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다가 알려준 나의 세상 [여행]

두려움을 넘어서 갯벌로 가다
글 입력 2022.12.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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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려움이 참 많은 사람이다.

 

남들도 흔히 두려워하는 것들부터 그렇지 않은 것까지, 정도는 천차만별이지만 이 세상에는 나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굳이 조금 부끄러운 고백을 해보자면, 얼마 전까지는 혼자서 라이터 불도 켜지 못할 정도로 유난스러운 겁쟁이였다.

 

새삼스레 뿌듯함이 느껴지는 건, 자취를 처음 시작한 올해 초에 비해 연말을 맞이한 내가 꽤나 많은 두려움을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가령 예전보다는 벌레에 무디어졌다든가, 처음보다는 칼질에 능숙해진 것 등등.

 

지극히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장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 유난히 정체되어 있는 것만 같았던 올 한 해, 비록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발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안도를 느끼게 하는 일상의 작은 성취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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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대항한 것이라면 나 자신을 보다 자랑스럽게 만드는 올해의 또 다른 도전이 있다.

 

비록 어촌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대외적으로 갯마을이라고 불리는 고향의 별칭과는 어울리지 않게 해양 생물을 몹시 두려워한다.

 

시장에서 낙지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던 몇 안 되는 유년의 또렷한 기억을 시작으로, 이십 대 초반 친구들과 처음으로 떠난 해외 여행지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생선 떼에 기겁 했던 기억은 기존의 공포 층위를 더욱 두텁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오징어를 제외하고 낙지를 닮은 바다 친구들은 먹지를 못하며, 문제의 스노클링 이후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바다에 입수하는 것에 대한 남모를 거부감이 생겼다.

 

하지만 올해의 뜻밖의 경험은, 두려움을 이유로 가까이 살면서도 단 한 번도 직접 몸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갯벌에 기꺼이 발을 들일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해양 생물에 대한 두려움을 완벽히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 길로 향하는 작은 가능성을 엿보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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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실수와 완벽한 즉흥성이 결합된 결과였다.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운전 연습을 빌미로 종종 근교 바다로 드라이브를 떠나곤 한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건 두렵지만 바다를 보는 건 좋아하니까. 더불어 고속도로는 아직 두려운 초보 운전자에게 적당한 국도를 통한 장거리 운전이 가능한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 날은 백사장이 길기로 유명한 몽산포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다만 몽산포 해변과 몽산포 항이 서로 구분된 공간이었다는 것은 우리의 계획에는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몽산포 항으로 향한 결과 긴 백사장이 아닌 썰물로 바닥을 드러낸 갯벌을 마주쳤다.

 

바다가 주는 청량한 환기를 기대한 나와 동생에게는 실망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썰물 때를 맞춘 엄마께는 그 실수가 바지락 캐기 라는 또 다른 유희가 되었다. 항구와 등대를 배경으로 몇 장 풍경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시며 차 안에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던 나는, 기다림에 지쳐 모래와 펄의 경계에 위치한 지점까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없이 조개 껍데기와 마시던 커피 잔을 가지고, 겨우 갯벌의 모양새만 갖춘 초입에서 장난스럽게 바지락을 캐는 것이 그리 즐거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작용에 못 이겨 밀물이 밀려올 때가 되어서야 겨우 자리를 떴을 정도로.

 

그 재미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해 다음 날 새벽같이 다시 갯벌로 향했으나, 물 때를 보는 방법을 착각해 물이 가득 찬 바다를 마주했다. 허탈함에 한 동안 그 자리에서 멍을 때렸던 기억은 우리 가족 사이에서 요즘도 회자되는 웃음 거리이다. 물론 그날 오후 기어코 다시 갯벌로 향해 바지락을 캐 오기는 했다.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바다이지만, 바다가 품고 있는 다채로운 모습들에 비하면 그건 그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조로운 방식으로 바다를 감상 하곤 했던 나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갯벌을 탐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심으로 자연의 신비를 이해하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더 신비로운 바다와, 이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푸른 별. 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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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거의 반 년 만에 다시 한 번 몽산포에 갯벌 체험을 다녀왔다.

 

바다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인 갯벌. 여름과 겨울이라는 정 반대의 속성의 두 계절은 그 갯벌 역시 단일한 모습만을 지닌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발이 깊이 빠지던 여름의 갯벌과는 달리, 겨울의 갯벌은 건조한 공기 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적은 점성이 이동을 용이하게 했다.

 

지난 번 방문보다 육지에서 더 먼 곳까지 이동하면서 드넓은 갯벌의 자태를 두 눈에 온전히 담아 냈다. 외관상으로는 칙칙한 진흙 땅에 불과한 이 안에, 생태의 보고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생명체가 품어져 있다니. 오랜 기억 저편 스쳐 지나갔던 배움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살아오면서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해 온 것은 분명하다. 다만 요즘 들어서 자꾸만 회의가 느껴지는 건 시험만을 위해 해 온 공부의 결과들이 과연 지식의 축적이나 삶의 지혜로 이어졌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공부의 목적은 분명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일 텐데. 세상을 공부 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세상과 분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지식은 언제나 교과서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을 뿐, 세상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지 못한 지식들은 끝내 나의 것이 되지 못한 채 허공 속에 흩어져 버린 것이다.

 

갯벌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메웠던 바다를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 이유를, 기름에 덮인 바다의 푸른 빛을 되찾기 위해 전국에서 배달 되었던 도움의 손길의 의미를 거의 두 배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배움의 목적이 결여 되었던 공부는 결국 내가 머무는 지역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마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한 때는 지루한 교훈에 불과했던 ‘백문불여일견’ 이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이 이제서야 와 닿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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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관광의 공간인 바다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 된다는 말의 의미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바지락을 캐던 중 낙지를 잡아 돌아오시는 지역 어민 두 분을 만났다. 바지락 말고는 잘 모르는 우리들과는 달리 계절과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에 친숙해 보이는 모습에서 바다와 함께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엿보았다.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저 멀리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썰물에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 됐던 것과는 달리, 밀물의 속도는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빨랐다. 방금까지 내가 서 있었던 공간이 순식간에 바다가 되자 왠지 모를 경외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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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과거에 책상에 앉았던 오랜 시간들보다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했다. 밀물과 썰물의 작용과 조수간만의 차가 어떠한 의미인지, 고기압과 저기압에 의해 변화하는 바람의 방향이 어떠한 형태인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떠한 모습을 담고 있는지를.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이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탐구하는 것이 너무나 가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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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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