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말 결산 플레이리스트가 말해주는 나의 2022년 [음악]

올 한 해 당신이 즐겨들은 음악은?
글 입력 2022.12.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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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가장 밀접한 예술은 건축과 음악, 이 두 가지라고 조심스레 주장한다. 건축은 생활의 물리적 배경이 되는 공간 예술로써 사람의 신체와 생활 반경을 껴안기 때문에, 그리고 음악은 일상적으로 즐기기 용이한 청각 위주의 시간 예술로써 언제나 삶의 한 모서리와 맞닿은 채이기 때문에 그렇다.


두 예술 모두 삶과 지극히 가깝지만 향유 방식은 정반대다. 건축은 소수의 작품을 오랜 기간 누리는 것이고, 음악은 (청취 스타일이나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중적으로는) 수많은 작품을 짧은 시간, 여러 번 반복해 만끽하는 것이다. 건축이 일정 기간의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삶을 보여줄 때, 음악은 쉼 없이 변모하는 순간적인 삶을 보여준다.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맞춰 듣는 게 음악이다. 그러니 삶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음악으로 하는 연말 결산



한 해의 끝자락이 되면 여러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이 ‘연말 결산’ 보고서를 보내준다. 음악 플랫폼의 연말 결산은 지루한 서류가 아니라, 해당 유저가 일 년 동안 어떤 음악을, 어떤 아티스트를, 어떤 장르를 많이 들었는지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일 년 동안의 내 음악 취향을 훑어볼 수 있어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이 소소한 이벤트를 기다린다.


내가 올해 들은 노래의 집합은 단순한 플레이리스트가 아니다. 내가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리게 하는 단서다. 본인이 어떤 노래를 많이 들었는지 굳이 통계를 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변은 수시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이변이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다. 연말 결산 플레이리스트는 나조차 잊었던 내 일 년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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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시로, 작년 연말 결산에 따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5명 중 하나는 음악 감독 토마스 뉴먼이었다. 내가 토마스 뉴먼을 정말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는 아니라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더듬어본 후에는 그 연말 결산의 정확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에는 학교에서 여러 일을 맡느라 과제에 파묻혀 살았고, 나는 과제를 할 때는 가사가 없는 노래만 듣는 편이었다. 그래서 뉴먼이 음악 감독을 맡았던 영화 <1917>(2020)과 <아메리칸 뷰티>(2000)의 사운드트랙을 주야장천 들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제 토마스 뉴먼으로 가득한 2021년의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과제 더미가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달의 첫 번째 날에는 2022년의 연말 결산 보고서가 날아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스트리밍 플랫폼을 예년보다 적게 사용했던 터라 올해만큼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반박할 수 없이 명쾌한 연말 결산이라 꽤 놀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3위부터 1위까지를 보면 내 2022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코로나를 이기고 돌아온 내한 콘서트, 잭 화이트


 

코로나바이러스가 병들게 한 것은 정말 많은데, 그중 하나는 외국 아티스트들의 내한 콘서트다. 2019년 한 해에만 10개가 넘는 내한 콘서트를 봤던 나는 팬데믹 동안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한 번도 보지 못해 서러웠다. 국내 아티스트들의 콘서트는 작게나마 열리기도 했지만, 출입국을 거쳐야 하는 외국 아티스트들을 볼 날은 기약 없이 미뤄지는 중이었다.


그러다 2022년에 들어서면서, 내한 콘서트는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내가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간 콘서트는 미국의 솔로 아티스트, 잭 화이트의 단독 공연이다. 종종 찾아 듣긴 해도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워낙 전설적인 아티스트인지라 꼭 라이브 관람을 하고 싶어 티켓을 사버렸다. 


마스크를 끼고 콘서트를 보면 불편할 것 같다는 걱정도 잠시, 오랜만에 공연장을 방문하니 내가 3년 만에 콘서트를, 그것도 잭 화이트의 공연을 본다는 사실이 실감 나 대기 시간에도 마음이 들떴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하고 의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부터는 정신없이 놀았다.

