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노,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 분노에 찬 천사 [미술]

알렉상드로 카바넬의 The Fallen Angel, 세기를 뛰어넘는 예술
글 입력 2022.12.2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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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진리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이거다. 세상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다는 것

 

당대에는 천시받았던 작품이 세기를 넘어 아름다움의 극치로 찬사받는 경우도 있고, 당대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칭송받아도 현재에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예술조차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그리스·로마 신화 속 아름다움의 상징인 아프로디테 마저도 보는 이에 따라 모습이 그때그때 바뀐다는 낭설이 있지 않은가. 이처럼 아름다움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 고로 형태가 정해지지 않는 가치다. 때문에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면 사람 100명이 있으면 100가지 기준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상이하다.

 

그럼에도 절대적인 아름다움, 압도적인 미(美)를 믿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바로 알렉상드로 카바넬의 <타락 천사>. 영문명으론 The Fallen Angel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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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로 카바넬의 <타락 천사>는 전반적으로 대비감이 상당히 강한 작품이다. 짙고 검은 색감의 피사체와 엷고 푸른 색감의 배경 속 천사들.

 

마치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정 중앙, 울분에 찬 천사라는 걸 알려주듯이 강렬한 구도다.

 

때문에 우리는 작품 앞에 선 순간, 평화로운 푸른 천사들이 아닌 눈앞의 검은 천사에 이입하게 된다. 평화로움이 아니라 분노, 슬픔, 그 밖의 복잡한 감정들에 빠져들게 된단 의미다. 사람들은 알렉상드로 카바넬의 작품을 통해 실제론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날카로운 감정들을 배운다.

 

이렇게 커다란 존재감을 뿜어내는 천사를 세밀히 살펴보면 의미심장한 상징물을 몇가지 찾을 수 있다. 어린아이가 물감을 칠해놓은 듯 얼룩덜룩한 날개, 검푸른색으로 물들어가는 깃털들, 바스러져 생명력을 잃어버린 검은 장미들. 그리고 시선.

 

커다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엉망인 배경 위로 천사의 새하얀 나신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오로지, 얼굴 반쪽을 제외하면 말이다.

 

마치 선악과를 베어 물고 수치를 잊어버린 것처럼, 걸친 것 없이 그대로 드러난 강인한 나신은 오묘한 감상을 선사한다.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서사가 숨어있을 듯한 비밀스러운 기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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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점을 찍는 것은 바로 시선이다. 몰아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천사의 시선.

 

천사는 분에 못 이겨 발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하늘을 원망하듯 응시한다.

 

힘주어 핏줄과 근육이 도드라진 눈가로 선명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유추해봤을 때, 아마도 천사가 가장 들키기 싫었을 눈물이다. 자신의 연약한 면모, 분노가 아닌 슬픔이란 본질, 어쩌면 배신감에 휩싸인 인간적인 면모. 에덴 속 선악과의 존재처럼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자극하는 시선이다.

 

저 천사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무대 위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훔쳐보는 관객이 된 것처럼 형용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분이 차오른다. 동시에 참을 수 없어 겨우 토해내는 말처럼 ‘아름답다’는 감상이 떠오른다. 진득한 아름다움, 당대의 사람들도 현대의 사람들도 홀려버린 아름다움이다.

 

어떤 의미로는 ‘절대적인 미’의 존재를 믿게 할 만큼 아름다운 알렉상드로 카바넬의 <타락 천사>.

 

루시퍼의 타락을 담은 이 작품의 원천은 어쩌면 색감이나 구도, 피사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상상력과 욕망을 자극하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선악과 메타포, 그리고 타락천사 루시퍼의 소재가 아직도 칭송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일까?

 

우리가 아름답다고 일컫는 모든 것의 근원에 사실 인간의 욕망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라면, 어쩌면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욕망을 담아내는 작품, 어쩌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 어쩌면 바로 이것이 그리스·로마 신화 속 아프로디테를 욕망의 화신으로 그려낸 이유일지도 모른다.

 

한 단계 더 나아가자면,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이유도 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욕망의 조각을 좇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예술에는 욕망이 담기고, 욕망은 정제되어 예술이 된다. 그렇기에 예술은 불멸할 것이다. 사람들은 끝없이 욕망하고, 욕망을 불살라 삶을 일궈가는 존재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아름다움을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 알렉상드로 카바넬의 The Fallen Angel, 타락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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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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