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을까.
사전적 정의의 우울은 반성과 공상이 따르는 가벼운 슬픔이라고 한다. 어느 누군가는 가벼운 슬픔이라는 말에 반기를 들 수 있지만, 나는 가벼운 슬픔이라는 설명에 공감한다. 단지 그 가벼운 슬픔이 얼마나 지속하는지에 따라 우울증인지 아니면 우울을 느끼는 건지 나뉜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우울은 가벼운 슬픔에 가벼운 반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온종일 우울한 건 아니고,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 때는 웃다가 여느 사람과 같이 잘하고 싶은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을 때 우울을 느낀다.
이런 우울은 개강과 동시에 심해져서 종강 전까지는 나를 힘들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찾은 우울을 이겨내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즐거운 영상이나 재밌는 드라마, 영화를 보면 우울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도했으나, ‘저 영상 속 주인공은 좋겠다. 나처럼 힘들지도 않고.’와 같은 자기연민만 끌어냈다.
그렇다고 슬픈 노래나 슬픈 영상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들만큼 슬프지도 않은데 혼자 지금 자기연민에 빠져서 신파극 찍고 있나 보네.’라는 자기혐오만 얻었다. 기쁜 걸 봐도 내가 기쁘지 않기 때문에 기쁜 사람들이 부러워서 우울하고, 슬픈 걸 봐도 내가 슬픈데 그만큼 슬픈지 모르겠기 때문에 우울했다.
결국 내가 찾은 해결책은 그냥 두는 것이다. 내가 지금 슬프면 슬퍼하고 우울하면 우울해하면 된다. 나는 어렸을 때 김연아의 책에서 한 구절을 봤는데, 그걸 아직도 내 인생에서 쉬어가야 할 때를 정하는 지침으로 삼고 있다.
“빙판 위에 올라서 속으로는 움직여야 한다고 몇천 번을 외쳤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처럼 슬프지만 해야 하는 경우는 울면서 하면 된다. 정말 눈물을 흘리며 기한에 맞춰 하다 보면 어느샌가 다시 할 힘을 얻는다. 그렇게 다시 힘을 얻어 하다가 지치면 또 울면서 하고, 그러다 다시 힘을 얻고 그러다 종강을 맞이하면 된다.
물론 그러면 부작용이 있긴 하다. 저녁에 잠을 잘 못 잔다. 요즘 현대인들 특징이 새벽에서야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새벽녘에 잠드는 것처럼, 나 역시 울면서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이대로 잠들기에는 억울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새벽까지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재밌는 거 없나 계속 찾다가 다음 일정을 위해 억지로 잠이 든다.
어렸을 때는 우울해지면 무언가 다른 걸 하고 감정을 다시 돌려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당연히 우울이란 감정은 기본 감정이 아닌 특정한 상황에 갖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그리고 주변을 볼수록 사실 기본 감정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기쁘면서 우울하고 아픈 날이 기쁜 날보다 많다는 걸 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우울해지고 내가 싫어지면 그냥 우울해하고 나를 싫어한다. 근데 중요한 점은 그냥 우울해하고 싫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우울하고 싫어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감정과 상황이 생각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어떤 감정이나 상황 때문에 힘들다면, 그래서 벗어나고 싶다면 감정은 그대로 둔 채로 생각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해보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감정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혹은 몸이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과감히 쉬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아직까지 살면서 후자의 경우가 온 적이 없어서 쉬지 않고 있지만, 만약 나에게 김연아 선수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다 던지고 쉴 거다.
혹시 우울을 이기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꼭 공유해주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해야 하는 일을 기분 좋게 하면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