 

 


 

 

두 시간을 꽉 채워 공연해준 덕에 꼭 듣고 싶었던 노래는 모두 들을 수 있었고, 유명세에 비해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곡 도 현장에서 만나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새로운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전율이 일어서 관객들과 함께 뛰어노는 것도 잊고 가만히 서 감탄만 하기도 했다. 콘서트에 가지 못하며 지냈던 긴 시간이 전부 이 공연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을 정도로,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물론이고, 며칠 후까지도 그 여운에 젖어 사느라 공연에서 해주었던 노래들을 계속 반복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콘서트 관람을 무지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음원으로는 전부 담지 못하는 목소리와 악기들의 크고 작은 소리, 현장감이 주는 돌발성,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합쳐져 공연을 완성한다.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잭 화이트의 노래는,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다시 얻은 콘서트를 의미한다.

 

 

 

가사 번역에서 시작한 ‘덕질 대장정’, 바스틸



바스틸은 작년과 살짝 걸쳐 있다. 작년부터 신곡을 하나씩 공개하며 앨범 발표를 준비하던 영국 록밴드 바스틸은 작년 여름 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가사 번역을 취미로 하는 나는 이 곡을 번역하다가 ****dreaming of electric sheep****라는, 뜻을 알 수 없는 가사와 마주쳤다. 알아보니 이는 필립 K. 딕의 SF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를 모티브로 한 문장이었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서 작년 말에 그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 있고 그게 내가 항상 보려고 벼르면서도 미루기만 하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라는 걸 알게 되어 올해 초에는 그 영화를 보았다.

 

 


 

 

영화까지 본 후에는 이 가사 번역에서 시작한 ‘덕질’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었고 오히려 ‘덕질 대장정’의 시작에 가까웠는데, <블레이드 러너>를 제작한 리들리 스콧 감독에 관심이 생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감독의 작품을 몇 가지 본 후에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건만, 이번에는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2017)가 있음을 알게 되어 그걸 봐야 했고 거기서는 메인 디렉터도 아니고 촬영 감독인 로저 디킨스에게 빠지는 바람에 그가 촬영했던 유명한 작품들을 다시 한번 감상했다. 


억지라면 억지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이 과정이 아주 매끄러운 일련의 흐름처럼 보인다. 그래서 로저 디킨스가 촬영한 영화를 찾아보다가도, ‘이 모든 게 바스틸 때문이라니’라는 생각에 헛웃음을 짓다가 또다시 바스틸의 앨범을 들으러 가곤 한다.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바스틸의 노래는, 끝이 보이지 않게 즐긴 문화생활을 의미한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 오아시스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1위의 주인은 무조건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딱히 듣고 싶은 노래가 없으면 일단 오아시스를 틀어보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노래가 맘에 안 드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국 밴드 음악을 듣기 시작한 계기가 오아시스인지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작년까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 부동의 1위가 좀 재미없는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2022년의 나에게는 약간 다른 의미를 전달했다. 올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진로를 갑자기 바꾸고, 취미 학원을 세 개나 다니고, 학교 밖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크고 작은 도전을 하면서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괜한 일을 벌이는 것 같아 그냥 하던 거나 계속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불쑥불쑥 치밀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굳건히 1위를 차지하는 오아시스의 존재는 당연했는데, 문득 그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계속 변하고 있는 나의 어느 한 부분만큼은 한결같다는 것을 오아시스가 증명하는 듯했다. 내가 단편적으로, 표면적으로는 수시로 요동칠지라도 그 중심의 나는 여전하다. 


이 생각을 하면서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만약 혼란이 또다시 찾아온다면 그때는 걱정 없이 마음껏 혼란에 빠질 생각이다. 나 자신에게 혼란을 느끼더라도 나를 위로하고 안정시켜줄 오아시스의 노래가 항상 저 자리에 있을 테니까.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오아시스의 노래는, 나를 향한 믿음이다.

 

 

 

지금부터 기다리는 2023년의 연말 결산 플레이리스트



정말 웃긴 것은, 아직 2023년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내년 이맘때 받아볼 2023년의 플레이리스트가 벌써 궁금하다는 사실이다. 이 궁금증에는 어떤 음악이 새로 나올 것인지에 관한 호기심도 포함되지만, 그보다는 ‘내년에는 내가 어떤 한 해를 보낼까’라는 기대가 더 크게 작용한다. 나의 2022년은 이렇게 들리는데, 나의 2023년은 어떻게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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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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