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만화]

웹툰 <집이 없어>로 바라보는 어른이 만든 사회
글 입력 2022.11.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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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WEBTOON

 

 

집은 상징적이다.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고,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장소이며, 때때로 사람들의 계급을 나누는 곳이다. 해가 지고 깜깜한 밤이 드리울 때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곧 바로 침대에 누워 내일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체력을 충전한다. 지나가다 마주하는 고층 아파트에 시선을 두며 ‘언젠가는 저렇게 높은 곳에 사리라’며 다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안식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는 집이 만약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집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추위나 더위를 견디고 길거리에서 자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따뜻함으로 다독여 줄 집이 없다는 것은 미궁에 빠져 원하지 않는 모험을 하게 만든다.


웹툰 <집이 없어>는 불안함으로 가득찬 집에서 빠져나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웹툰이다. 누군가는 세상보다 따뜻하다고 여기는 집이 비탈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삶을 구성해나갈 힘을 얻는지 이 웹툰을 통해 정답을 얻을 수 있다.

 

 

 

집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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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WEBTOON

 

 

제목부터 직설적인 이 작품은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로 유명한 작가 와난의 작품이다. 기존 작품에서도 성소수자를 주제로 잡으며 2000년 후반에 기획되던 웹툰에서 볼 수 없던 방향성을 내세웠다. 사회적 시각을 바꾸는 것에 일조하던 작가는 또 다른 사회의 문을 두드리는 웹툰 <집이 없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웹툰은 여섯 명의 메인 주인공이 있지만, 길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실상을 명확히 나타내는 세 명의 주인공 해준, 은영, 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고자 한다.


주인공에게 집이 없는 이유는 각자 다양하다. 해준은 귀신을 보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사람 온기는 없고 귀신과 관련된 용품이 가득한 집으로부터 도망쳤으며, 은영은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 부모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 비행 청소년이 되어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혼 가정인 마리는 어머니가 없으니 유일한 여자인 마리가 밥을 차려야 한다는 가족들의 구시대적인 가족관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기숙사로 도피를 오게 된다.


세 명의 상황만 보아도 현재 사회의 문제점을 엿볼 수 있다. 부모님의 사망으로 고아가 되거나 가정폭력과 같은 범죄 상황에 청소년이 쉽게 노출될 수 있지만, 정작 어린 피해자를 보호해 줄 공간이 없다.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집’이라는 존재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지만,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학생들에게서 집을 빼앗는다. ‘학생’은 ‘학생답게’ 자라야 한다는 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아침마다 이어지지만 정작 ‘학생’다울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게 만든다.


평생을 보호받지 못한 채로 살아가며 마음이 문드러진 학생들이 찾은 안식처는 ‘기숙사’였다. 평범한 기숙사도 아니고 귀신이 나온다는 무서운 소문을 가진 기숙사지만, ‘집’보다 무서울 게 없었던 사회의 피해자들은 기숙사로 입사한다. 이러한 기숙사를 오게 되는 과정은 오로지 피해자들의 선택이었다. 인도해 주는 어른이 한 명 존재하지 않아 무서움을 무릎 쓰고도 발을 딛을 수밖에 없었다.


웹툰 속 안타까운 주인공들의 사연은 주변에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두려운 상황을 어렵지 않게 이겨냈을 거라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주변에 이들을 도와주는 어른은 한 명도 없었다. 어른에게 상처 받고 어른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밤늦게 지하철역 주변만 걸어도 길거리를 배회하는 비행 청소년들이 많지만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그 상황을 피하려 한다. 그들이 가진 집에 대한 사연은 궁금하지 않고 피하기 바쁘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에게 말은 못 건네더라도 경찰서나 관련 기관에 전화를 해 인계를 했더라면 비행 청소년이 지내는 내일의 하루는 오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이 웹툰은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방식을 보여주며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하도록 만든다. 어른으로 살아오며 무관심했던 결과가 학생들에게 무참하게 돌아오는 과정은 피해자가 집을 떠나야 할 정도로 악랄하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힘겹게 안정적인 장소를 떠나는 것은 그 장소가 괴로워서임을 인지하지 못 하고 비판만 한다. 누군가에게는 ‘집’이 두려움의 장소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늦은 시간에도 집에 가지 않고 나쁜 짓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사회의 시선은 피해자들을 더욱 따갑게 만들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온몸으로 사회를 저항하는데도 모르고 지나친 우리가 가해자일 수 있음을 고민하도록 만든다.

