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션과 키오스크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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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송길영 지음 / 북스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첫 번째 문장은 책에 인용된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 ’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not evenly distributed.’의 일부이고, 두 번째 문장은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캐내는 일을 20년간 해온 저자 송길영의 통찰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두 문장을 강조한다. 두 이야기 가운데 변화가 있다. ‘일어날 일’과 미래는 사람들의 욕망이 합의되는 지점에서 빅뱅처럼 터진다. 그 욕망은 개개인의 선호와 원하는 일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변화의 시그널은 관찰하는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다. 따라서 미래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이 아니다.
노션과 키오스크
작년 초부터 키오스크를 세워두는 매장이 늘었다. 엄마의 직장 근처에도 키오스크 매장이 많아졌다. 엄마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카페에서 주문한 일화를 털어놨는데 요지는 키오스크 주문이 어렵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카페에서 누군가 취소하지 않고 눌러둔 옵션을 보지 못하고 주문했다. 받고 보니 라떼에 커다란 휘핑크림이 얹어 나왔다.
엄마는 한동안 이런 일화를 털어놨다. 자기가 버벅거리면 뒷 사람들이 기다리는 데 따가운 눈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불안하고,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먼저 양보하고 나중에 하게 되었다고. 또 직원들이 불친절해졌다고도 했다. 직접 주문하려고 하면 바쁘지 않은데도 키오스크로 주문하라고 한다든지, 포장 버튼을 누르지 못해 캐리어를 요청할 때도 종이 캐리어를 툭 던져주며 알아서 포장하라는 식이더라는 것이다. 직접 겪은 게 아니라 나는 잘 몰라도 엄마에게 있어 키오스크의 등장은 편리하고 신속한 서비스가 아니라 부정적 서비스로 다가온 것만은 확실했다.
키오스크 사용에 대한 어려움은 비단 우리 엄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상업시설의 무인 단말기 사용은 팬데믹 이후 변화한 일상의 모습 중 하나였고, 이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엄마는 신문물에 대한 수용도가 낮은 편이라 이것 또한 시간이 좀 걸릴 거로 생각했다. 한편으론 정말 키오스크 사용법이 어렵다기 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낯섦이 어렵다는 생각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부담을 낮추기 위한 멘트를 반복했다.
“엄마. 키오스크는 어려운 게 아니야. 생긴 게 생소해서 그래. 천천히 보면 다 알아볼 수 있어. 원하는 버튼이 없는 것 같으면 전체를 훑어봐.”
그러나 내 말만으로는 엄마의 키오스크 적응이 수월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도 꽤 되었고, 태블릿 PC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졌기에 그간 누적되었던 사용법을 기반으로 키오스크의 알고리즘을 이해한다. 나도 그랬기에 엄마의 어려움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음 해결책으로는 함께 어딘가에 갈 때마다 옆에서 사용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몇 차례 다녀본 후에야 엄마가 어려움을 느끼는 핵심적인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아이콘이었다. 아이콘은 기호다. 그리고 기호는 이미지다. 어떤 개념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이미지가 기호다. 이제는 수많은 기호가 우리 일상 곳곳에 녹아있다. 새로운 기호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즉 이런 이미지에 대한 이해나 데이터가 없으면 기호는 외국어만큼이나 어려운 문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쉬운 정보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언어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비슷한 예로 엄마가 카카오톡 아이콘을 어려워하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검색을 뜻하는 돋보기, 편집기능을 뜻하는 마술봉 모양의 아이콘, 환경설정을 뜻하는 톱니바퀴, 공유와 내려받기를 뜻하는 화살표 방향 등 기호에 대한 이해가 디지털 인터페이스 이해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설명방식을 바꾸어 이미지에 대한 설명을 충실히 했다.
그리고 이제 엄마는 스타벅스를 애용한다. 유일하게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대면으로 대화해서 좋다고.
대면 주문은 비대면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은 소수만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아닐까.
그 시기쯤 나는 NOTION이라는 생산성 앱을 사용하고 있었다. 노션은 학습 데이터베이스 정리용으로, 워크 스페이스로, 포트폴리오로, 일상생활 관리용 등 다양한 용도로 정보를 사용자화할 수 있는 툴을 갖추고 있다. 나도 설치하고 이것저것 만져보기 시작했다. 흰색 도화지 같은 무의 공간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다. 다른 사람의 레퍼런스를 몇 개 봤는데 다들 어쩜 그렇게 깔끔하고 아름답게 커스터마이징했는지. 용도부터 디자인까지 자신의 필요와 취향에 맞게 꾸며놓은 모습이었다. 특히 이미지와 영상, 각종 도구를 일목요연하게 구성해놓은 게 좋아 보였다. ‘나도 저렇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활활 불타올라 이것저것 눌러보며 배우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웬걸. 예쁘게 꾸미는 것은 커녕 기본 조작도 익숙지 않았다. ‘이제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려면 나도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사용법을 배우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차례 시도하다가 결국 나는 멋지게 꾸미는 것은 포기하고 정리만 잘하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몇 주 전 있었던 엄마의 키오스크 적응기가 떠오르면서 지금 상황과 오버랩되었다.
