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식 채널 YOU [문화 전반]

제너럴 빠진 제너럴리스트의 시대, 지식을 중개하다
글 입력 2023.01.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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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한창이던 때, 교내 익명 커뮤니티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몇몇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에서 장난스러운 채팅으로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게시물에 달린 댓글은 주로 '예의가 없다'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는데, 나 역시 글을 읽고 짐짓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수업은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상당히 정적인 분위기다. 수업 내용을 설명하시는 차분한 교수님 목소리를 제외하면, 수업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가와는 무관하게 학생들은 대체로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까지 조용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 때문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에 'ㅋㅋㅋ'가 섞인 채팅이 올라오는 광경은, 직접 목격한 적도 없거니와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다.

 

 

 

 

그런데 여기 'ㅋㅋㅋ'와 농담이 가득한 강의실이 있다. 유튜버 '침착맨'은 최근 역사학자 임용한 박사를 초청해 '전쟁사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테마로 약 두 시간분의 실시간 방송을 진행했다. 어디선가 인간이 연속적으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채 한 시간도 되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방송 영상에 달린 댓글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혼자 밥 먹을 때, 설거지할 때, 지하철 환승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한 이 영상에 푹 빠져 장장 두 시간 동안이나 평생 접해 본 적 없던 전쟁사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영상의 조회수는 업로드된 지 2주 만에 백만 뷰를 거뜬히 넘겼으며, 너무 재미있다며 박사님의 고정 출연을 요청하는 댓글이 잇달아 달리고 있다. 학교에서의 수업 시간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낯선 광경이다. 이들 모두 언젠가 한 번쯤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졸린 눈꺼풀을 지탱하면서 '제발 빨리 밥 먹으러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 적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이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 이 특강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 새로운 세대를 위한 지식


 

'MZ 세대'라는 용어가 내포하는 어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명명의 편의를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MZ 세대에 대한 흔한 오해로는, '당최 공부를 하질 않는다'던가 '상식이 없다' 등이 있다. 최근 '심심한 사과'라는 말에 '누굴 놀리는 거냐'면서 분개한 한 청년의 사례가 소개되면서 MZ 세대의 문해력 논란이 불거지고, 특히나 급격히 하락하는 청년층 '종이책 독서율'을 근거로 이러한 오해는 더욱 깊어지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서문에 소개한 유튜브 사례에서처럼, 실제 MZ 세대는 지식을 수집하는 데 열광적일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기까지 한다. '침착맨'의 특강 시리즈뿐 아니라, 최근 급상승 유튜브 채널의 목록을 보면 대다수가 지식 전달을 전문으로 하는 지식 채널이었다. 전공자가 몇 년 동안 공들여 연구한 내용을 10~20분 내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이들 채널은 사용자의 대다수가 청년층인 유튜브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으며, 최근 '숏 폼' 영상이 유행하면서 짧은 시간에도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보았을 때, MZ 세대의 무지 논란은 정말이지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락하는 종이책 독서율과 늘어나는 지식 유튜버 구독자 수의 엇갈림이 시사하는 바는,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접하길 원한다는 점이다.


가령 '침착맨'의 영상이 인기를 끌었던 데는 강의의 내용보다도 진행자 침착맨의 역할이 훨씬 컸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영상 속 전쟁사 강의는 내용 그 자체로 흥미롭기는 하나 학교 수업과 실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이 영상이 인기를 누리게 된 핵심은 강의에 더하여 그것을 전달하는 분위기의 유머러스함이다. 침착맨은 강의 도중 창의적인 비유를 통해 강의 내용을 뇌리에 꽂히게 정리하거나, 인터넷 은어와 '드립'으로 결코 지루할 수 없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처럼,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시청자 수준에 맞춰 맞춤형 지식을 전달하는 침착맨의 역할은, 낯선 지식과의 설레는 만남을 주선하는 그야말로 지식 중개자이다.


이제는 지식의 창출뿐 아니라 지식의 중개가 중요해지는 시점이며, 지식의 참신함만큼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참신함이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지식 채널이라 하면 <지식 채널 e>와 같은 소수의 공영 다큐멘터리 몇몇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 하나만 시청해도 수많은 지식 채널로 알고리즘이 포화 상태에 이른다. 유튜버들은 같은 내용이라도 서로 다른 분위기와 입담으로 소개하고, 시청자는 지식의 내용뿐 아니라 유튜버의 매력과 개성까지 고려하여 구독 버튼을 누르게 된다.


이제는 학자들의 경쟁에서 나아가 지식 유튜버들의 경쟁 시대다. 1차 데이터를 유의미하게 가공한 형태가 정보이며, 여러 정보를 체계화 및 일반화하여 재가공한 형태가 지식이라고 한다. 과거 인터넷을 두고 '정보의 홍수'라고 이야기했지만, 이제 인터넷에는 정보뿐 아니라 지식까지도 넘쳐난다. 정보가 벽돌이고 지식이 빌딩이라면 이제는 어떤 빌딩을 선택할 것인가, 부동산 중개업자의 역할이 지대한 시대다. 지식 역시 하나의 소비 대상으로서, 소비자들은 인터넷을 떠도는 수많은 지식 중에서도 능력 있는 중개인을 통해 취향에 맞는 맞춤형 패키지에 담긴 지식을 구매할 것이다. 게다가 지식은 빌딩보다 저렴하기까지 하니, 앎에 목마른 이들이 지닌 수요의 샘은 마를 새가 없다.




3. 제너럴 빠진 제너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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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람들이 지식을 상품으로써 구매하는 데 그토록 열정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더 각광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 사업뿐 아니라 학문의 영역에서조차 간학문적 통섭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이다. 그러니만큼, 모든 분야를 직접 하나하나 깊게 연구할 시간이 택도 없이 모자라, 지식 중개인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선별적으로 구매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처럼 제너럴리스트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는, '제너럴'이라는 단어의 모호성에 비해 훨씬 구체적인 압박이 되어 돌아오는 듯싶다. 제너럴리스트라 하면 넓고 얕은 교양을 두루 갖춘 이 정도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제너럴'의 기준조차도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매일 태권도 학원에 가는 게 하루의 주요 스케줄이었던 나에게, 요즘 초등학생들이 코딩 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평생 문과로 살아 온 지인들도 뒤늦게 컴퓨터 학과를 부전공하거나 인강 또는 학원을 끊고 있으며, 나 역시 데이터 분석 특강에 발을 담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복잡함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들 이 정도는 하니까'의 기준이 치솟으면서, '다들'의 일부가 되지 못할까 봐 극도로 불안해질 따름이다.


경쟁력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나려면 섭렵해야 한다는 '제너럴'의 기준선은 갈수록 높아지지만, 주어진 준비 시간은 턱없이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시간의 밀도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해야만 '다들'에 낄 수 있는 세상에서, 지식 중개인은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마음에 쏙 드는 패키지로 지식을 구매할 수 있게 돕는다. 나 역시 그런 그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요즘이다.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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