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투스데이 재즈 [사람]

글 입력 2022.11.0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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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스데이 재즈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로캉탱이 남은 부조리의 생을 살아갈 힌트를 얻은 것이 하나의 노래에서였다면, 옅게 깔린 지직거림과 세상에 이미 없거나 혹은 아주 나이가 들었을 재즈 가수의 노랫소리는 자러 가려는 이의 팔목을 붙잡는다. 비쩍 마른 마음을 살로 채우듯 풍만한 음률을 그리며.

 

Solitude은 Billie Holiday, Misty는 Ella Fitzerald, Cry me a river은 Julie London의 버전을 듣는다. 그리고도 계속되는 째즈 그리고 또 째즈... 재즈 가수의 목소리는 노란 달에서 불리운 것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방송된 것처럼, 아득한 인상을 준다.

 

고요 속에 드리우는 트럼본소리는 날카로운 선율의 테두리가 지워져 흐리게 된 듯 영영 잡을 수 없는 문밖의 실체, 달에서의 둥실대는 첫걸음과 닮아있다. 단순히 루이 암스트롱과 닐 암스트롱을 섞은 것일 수도 있겠다만 이런 인식의 놀음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투스데이, 재즈를 들으며 검은 양복을 입고 빨간 코사지를 단 클럽이 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생에 대한 굿-바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물은 말할 수 없이 깨끗하고 달다. 몇 년만에 샤워를 해본 사람처럼, 물줄기가 하나의 구원이 되었다. 새로 태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새로 죽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밤이 있지 않나?

 

어떤 밤인가 하면, 모든 그림자가 칠흑같이 검고 큼직한 날, 그리고 그런 그림자들에 내 그림자 하나를 더하고 나서, 그 그림자가 얼마나 거대한지 놀라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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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가 하나의 구원이 된 것은 감각의 날이 도래한 것이다. 누군가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라고도 하던데, 모든 것은 신비로워지고 더없이 가까우면서도 더없이 멀다.

 

바다가 언젠가 세상의 첫날부터 지금까지 이리도 철썩댔다고 생각하여 이 물의 형태에 느껴지는 경외감처럼,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진다. 아, 이리도 큼직한 그림자가 베인다니, 새로운 얼굴들을 내미는 두렵고도 수줍은 밤이다. 이 상태로라면 남은 생을 사랑만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도취감이 든다.

 

그러나 진실은 내 손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아침이 되면 걷히고 재즈는 어느순간 그 풍만함으로 날 짓누른다. 내가 잘 아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씁쓸함은 없다. 도리어 두려움과 경탄으로 목을 적신다. 광기 어린 사람처럼 모든 것의 발에 기꺼이 입을 맞출 수 있다.

 

그래서 동시에 고독의 날이 도래한 것이다. 잘 알았다가 몰랐다가, 거대해졌다가 웅크렸다가, 하늘을 날았다 땅으로 꺼졌다 하니 나는 고독하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말과 눈빛도 몸에 닿지 못해, 사실인 것으로 아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닿는 뜨거운 물줄기의 존재.

 

화요일, 샤워를 곁들인 재즈가 반복되며 어떤 것들은 한없이 부풀어 오르며 커졌다가 다시 한없이 작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작아지는 것은 단순히 쪼그라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되려 가장 살이 연하고, 두 손에 조심히 품고 싶은 상태로 작아지는 것이다.

 

이제는 무엇이 커지고 무엇이 작아지는 것인지도 분간할 수가 없다. 꾸준한 열림과 닫힘, 밀물과 썰물의 역사. 이 역사 속에는 내 존재도 속했고, 꿈도 속했고, 세계도 충실히 속했다.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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