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오네스코 - 의자② [도서/문학]

외젠 이오네스코의 「의자」에 관하여②
글 입력 2023.01.2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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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네스코 - 의자① 편과 이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손님, 의자


 

극에 등장하는 모든 손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의자로 대체된다. 그런데 노부부는 환상에 빠져 헛것을 보는 것처럼 진짜 존재하는 사람인 양 손님들을 맞이하고, 심지어는 손님이 떨어뜨린 보이지 않는 물건을 집으려고 허리를 구부린다거나 그들에게 손키스를 받는다. 이 허상의 목격자인 관객은 마치 팬터마임을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827_les-chaises_2.jpg

Les Chaises, Grand Theater, 1988

   

 

노부부가 쏟아 놓는 언어의 증식만큼이나 의자(손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한다. 의자는 결국 노부부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무대를 점령하는데, 그 공간은 총체적으로 비어있다.

 

“너무 많다는 것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물건들은 반정신적 힘의 승리를 말하며 고독이 구체화된 것이다.” (외젠 이오네스코, 『노트와 반노트』) 손님들을 위해 무대 위에 놓이는 의자들의 증식은 역설적으로 ‘부재’를 점점 극대화한다. 즉, 공허를 메우기 위해 들여온 물질. 그것들의 늘어나는 무게는 도리어 공허를 가중함을 보여준다.

 

더하여 비존재하는 것은 비가시화된 손님들만이 아니다. “그의 가시성은 단지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어려움으로부터 생겨나는 단순한 자의적 묵계에 불과하다.” (외젠 이오네스코, 『노트와 반노트』) 마지막에 등장하는 변사와 손님들 간의 차이는 크지 않을뿐더러, 앞서 설명했듯 노부부 또한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 됨’이 불가능한 텅 빈 그들은 고독의 한가운데에서 상상의 인물인 의자들로 자신들의 허를 가득 채우려 몸부림치지만, 이는 허를 극대화하여 노정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뿐이다.

 

 

 

변사의 메시지


 

변사: (두 사람의 자살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감정 없는 부동 자세로 있다가, 잠시 후 말하기로 결심한 듯, 줄지어 있는 빈 의자를 마주하지만, 보이지 않는 군중들에게 귀머거리에 벙어리임을 알리기 위해 절망적인 노력을 할 뿐이다. 이어 헐떡이며 신음소리를 낸다.)

에, 므므므, 므므, 므므. 주, 구, 우, 우. 애, 애, 구, 구우, 구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을 축 늘어뜨린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얼굴이 밝아지며 칠판 쪽으로 돌아서서는 주머니에서 백묵을 꺼내 커다랗게 쓴다.

「의자」,179p

   

노인이 인류에게 전하려던 절대적 진리의 메시지는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던 변사로 인해 끝내 전달되지 못한다.

 

그가 적은 말 중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안녕”뿐이다. 이는 메시지의 부재, 인간들 사이 의사소통의 불능을 뜻할 수도, 혹은 언어 자체의 무능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쩌면 노인이 전달하고자 했던 최후의 메시지가 그저 “천사빵”이나 “안녕” 정도의, 무의미한 단어들의 집합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노부부가 달성하고자 했던 영광스러운 죽음이 처참히 바스러졌다는 것이다. 노인이 메시지를 전하려는 행위는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지막 시도이다. 허나 이 구원의 희망은 거절당하고 죽음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자살로 남고 만다.

    

 


존재론적 공허함, 부재



Les Chaises.jpg

Les Chaisesby Cosimo Mirco Magliocca, Studio-Théâtre de la Comédie-Française, 2009


 

이오네스코는 어느 순간 세계가 비현실적이고 의미가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세상은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부재이고 공허함이며 무’임을 극적 현실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의자:Les Chaises》는 제한된 공간에 고립되어 허무로 점철된 삶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의 일환으로 허구의 세계(상상의 세계)에 비존재로 살아가는 노부부를 그린다. 앞서 설명했듯 그는 의자를 통해 존재와 무가 동시에 증식하는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공허를 구체화, 가시화하는 데 성공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공허함의 세계. 언어와 사상의 해체에 이어 구원의 희망까지 해체된 절대적인 무의 상태. 그의 극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껏 접했던 허무감과는 또 다른, 소름 끼치는 절대성을 휘두른 허무가 비친다.

 

차마 제대로 직시할 수조차 없는 비장하고도 엄정한 허무. 이오네스코는 이 심오하고 근원적인 놀라움을 희극성 속에 온전히 담아내었다.

 

 

아무튼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말하듯이 모든 존재의 덧없음, 존재의 부재를 의미하는 듯하다. 이 희곡의 테마는 메시지도 삶의 실패도, 두 늙은이의 정신적 파탄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부재, 신의 부재, 물질의 부재, 현실세계의 부재, 형이상학적 텅빔이다. 인생, 그것은 허무인 것이다. 따라서 인생은 절망적이며, 두 늙은이의 고독과 죽음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실존적 고독은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채 외부세계와 단절된 상태로 표현된다. (외젠 이오네스코, 『노트와 반노트』-이오네스코의 작품세계)

 


 

참고 문헌

김찬자, 『이오네스코 읽기』, 세창출판사, 2015

외젠 이오네스코, 『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2003

외젠 이오네스코, 『노트와 반노트』, 동문선, 2003

 

 

[박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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