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는 나의 고기 - 연극 '생각은 자유'

글 입력 2022.12.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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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라의 비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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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생각의 자유> 첫인상은 고기로 된 사람 옆모습이 있는 포스터였다. ‘생각은 자유’라는 제목과 어쩐지 이질적인 느낌이라 계속 눈길이 갔다. 사람은 언제나 고기를 먹는 입장이지 그 자신이 고기가 되어 먹히는 입장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기는 식량이다. 사람은 식량을 먹어 자기 자신의 몸과 생명을 부지한다. 눈앞에 놓인 고기를 두고 우리는 살아서 풀밭을 뛰어다니는 소나 돼지, 양을 상상하지 않는다. 내가 마트에서 사 온 고기는 그저 내 입에 들어가 배를 채울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사람도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고기처럼 보이지 않을까? 식인종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문명사회에도 그런 이들은 아주 많다. <생각은 자유>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다.


연극이 시작되면 구서광의 국회의원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어 기뻐하는 이들이 보인다. 당선된 사람은 구서광 한 명이지만 그가 국회의원이 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구서환과 이우진도 자신의 일처럼 좋아한다. 구서광의 동생이자 레몬홀딩스의 펀드를 운영하는 기업인 구서환은 선거자금을 댔다. 언론인인 이우진은 구서광을 다룬 기사에서 사고로 전신화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 이사라를 헌신적으로 간병하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이름 없는 검사였던 구서광의 호감도와 인지도를 단번에 높였다.


오사라의 언니이자 구서광의 처형인 오미라 역시 이들을 찾아와 함께 축배를 든다. 그는 사채로 시작해 지금은 꽤 번듯한 기업이 된 MH그룹의 전 회장이다. 이들은 사고가 나기 전까지 MH그룹의 회장이었던 오사라가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눈다.

 

마치 단란한 가족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지만, 잠시뿐이다. ‘사건 종료 00시간 전’을 알리는 안내문이 스크린에 나타날 때마다 이들이 가진 비밀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그 시작은 병실에 누워 있던 오사라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최악의 무리들은 언제나 열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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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광과 구서환, 이우진, 오미라. 이 네 사람이 단지 구서광이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에만 협력한 것은 아니다. 과거 오미라 밑에서 일했던 구서환은 오미라와 경제적인 협력 관계이며, 언론인 이우진은 오미라를 비롯해 여러 기업과 친하게 지내며 주가조작에까지 관여한다. 얽히고설킨 이들은 서로를 돕는 중이다. 아니, 돕는다는 말보다는 이용한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물론 각자는 이용하는 주체가 자기 자신뿐이고 상대는 이용당하는 것이라 믿겠지만.


네 사람의 협력 관계는 현실에서 이미 너무 여러 번 보고 들은 이야기의 또 다른 변주다. 지금도 큰 자본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갖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기업, 이런 기업을 감시하는 대신 그 아래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먹는 언론, 이런 사태를 막을 법을 제정해야 하는 국회의원은 오히려 이들의 도움으로 그 자리에 오른다.


이 끈끈한 관계에도 끝은 있다. 오사라가 깨어나고, 구서환은 음주운전에 적발되며 네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윽고 구서환의 주가조작 의혹까지 제기된다. 이까짓 것 금방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태도도 잠시, 일이 꼬이며 의혹이 더 커질 지경에 이른다. 예민해진 네 사람은 이제 각자 살 방도를 궁리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에게 너무 깊게 관여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어제까지 서로 돕던 이들이 오늘은 적이 되어 싸우다가 밝혀지는 것은 병실에 누워 있는 오사라가 진짜 오사라가 아닌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진짜 오사라는 이미 죽었다. 구서환과 오미라의 계략이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한 건 최소한 자기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도 아니고 자기 팀의 이익을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였다.


친언니가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 애처가 이미지로 당선된 남편이 아내가 바뀐 줄도 모른 채 담당 의사와 바람을 피는 모습에서 바닥 밑에는 또 하나의 바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에게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그저 먹어 치울 고기였던 셈이다. 자신의 이익을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조차 눈앞의 고기를 먹는 것처럼 그저 자신의 것을 불리고 늘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고기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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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자유>의 특징은 특별히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꼭 정의가 아니더라도 돈 외에 다른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 없다.

 

네 사람 외에 유튜브가 한 명 등장해 이들의 비밀을 캐러 다니긴 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구서환이 주가조작으로 소위 ‘개미’라 불리는 일반 주식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이다. 게다가 방송이 끝날 때마다 이것은 ‘정의’를 위한 방송이라며 후원금 이야기를 하는 것 역시 빼놓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물론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중요성이 과열되다 못해 돈이 사람 위에 서고 세상 모든 것이 돈의 논리로만 굴러갈 때, 거기서 살아가는 존재를 과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사와 뉴스에서 익히 봤을 법한 인물상을 무대 위에서도 보며,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고 그런 자들이 사회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현실을 규탄한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그들과 또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보게 된다. 올해 들어 눈에 자주 띄었던 일반 직장인 횡령 사건들도 떠오른다.


사람이 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이용해서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한 도구로 볼 때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런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기인 곳일 테다. 자구만 사람을 고기로 만드는 곳에서 사람으로 살다가 죽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음이 남는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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