팀의 주축 선수라면 감당해야 하는 명분이라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들 대부분은 바르셀로나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고 잉여 자원으로 전락했다. 뒤늦게라도 프런트는 이들을 정리하고자 했지만 몸값은 높은데, 부진한 선수를 데려가는 팀은 없었다. 


결국 바르셀로나는 구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메시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 이별이었다. 팬들은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고작 돈 때문에 놓쳐버린 무능한 프런트를 향해 비난을 쏟았다.


안타깝게도 바르셀로나의 비극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사비 감독의 부임 이후 조금씩 옛 명성을 찾고 있는 모양새지만 구단의 재정 상황은 썩 나아지진 않았다. 오죽하면 22/23년 시즌이 개막하기 직전엔 어렵게 영입한 선수들을 샐러리캡 문제로 리그에 등록하지 못할 위기까지 처했다. 다행히 이 문제는 25년간의 TV 중계권료 25%를 판매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구단 운영에 있어 보다 혁신적인 조치가 없다면 바르셀로나의 악몽은 당분간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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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도르트문트 공식 블로그

 

 

이와 반대로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사례가 있다. 오늘날엔 빅클럽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지만 도르트문트 역시 한때는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바이에른 뮌헨에 대적하는 강력한 경쟁자였지만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무분별한 선수 영입과 채무 관리의 실패로 재정 위기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주식 상장을 위한 무리한 투자가 거대한 적자로 돌아오면서 2005년엔 부도를 목전에 두기도 했다. 결국 구단의 프런트는 선수들의 주급을 일제히 삭감했다. 홈 경기장을 매각하고, 얀 콜러 등 주축 선수들을 내보냈다. 팀은 흔들렸고, 성적도 떨어졌다. 06/07시즌엔 강등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도르트문트는 재정 위기를 해결하고자 뼈를 깎는 노력에 돌입했다. 우선 채권단과 협상을 통해 급한 불이었던 경기장 임대료와 대출 이자 문제를 해결했다. 모건 스탠리로부터 7,900만 유로 규모의 장기 대출을 받아 그중 5,700만 유로로 홈경기장의 지분 51%를 재구매하여 경기장 임대료를 줄였다. 남은 돈으로는 리파이낸싱을 단행하여 채무 상황을 개선했다. 선수 영입에 드는 비용도 크게 줄였다. 대신 유망주를 발굴하는 스카우팅과 유스 시스템을 강화했다(이를 통해 도르트문트 프런트는 2년간 선수 인건비를 1,300만 유로나 절약했다). 팬들 역시 '우리는 보루시아' 캠페인을 전개하며 구단의 회생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 결과 2005년 당시 한 해에만 5,500만 유로에 달했던 적자는 2007년 들어 1,500만 유로의 흑자로 전환되었다. 2008년엔 구단 역사상 최초로 1억 유로가 넘는 수입을 벌어들였다. 성적 역시 상승했다. 강등 위기를 겪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지금까지 리그 우승 2회, 포칼컵 우승 3회를 달성했다.


이후로도 도르트문트는 그때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비싼 스타 플레이어보단 젊은 유망주를 데려와 육성했다. 성장한 선수들은 비싼 값에 되팔아 쏠쏠하게 수익을 챙겼다. 이를 통해 구단의 재정을 강화하고, 또 다른 유망주를 찾는 데 투자했다. 결과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만큼 뛰어난 체력을 기반으로 빠르고 역동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리그에선 좋은 성적을, 팬들에겐 보는 재미를 주었다. 챔피언스 리그에도 거의 매년 출석 중이다. 위기가 불러왔던 불가피한 선택이 이제는 도르트문트만의 팀 컬러가 된 것이다.


이러한 도르트문트의 경험과 아이덴티티는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도르트문트가 택한 건 팬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2005년 당시 재정 위기를 극복하는 데 팬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던 기억 때문이다(실제로 도르트문트는 전체 유럽 축구팀 중 평균 관중이 가장 많을 정도로 팬들의 충성심이 탄탄하다). 


그들은 홈경기장을 치료 센터로 제공하고 기부 등의 캠페인을 통해 지역 경기를 살리고자 노력했다. 아시아 팬들을 위해 가상의 온라인 투어를 여는 등 오프라인 행사의 공백을 디지털 콘텐츠로 대체했다. 덕분에 도르트문트는 적자 폭을 수입 대비 10% 미만으로 유지하는데 성공했다(물론 엘링 홀란드, 제이든 산초 등의 유망주를 판매하며 얻은 2,000억 원이 넘는 이적료 수입도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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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성적은 단장 책임, 관중은 감독 책임. 그걸 믿는 편입니다." 여기엔 시즌을 앞두고 걱정 많은 감독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이는 동시에 주인공의 직업윤리, 혹은 직업적인 신념을 드러내는 대사이기도 하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지언정 내 일의 가치를 믿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바르셀로나와 도르트문트 프런트의 행동은 현재에 이르러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하나는 추락했고, 다른 하나는 착실히 올라가는 중이다. 특히 도르트문트의 사례는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잊지 않고 자신들의 팀 컬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구단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교훈을 준다.


만약 브랜드를 구단으로, 상품을 선수로 가정했을 때 마케팅팀이나 광고 대행사는 프런트 역할을 수행한다. 마케팅 일정은 어떻게 세팅할지, 어떤 메시지를 선택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매체는 무엇으로 할지, 어떤 모델을 섭외할지 등등. 프런트가 한정적인 자원으로 선수단을 강화하며 팀이 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이끈다면, 마케팅팀과 광고대행사 역시 한정된 예산으로 최적의 마케팅 플랜을 통해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매출을 극대화하는데 목표를 둔다.


그러니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불필요해 보이더라도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는 가치가 있다. 축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어쩌면 우리의 최선이 또 다른 문화와 또 다른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을 극복할 토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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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드라마 속 백승수 단장의 직업윤리가 ‘성적은 단장 책임’이라면, 나의 직업윤리는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냥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광고가, 마케팅이, 브랜딩이 성공하기 위한 기본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하우스 마케터라면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고객의 이익까지 생각하고 알아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브랜드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행사의 AE도 마찬가지다. 광고주는 물론 고객의 이익까지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여기에 협업사인 프로덕션, 소속사, 랩사 등과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광고주에게 좋은 파트너로 남을 수 있고, 이 모든 노력은 대행사의 매출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최근 우리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회사 바깥에서도 함께 일하고, 함께 견딜 이들을 찾고자 한다. 물론 지금은 초기 단계라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될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을 시도해 보려는 건 바로 이게 우리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어쩌면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될지도 모르는, 불황을 견디는 우리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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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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