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끝은 곧 시작이다. 가수 '윤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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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년배라면 노래방에서 무조건 불러봤을 노래가 있다. 가수 윤하의 '비밀번호 486'이나 '혜성'이 그 예이다. 나의 추억 속 윤하의 모습은 피아노를 치며 락적인 노래를 부르는, 희망찬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는 한 소녀였다.
(윤하 'END THEORY' , melon)
지난 해 11월, 윤하는 약 4년 만에 한국에서 정규 6집을 발매하였다. 앨범의 이름은 'END THEORY'이다. 앨범의 곡들은 천천히 살펴보면 유독 눈에 띄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모든 곡들이 지구와 우주를 테마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3월엔 정규 6집의 확장판으로 끝을 끝 맺을 마지막 이야기인 리패키지 앨범 'END THEORY : Final Edition'을 발매하였다. 이전 정규 앨범에서 '사별', '사건의 지평선', 'black hole'의 세 곡을 더하였으며 동시에 트랙리스트의 순서 또한 변화하였다.
('END THEORY' 트랙리스트, c9엔터테인먼트)
('END THEORY:Final Edition' 트랙리스트, c9엔터테인먼트)
'END THEORY'에서는 'P.R.R.W'로 앨범을 시작하며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과 겸허히 받아들임을 웅장한 사운드로 알렸으며 'Savior'을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두어 끝에 이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반면, 리패키지 'END THEORY:Final Edition'에서는 '오르트구름'을 시작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한계 없는 도전을 노래했으며 '잘지내'를 마지막 곡으로 두어 모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노래하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윤하는 지난 콘서트에서 리패키지 앨범의 트랙 순서를 바꾼 것 또한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 의도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면서 트랙리스트를 순서대로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끝들을 노래해본다, "END THEORY"
딛고 지내온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정확히는, 사랑하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시간이나 사람이나 감정의 형태로 남아있다.
더 이상의 시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주어진 시간이 얼만큼 남았는지는 모른다.
너와 내가 지나온 모든 것들이 우리를 만들었고, 그것은 대화의 주제로 이따금씩 돌아 볼 수 있겠지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서로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이해의 기반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선택한 대로 살아간다. 설령, 선택이 정해져 있더라도.
모든 선택은 고민의 끝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끝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시간을 일단락한다.
모든 탄생은 끝에서 시작된다. 예외는 없도록 설계되어있다.
- 'END THEORY' 앨범 소개 中
윤하는 'END THEORY'의 앨범 소개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임을 노래하는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무언가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비가역적인 시간의 끝, 계획의 끝, 태양계의 끝, 물 처럼 유연한 끝, 인연의 끝, 눅눅한 날들의 끝, 지구의 끝, 나의 마지막 끝처럼 말이다.
한 잡지 인터뷰에서 윤하는 코로나-19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나날 중 전쟁 속에서도 평화의 노래를 부르듯이 위로가 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끝에 대해 고민하여야 했으며 이런 이유로 '끝'을 앨범의 주제로 삼았다고 말하였다.
윤하에게 '끝'은 곧 '희망'이라는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앨범의 노래를 듣다 보면 'END THEORY'의 테마를 지구와 우주로 잡은 건 필연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빅뱅이라 불리는 우주의 대폭발로 빅뱅 이전의 우주는 끝을 맺었고 지금의 우주는 새로이 시작되었다. 윤하의 앨범 또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끝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껍질을 깨뜨려버리자. 두려움은 이제 거둬, 오로지 나를 믿어. 지금이 바로 time to fly" - 오르트구름 中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윤하의 리패키지 앨범 'END THEORY:Final Edition'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곡이 있는데 바로 '사건의 지평선'이다. 이 곡은 요즘 역주행을 하며 차트 상위권에 들고 있으며 락적인 요소와 활기찬 윤하의 목소리로 마치 그녀의 데뷔 초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윤하 '사건의 지평선'MV)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곡을 들으며 과학적 용어로서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이해하면 더욱 재밌을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그 너머의 관찰자와 상호작용할 수 없는 시공간 경계면이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 빛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다시 빠져나오지 못 하는데 이 블랙홀의 바깥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이라 말한다. 윤하는 넘을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을 이별에 비유하여 노래를 불렀다고 하였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노력은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라서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 '사건의 지평선' 中
'사건의 지평선' 속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우리가 함께 했던 찬란한 모든 순간들은 이젠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흘러가 현재는 희미해지겠지만, 그 시간 속 과거의 우리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지난 기억은 지난 것, 앞으로는 펼쳐진 것. 그렇기에 우리는 '산뜻하게' 안녕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윤하가 사건의 지평선에서 이야기하는 멜로디 라인을 따라 흘러가면 노래 속에 내 이야기를 대입해 듣게 된다. 좋아했던 무언가를 떠나보낼 때는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그 무언가가 사랑했던 사람이든, 추억이든, 오랜 꿈이든 말이다. 계속해서 좋아하고자 하는 노력만으로는 이 마음을 다시 세울 수 없음을 깨달을 때 가끔 우린 좌절하고, 이런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결국 '노력'만이 정답이 아니고 '새로운 도전'이 열려있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도 '산뜻한 안녕'을 그 무언가에게 건넬 수 있지 않을까?
문을 열면 들리던 목소리
너로 인해 변해있던 따뜻한 공기
여전히 자신 없지만 안녕히
- '사건의 지평선' 中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졸업식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지나온 시간과 지나가는 시간이 공존하는 그 이벤트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끝과 시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루 일과가 빽빽하게 정해져있던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수많은 무질서와 혼란이 존재하고, 정해진 룰 속에서 서로만을 의지했던 그 시간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간다. 각자의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며 우린 자신 없지만 그럼에도 웃으며 서로에게 안녕을 보낸다. 아스라이 하얀 빛 속엔 우리의 푸르른 청춘을 담아둔 채, 힘이 들면 옅어진 기억들을 꺼내보며 숨 쉬고, 그럼에도 우린 나아가야 하니 그리워도 안녕.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 '사건의 지평선' 中
'사건의 지평선'은 단순 사랑 노래로 마무리짓기엔 아쉽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 끝과 시작을 노래해보면 다가오는 의미가 또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겐 어떠한 끝이 있었고, 어떠한 끝이 기다리고 있을까?
끝은 곧 시작이라는 이 자연스러운 섭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리움에도 찬란하게 안녕을 고할 수 있을 것이다.
[안영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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