 

 

 

기숙사도 집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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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WEBTOON

 

 

기숙사를 살았던 때를 생각하면 좋았던 기억만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대개 그렇듯 가족과 사는 것도 가끔은 힘든데 모르는 이들과 마주하는 공동체 생활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공동 샤워실을 쓰는 기숙사는 당장 씻고 싶어도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골라서 씻어야만 했고, 룸메이트의 코골이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억지로 들으며 살아야 했다. 심지어 주인공들이 사는 곳은 귀신이 나온다는 아주 허름한 건물의 구 기숙사였다.


어찌 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을 수 있는 기숙사에 제 발로 들어온 주인공들의 사유는 하나 같이 똑같았다. 그들에겐 집이 없었다. 주인공들이 노숙자라는 말은 아니다.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가족 모두가 정감이 넘치고 서로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집’을 만들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함께 구 기숙사에 사는 은영과 해준은 앙숙이다. 해준이 집을 나가기 위해 모은 37만원을 은영이 훔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은영은 사교성 좋고 원만한 성격처럼 보이기 위해 가식으로 자신을 무장하지만 해준에게만 나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중인격자 면모를 해준이 곱게 바라볼 수 없었다. 은영이 아니더라도 부모를 잃은 고아로 불우한 삶을 산 해준에게 은영의 등장은 캐릭터를 궁지로 몰아가며 괴롭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서로의 오해를 풀고 비슷하지만 다른 아픔을 가진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모습들은 그들에게 기숙사가 ‘집’이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허나, 살아오던 습관을 버릴 수는 없다는 듯 은영의 날카롭고 제멋대로인 성격은 해준을 상처받게 만들기도 한다. 아픈 시간을 지나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며 친구가 되는 은영의 성장은 주인공들의 삶을 응원하게 만들고 기숙사도 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집에서 가족을 마주하는 것보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 자신의 방식대로 살던 생활을 고쳐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고, 가족보다 서로를 사랑해 줄 친구를 찾을 수 있는 기숙사는 안식처라는 설명이 충분했다.


또한, 우리가 살아오던 삶을 반성을 하게 만든다. 알게 모르게 받아온 상처들이 아물지 못한 것을 망각하고 살아오는 독자들에게 주인공의 우정과 성장으로 그 아픔을 치유하도록 만든다. 집이 없는 사람들도 각자의 공간에서 잘 살아가고, 살아남고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집이 없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강요하지 않는, 강요받지 않는.


 

집이 없는 학생들은 어른에게 강요하지 않고, 강요받지 않으며 서로 부딪히며 성장한다. 스무살이 되지 못 한 어리숙함은 때로는 거칠어서 쉽게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기숙사가 집이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외롭게 만드는 가족보다 더 끈끈하고 애틋한 우정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어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을 인도해 줄 사람이 없었기에 백 미터면 갈 거리를 천 미터로 돌아서 갔기에 어른은 어린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사회에 먼저 나아간 어른들은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강요와 불필요한 강요는 무엇인지 고뇌하며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린 이들을 보호해야 마땅하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 명확히 알려 주는 이 웹툰은 학생들의 공감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무관심을 모토로 살아가는 어른들의 필수 웹툰이다. 가장 안락한 공간에서 이 웹툰을 보며 삶을 돌아보는 경험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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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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