‘어라 이거 신문물 배우기를 포기하는 사람의 적응 과정과 비슷하잖아.’
위기감을 느꼈다. 배우는 것에 대한 태도는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개인의 속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지식이 축적된다고 착각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렇기에 알고 모르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수용성’이다. 이처럼 저자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세상은 수용성이 높아진 세상과도 같다고 말한다.
“시스템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같은 변화 앞에서도 사람마다 수용성이 다릅니다. 서로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환경 변화가 상수라면 우리의 욕망은 변수가 되기 때문에 같은 변화라도 그 결과는 각기 다른 양태로 나오는 것입니다. 변화에 맞는 새로운 규칙을 합의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기술에 대한 수용성이 있으면 생존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 다른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술의 수용성이 생존과 연결된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를 배우지 않을 도리가 없죠. 그래서 누구든 무엇이든 배우게 됩니다.”
나는 이 부분에 매우 공감했고, 앞서 언급한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행히 우리는 낯선 시스템이 있더라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익숙해진다. 여전히 나는 노션을 아름답게 사용하지 못하지만, 큰 불편함을 겪지는 않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적응했고 이제는 전과 같은 어려움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당시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은 낯선 것에 적응하는 감정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수용력을 마주하고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이야기에서 좀 더 나아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산업에서 어떠한 형태로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설명한다.
당신은 변화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나요?
“이 모든 변화를 여러분은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요? 여러분의 감수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삶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질 테고, 몸담은 산업의 전망도 달라질 것입니다. 강아지에게 안전벨트가 웬 말이냐며 사람을 위한 안전벨트만 만든다면 시장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매년 태어나는 아이가 30만 명도 안 되니까요.”
전반부의 주요한 키워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의 시스템과 그것에 반응하는 개인의 수용력이다. 우리가 욕망의 작은 시그널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시그널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많은 매체에서 ‘뉴노멀’을 이야기한다. 전과는 다른 새로운 기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경제 질서와 산업이 바뀌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바뀐다. 동시에 감수성도 변화한다. 조금 더 세심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람들의 욕구와 생활상을 들여보면 차별점을 만들 수 있다.
변화에 대한 수용력은 감수성과 디테일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민감한 감수성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은 산업의 수익과 직결될 수 있다. 위에서 예시로 들었던 강아지를 위한 안전벨트가 그렇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구의 삶과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길 수 있다. 관찰을 통해 포착하는 정보는 상대에게 줄 수 있는 배려의 크기를 좌우한다. 그런 디테일한 감수성과 행동이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 것이다.
“변화는 중립적이어서 그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준비를 해놨으면 기회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될 뿐입니다.”
JUST DO IT 아니고 JUST DON’T DO IT
Just do it 은 나이키의 오랜 슬로건이다. 나이키는 러닝화를 신고 그냥 뛰어버리는 것처럼 다른 활동에서도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해보라고 얘기한다. 일단 시작하면 실패든 성공이든 겪게 될 것이고, 그것이 나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그냥 하지 말라고. 왜 우리는 그냥 하면 안 될까?
수용성이 높아진 세계에서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나가려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좋은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평타’를 정의하는 세상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법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그냥 할 수 없다.
<그냥 하지 말라>는 3부에서 4부로 진행될 수록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수많은 미래를 흥미롭게 제시한다. 읽다 보면 빠른 사회에 대한 고민, 개인의 욕망, 세대 간의 갈등 등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하며 몰두했던 그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가 하나씩 풀린다.
트렌드건 유행이건 잠깐 넋 놓으면 따라가기 어려운 시대다. 모든 유행과 변화, 삶의 양식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지 못하면 작가의 말처럼 주도적으로 살기 어려워진다. 나 또한 스스로가 편안한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든 인생의 주도권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논리적인 구성과 흥미로운 예시덕에 흡입력 있는 독서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1-2부에서 쌓아 올린 빅데이터를 통해 바라본 사람들의 심리와 소비 형태의 변화가 3-4부에 대한 이해도를 확 올려 놓을 수 있던 것 같다. 결론만 놓고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 저자의 인사이트가 빛나는 문장이 많다. 그래서 보석 같은 문장을 캐며 읽는 재미도 있다.
그렇게 끝까지 줄을 쳐가며 꼼꼼히 읽은 후 다시 앞 장으로 돌아갔다. 가장 빛나던 문장을 펼쳤다.
"그러니 바라건대, 욕망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애초에 멈출 수도 없습니다. 욕망이란 나의 존재가 좀 더 안정되게 유지되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에서, 내가 소멸한 후에도 나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본능에서, 나의 자아가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에게 존중받고 영향력을 가지길 바라는 무한한 욕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니까요. 우린 결코 욕망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욕망하고, 원하는 것을 시도하십시오. 지금 시작하면,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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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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