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태풍보다 강인했던 선바우집 이야기 [여행]

2022년 09월 포항 여행기
글 입력 2022.10.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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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이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선바우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숙박객을 가장 먼저 반겨준 상대는 고양이들이었다. 선바우집 마당에는 세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아직 성묘가 덜된 카오스 무늬의 마고, 무심하지만 다정한 턱시도냥 찰리, 나른한 눈동자를 가진 흰냥이 생강이다. 마고와 찰리는 새손님이 반가운지 부리나케 뛰어와 발끝을 따라다니며 골골거렸다. 앞마당 너머로는 동해바다가 보였다. 해수면 위로 일어난 해무는 육지까지 올라와 시야를 가리며 외지인을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들의 환대와 예쁜 한옥집, 앞마당에 깔린 잔디와 꽃나무 풍경 덕분에 우리의 흥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바우집도 태풍 힌남도의 영향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들 조금씩 엉망이었다. 잔디는 한쪽으로 쓸려서 비틀거렸다. 어린 나무와 꽃대는 허리가 꺾여서 흙바닥에 고개를 내리꽂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 옆마당은 더 가관이었는데, 산사태로 내려온 토사가 마당 한쪽에 쌓여 있었다. 집주인이 숙박객을 맞이하기 위해 최대한 정돈해 놓은 것 같았다. 일부러 선바우집 예약가능 날짜에 맞춰 여행 날짜를 정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미식거리며 속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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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네 분위기 좋지 않아서요… 마당에서 음악을 크게 트는 것만 조금 자세해 주세요”, “동네에 태풍 피해 복구작업이 한창이라서 물이 잘 안나 올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저희 집에 그럴 일은 없을…거에요…” 체크인 당일 날, 선바우집 주인은 수화기 너머로 조심스레 당부의 말을 꺼냈다. 집 주인의 말에 의하면 태풍이 몰아치던 날 산사태가 일어나 윗집과 아랫집의 피해가 막심했다고 한다. 다행이도 선바우집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며 앞서 꺼낸 말에 불안해하던 숙박객을 애써 달랬다. 9월 6일 태풍 힌남노는 포항을 휩쓸었다. 포항 동해면에 가장 많은 비를 뿌렸는데 누적 강수량이 500mm가 넘었다. 열흘이 지나자 서울에 사는 외지인에게 태풍의 기억은 흐릿해졌다. 별 생각없이 시작한 포항여행은 진짜 시작도 하기전에 힌남노가 남긴 씁쓸함을 웰컴 드링크로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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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영일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 내내 택시 기사는 태풍 피해를 호소했다. 침수차가 8천대를 넘어섰고 이마트 포항점은 지층이 모두 물에 잠겨 물건이 하천으로 떠내려갔다고 했다. 이마트는 6일 이후로 여태껏 오픈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왼쪽 차장 너머로 문을 굳게 닫은 이마트가 보였고 오른쪽 차장 너머로는 하천인지 뒤집어진 공터인지 분간이 어려운 물 빠진 하천이 보였다. 훤히 드러나 하천의 민낯은 상처투성이였다. 곧이어 포항제철소가 나오자 기사는 제철소 침수피해를 설명했다. 자신도 20년전 포스코에서 일을 했다며 열띠게 성조를 높였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두 말로 옮기느라 차는 가다 섰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기사의 말에 동조하며 관련기사를 찾아봤다. 포항제철소 인근에 위치한 하천인 냉천이 범람해 제철소의 피해가 심했다.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올해안에 정상화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멀미가 이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고개 돌리자 청소차와 중장비차들이 심각한듯 도로를 바삐 지나다녔다.

 

중장비 차량은 선바우집에도 찾아왔다. 토요일 오전부터 굴착기가 옆마당에 쌓인 토사를 치우러 들어왔다. 작업 기사는 일을 시작하기 전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캔커피를 홀짝이며 먼 바다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 끝에는 제철소 굴뚝들이 줄지어 있었다. 굴뚝에는 회색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는 바지 자락에 달라붙은 마고를 한참동안 쓰다듬고 나서야 굴착기 위로 올랐다. 작업 소리는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주민들의 말소리까지 마을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특별히 내다보지 않았다. 우리도 선바우집 대청마루에 서서, 달리는 차안에서,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관광지에서 포항의 모습을 지켜봤다. 포항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철소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굴뚝에 불을 지폈고, 정비차량들은 수해 복구 작업을 위해 쉴세없이 돌아다녔다. 영일대, 호미곳, 구룡포 등 관광지에는 더 이상 태풍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즐비한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태풍 힌남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포항은 꿋꿋이 살아남아 여전히 숨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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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우집에 머무르는 이틀동안 생강이는 낮이 되면 자취를 감췄다. 생강이를 걱정하던 집주인도 저녁에도 마당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연락을 달라며 부탁했다. 하지만 생강이는 걱정과는 달리 자신의 방식대로 살고 있었다. 동네를 산책하다 다른 집 담벼락에 앉아 졸고 있던 생강이를 발견했다. 너 여기 있었냐며 깔껄거리는 소리에 생강이는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그날 저녁, 생강이는 마고와 찰리 곁으로 돌아왔다. 밖에서 사는 삼냥이들을 걱정하는 건 인간의 노파심이었다. 삼냥이들에게 선바우집은 터전이었다. 태풍이 목숨을 위협해도 선바우집 마당을 떠나지 않았다. 포항도 마찬가지였다. 태풍이 포항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고 한들 포항의 모든 것들은 포항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니 포항의 숨은 절대 끊어질 수 없었다. 선바우집을 나가던 날, 삼냥이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내심 서운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삼냥이들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떠나도 다시 새로운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고, 삼냥이들 그리고 포항은 희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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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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